대장동 특검과 불법 정치 자금을 둘러싼 극한 대치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정치 공세를 일삼던 여야가 이태원 참사 앞에 정쟁을 자제하고 있다. 당분간 당 안팎의 정치 일정도 전면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움직임이다. 그만큼 희생자에 대한 애도에는 여야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조기가 게양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조기가 게양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일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154명으로 알려지는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는 휴일인 30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대책 마련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달 5일까지 예정된 국가애도기간에 자당 인사가 물의를 빚지 않도록 강력한 내부단속에도 나선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30일 오후 예정된 '레고랜드 사태' 관련 고위 당정협의회를 취소했다. 강원연구원 주최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오는 31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레고랜드 사태 관련 토론회 역시 개최가 무산됐다.

내달 1일 잠정 예정됐던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첫 회의도 미뤘다.

당 지도부는 각 시·도당 등에 보낸 공문에서 불필요한 공개 활동·사적 모임·음주·SNS 글 게시 등 자제, 공식 행사에서 검은 리본 패용, 정치 구호성 현수막 즉시 철거 등 행동 수칙을 제시했다.

국민의힘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회의에서) 정쟁을 애도 기간만이라도 서로 멈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씀도 함께 했다"며 "국민의힘만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민주당 내에서도 거기에 동참해주실 것이라 저흰 믿는다"고 했다.

민주당도 정쟁성, 정치 구호성 현수막은 모두 철거했다. 대표적으로 민주당 당 대표회의실 벽의 '야당탄압 규탄!' 문구가 적힌 배경은 흰색 가림막으로 덮었다. 축제성 행사 역시 전면 취소하는 한편, 공개 활동이나 사적 모임 자제, 음주 및 취미활동 중단, 신중한 SNS 활동 등을 주문했다.

30일에는 여권 비판성 논평은 내지 않고 애도의 뜻을 전하는 논평만 냈다. 민주당은 특히 내주 중 '대장동 특검'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할 계획이었으나, 참사 애도 기간인 만큼 발의를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표는 30일 개최된 긴급 최고위원회 회의를 마치고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며 "민주당은 다른 어떤 것도 다 제쳐두고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친민주당 김어준, “이건 정치 문제 맞다” 주장

이런 가운데 친민주당 방송인인 김어준씨는 31일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서 노골적으로 정쟁을 부추기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김씨는 “황망히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빈다”면서도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순간 관람객이 1000명 이상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최측이 따로 없을 시. 정부와 지자체가 마땅히 수립했어야 할 안전대책이 부재했다. 정치의 부재고, 정치의 책임”이라며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책임을 묻지도 않고 어떻게 가족을 떠나보냅니까”라고 책임을 정부와 여당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백승주 사이버대 교수와는 ‘일방통행’관리 문제를 집중 제기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방통행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 집중 거론했다. [사진=TBS유튜브 캡처]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방통행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 집중 거론했다. [사진=TBS유튜브 캡처]

당일 프로그램에 등장한 패널과도 ‘정치적인 책임’ 문제에 관한 주제를 이어갔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백승주 교수와는 ‘일방통행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 집중 조명했다. 1000명 이상 모일 것으로 예상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자체장은 그 행사안전관리 계획을 세우고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백 교수의 주장이었다.

백 교수는 “당연히 지자체 장 혼자서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앙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에 김어준은 “일방통행 조치만 내렸어도 이런 사고 위험을 굉장히 줄인다”며 “이전 핼러윈에서는 사고가 난 길에 대해 ‘일방통행 조치’가 분명히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왜 그렇게 조치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에 이어 출연한 김영희 변호사는 사회적 재난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인물로, “오프닝에서 공장장이 ‘정치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책임은 당연히 있고, 법적인 책임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사건을 담당했던 김 변호사는 “당시 경찰이 남부순환도로의 교통을 통제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대법원이 직무 위반 자체를 인정했다”고 언급하며, 이번에도 “1000명 이상 참가가 예상되는 모든 축제를 정부나 지자체가 주최하지 않았어도 순간 인원 1000명 이상 모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전조치를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최자가 없는 축제여서 관리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나 지자체가 더 신경을 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영희 변호사는 김어준의 오프닝 멘트를 언급하며 ‘정치적 책임’은 물론, 법적인 책임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TBS유튜브 캡처]
김영희 변호사는 김어준의 오프닝 멘트를 언급하며 ‘정치적 책임’은 물론, 법적인 책임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TBS유튜브 캡처]

우상호, “경찰인력 배치는 질서 유지 위해 필요해” 주장

다음으로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등장해, 이태원 참사에 대해 행정당국 책임자로서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잘 모르면 입을 닫고 있어야지 왜 자꾸 이렇게 변명하다가 국민들 화를 북돋우시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얘기를 던질 때가 아니라는 취지에서 이 장관을 비판한 것이다.

앞서 이 장관은 지난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 대응 방안 브리핑에서 "그 전과 비교할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는데 통상과 달리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은 이에 대해 "경찰력 배치는 시위 진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질서 유지, 아까 방금 말했던 것처럼 동선 확보라든가 아니면 진행 속도를 늦춰서 누가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꾸 힘을 주게 돼 있다"며 "그런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질서 유지 요원이라고 하는데, 경찰보다 더 권위 있는 질서 유지 요원이 어디 있겠나"라고 경찰 인력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이 정도의 사고가 날 줄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결국 안전불감증이 이런 대형사고를 키우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이 장관의 발언은 아주 부적절했다"고 강조했다.

우 의원은 또 "누구 책임을 묻기 위한 문제라기보다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이런 형태의 안전 관련해서는 좀 사전에 긴밀하게 협의하는 시스템을 맨날 만들자, 만들자 하는데 사람만 바뀌면 이게 또 없어진다"며 "용산 같은 경우도 제가 볼 때는 그 이전에 이거 담당하는 분들은 이 매뉴얼이 있었을 텐데, 구청장 바뀌고 담당자들 다 바꾸니까 그게 이제 인수인계도 안 되고, 이 매뉴얼을 제대로 안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시도 마찬가지라고 보고, 뭐 책임을 묻는다기보다는 좀 이런 일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쟁을 자제하는 가운데, 31일 TBS 라디오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을 거론’했다. [사진=TBS유튜브 캡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쟁을 자제하는 가운데, 31일 TBS 라디오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을 거론했다. [사진=TBS유튜브 캡처]

민주당이 표면적으로는 ‘정쟁 자제’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세월호 사건과 마찬가지 프레임으로 몰고가려는 입장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김어준이 대표적으로 정치 책임 공방에 불을 지핀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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