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 연설을 했다. 야당은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고 본청 계단에서 농성을 했다. 이 XX, 사과하라, 팻말들이 질서정연하게 대통령을 맞았다. 느낌으로 안다. 문제가 됐던 “이 XX들”에서 ‘들’을 일부러 뺐다. 그러니까 입장하시는 ‘너님’을 ‘XX’라고 부른 것이다. 그거 트집 잡는 거 아니다. 그 정도로 책을 잡자면 매일 칼럼을 써도 부족하다. 중요한 건 이게 대통령의 시정연설이라는 것이다. 내년 재정을 어떻게 운용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다. 정치인들이 만날 떠드는 게 민생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모조리 불참했다. 헌정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은 대체로 좋다. 첫 사랑, 첫 직장, 첫 월급, 첫 결혼, 첫 내 집. 첫 아이. 그런데 이 처음은 정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처음이다. 국회의원은 법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ㆍ확정하고 국정 운영을 감시하며 통제하는 국회의 권한 행사에 참여하는 게 국회의원이다. 그런 사람들이 다음 해 예산의 주제를 설명하는 자리를 외면했다. 이유는 야당 탄압이다. 불법 혐의가 있는 사안을 조사하는 것을 탄압이라 우기지만 그게 당대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자기들이 더 잘 안다. 혐의가 있어 수사를 받아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다는 생각에 같은 목소리를 내고 단체 행동을 한다. 진영이다. 진영을 방어하기 위해 민생을 버리고 업무를 팽개쳤다. 국민의 삶이 진영에 종속되며 무시당한 것이다. 진영에는 진영 논리가 있다. 진영 논리는 단순하다. 사실의 외면이다. 상대방의 말이 맞아도 상대방의 말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어떤 사람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도 우리 편이기 때문에 옹호하고 껴안는다. 꼭 야당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진영 논리의 시대로 정치가 진입했다는 것은 불행이다. 국가 발전의 의제를 고민하고 국익을 같이 논의할 정치가 실종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국익을 위해서 진영을 포기할 정치인이 있을까. 없거나 혹시 있더라도 내부에서 총 맞고 돌아가신다. 결론적으로 없다. 비극이다. 우리에게 비극이고 대한민국에 비극이다.

진영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주장이다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이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전직 부위원장이 썼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우는 셋이다. 상위가 오르거나 하위가 거꾸러지거나 중간이 망가지거나. 감소의 경우 역시 셋인데 상위가 안 좋아지거나 하위가 좋아지거나 중간이 두터워지거나. 저자는 경제가 좋을 때 불평등이 증가하고 경제 사정이 나쁠 때 불평등이 감소한다고 말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살짝 아리송하실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수출이 좋아질 때 불평등이 증가하고 수출이 나쁠 때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임금 체계는 수출 연동형 임금이다(이 연동 부분을 우리는 보너스라고 부른다). 수출이 잘되면 임금을 더 준다는 얘기이고 상위가 올라가면 하위도 어느 정도는 올라간다. 즉 구간 전체가 상승한다. 해서 불평등은 좋을 수도 있으며 지수만 놓고 보면 현실을 놓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불평등을 무슨 죄악처럼 다루는 좌익 진영에서 들으면 기겁할 소리다. 그걸 어쨌거나 그 진영에서 정책을 연구하던 사람이 했다는 것은 신선하다. 적어도 진영 논리는 벗어난 것 아닌가. 그 외에도 저자는 재벌 편향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 비정규직 확대를 3대 적폐로 보는 좌익 진영의 신념 체계가 통계와 수치상 별로 맞지 않고 진보 정권이 들어섰을 때보다 보수 세력이 집권했을 때 불평등이 줄었다고 말한다. 통념의 오류를 완벽하게 깼다. 이런 논리와 주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혹은 이 논리를 자제하는 것이 진영 논리다.

대한민국은 진영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대표적인 진영 논리가 탈脫원전 등 에너지 정책이다. 우익은 자연 친화, 재생 에너지에 친화적이지 않다. 대신 원전이 안전하고 유익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원전은 무조건적으로 안전하지 않다.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원전 역시 자연 재해에는 대책이 없다. 원전의 경제성도 영원불변 안정적이지는 않다. 현재 EU의 그린텍소노미greentexonomy에는 원전과 천연가스가 포함되어 있다(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확보 전제). 그러나 언제 여기서 원전이 빠질지 모른다. 현재 독일은 그린텍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 것에 반발하고 있으며 이 반발은 머지않아 실현 될 것이다. 원전이 빠지면 대한민국 경제는 유럽 수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RE100도 마찬가지다. 국제 규범이라는 게 있고 이거 안 따라가면 우리나라 수출은 죽는다. 친환경재생에너지는 싸고 편리한 게 아니다. 비싸고 불편하다. 그래도 따라가야 하는 건 기후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결과 때문이 아니라 유럽 경제에서 작동하는 PC 때문이다(참고로 지구 온난화 같은 건 나도 안 믿는다). 올 겨울 독일의 난방비는 두 배로 오른다고 한다. 유럽 인구의 일부는 음식과 난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내년에도 우리에게 닥칠 일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까. 진영을 살리기 위해 사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포기하면 그때는 대책 없이 죽는 수밖에 없다. 국익이란 통념과 진영을 버릴 때 비로소 윤곽이 보인다. 국가 어젠다 역시 진영을 넘어설 때 발굴할 수 있다. 진영이 있는 것은 정치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진영을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순간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문화, 음식, 패션 등 전 종목에 K가 붙으며 다 잘하는데 정치 혼자서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정치를 죽여야 하는데 이미 국민의 절반은 그 진영에 들어가 있다. 암울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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