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연소, 최초 非백인 총리의 영예 거머쥔 리시 수낙
'수렁' 빠진 영국 경제 해결 여부가 성공의 관건
일각에선 "인도가 영국 점령했다"는 평가도

리시 수낙(Rishi Sunak) 전 영국 재무 장관이 차기 총리가 됐다. 그는 역대 최연소 총리, 최초 非백인 총리의 영예를 안게 됐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리시 수낙(Rishi Sunak) 전 영국 재무 장관이 차기 총리가 됐다. 그는 역대 최연소 총리, 최초 非백인 총리의 영예를 안게 됐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리시 수낙(Rishi Sunak) 전 재무장관이 25일(현지 시간) 정식으로 영국 총리가 된다. 인도계 리시 전 장관이 옛 '식민 모국' 영국의 운전대를 잡게 된 것. 

수낙 총리 내정자는 보리스 전 총리 외에 당내 유력 경쟁자였던 페니 모돈트(Penelope Mordaunt) 서민원(하원) 원내대표가 24일(현지 시간) 지지 의원 수 역부족 때문에 당수 경선에서 물러난 뒤 유일한 경선 출마자가 됐다. 이로써 사실상 영국 보수당 당수이자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수낙 내정자는 총리 당선이 확실해지자 영국과 보수당 모두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최고의 우선 사항(utmost priority)"라며 "나는 영국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정치적 목표를 밝혔다.

수낙 내정자는 이전의 영국 총리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보유하고 있단 평가다. 그는 첫 非백인 총리며, 인도인들의 '국교'라 할 수 있는 힌두교를 믿고 있다. 이는 그의 조상이 인도 북서부와 파키스탄 동부에 걸쳐 있는 펀자브(Punjab) 지역 출신이란 점에 기인한단 평가다. 

수낙 내정자는 또한 역대 영국 총리 중 최연소 기록도 갖게 됐다. 1980년생인 그가 만 42세로 총리가 된 것. 역대 영국 총리 중 수낙 내정자와 비견될 만한 인물은 1770년생이었던 제2대 리버풀 백작(Earl of Liverpool) 로버트 젠킨슨(Robert Jenkinson) 전 총리로, 1812년 수상이 돼 수낙 내정자와 마찬가지로 만 42세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젠킨슨 전 총리와 수낙 내정자와의 시간적 터울은 210년에 달한다.

반면 수낙 내정자는 영국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인도가 아닌 영국 사우샘프턴이며, 윈체스터 칼리지·옥스퍼드 대학교·스탠퍼드 대학교라는 일류 대학을 졸업해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학력을 갖고 있단 평가다. 인도계 영국인이 마침내 영국 총리에 등극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측면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수낙 내정자가 여러 기록을 쓰게 됐지만, 그에게 놓인 영국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은 녹록치 않다. 우선 그는 보수당을 결집해야 한다. 보수당의 350명이 넘는 서민원 의원들 중 지지자 수가 150명을 넘었지만, 여전히 존슨 전 총리를 지지하는 60여 명의 의원들과 모돈트 원내대표를 지지하는 20여 명의 의원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 특히 존슨 전 총리를 포함한 당 일각에선 수낙 내정자를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다. 존슨 전 총리가 '파티게이트'로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을 때 존슨 내각에서 가장 먼저 이탈한 사람이 바로 수낙 내정자였기 때문이다. 수낙 내정자가 "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최고의 우선 사항"이라고 말한 데엔 이러한 맥락이 존재한다.

영국의 경제적 상황도 매우 좋지 않다. 당장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45일 만에 사퇴한 결정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트러스 전 총리는 영국이 인플레이션·파운드화 약세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정부' '세금 감면' 정책을 들고 나왔다가 낭패를 봤다. 파운드화는 더욱 급락했으며, 주택담보대출금리는 급격히 올랐다. 수낙 내정자는 영국이 이렇듯 위중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영국이 '심각한 경제적 도전(profound economic challenge)'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 그가 존슨 내각의 재무장관이던 시절 영국내 기업 투자 증가율이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록을 달성하는 등 경제 능력은 출중하단 평가를 받은 만큼 영국이 슬기롭게 경제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낙 내정자가 영국의 경제적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보수당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지난달 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당과 보수당의 지지율 차이는 33%에 달했다. 노동당이 54%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던 반면, 보수당은 21%에 불과했던 것.

트러스 전 총리가 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승인한 마지막 총리였다면, 리시 내정자는 찰스 3세가 승인한 첫 총리가 된다. 형식상 절차이긴 하지만 영국 총리는 국왕의 승인을 받아 '국왕 폐하의 정부'를 구성할 책임을 맡게 된다.

한편 대영제국이던 시기 영국 중앙 정계엔 유력 정치인 중 식민지 출신이 없었던 반면 제국 해체 후 식민지 출신이 모국의 정치 수장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단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선 "인도가 영국을 점령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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