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인사이드

● 소원해지는 한미 관계에 대한 경각심 고조시켜야

역설적이게도 북한은 ‘평화’라는 단어를 통해 대남 공세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이 평화라는 단어를 팔수록 우리나라는 북중과 긴밀한 모양새가 유지되고, 미국과는 벌어지고 있다. 언론은 이러한 균열에 대해 좀더 현실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미 외신에서는 북한의 ‘이간질’이라는 우려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뉴욕타임즈와 WP, 교도 통신,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은 한미간 결속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최근 많은 국내 매체는 김정은의 호응 한 마디에 적극 호응하며 향후 북한의 행보에만 관심을 보일 뿐, 그 사이 벌어지는 균열들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금일 보도 또한 ‘남북고위급 회담’ 성사 여부에 중점을 뒀다. 경향신문은 4면에 <문 대통령 “북핵도 평화 해결”...힘 받는 ‘한반도 운전자론’>이라는 제목 하에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복구하게 된다면 한반도 문제의 모든 관련국들과 소통하는 독보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고 보도했다.

또한 ‘남북 고위급 회담’ 성사를 통해 한반도 정세가 전쟁 위기에서 대화 국면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기대와 안심이 섞인 보도도 많다. 북한이 평화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또한 이에 협조해야한다는 논지의 목소리도 실린다.

반면,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던 강인선 논설위원은 상당히 합리적인 미국의 목소리를 전한다. 강 논설위원은 지난 연말 만났던 미국 의회 관계자의 말을 빌린다. 의회 관계자는 ‘미국이 위협에 처했을 때 한국도 미국을 도울까’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의구심마저 표출한다.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행보에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 ‘신중하겠다’ ‘통남봉미는 경계하겠다’는 식의 메시지만 형식적으로만 다뤄져서는 안된다. 미국의 분위기는 우리의 의도와는 별개로 진행된다. 현재 정부의 행보는 북한과의 평화에만 골몰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실제로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피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한 간 대화가 터져나온다. 정부는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설 이산상봉과 군사 협의에 대한 의지도 피력한다고 한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환영 메시지를 던지고, 미국은 ‘긴밀히 협의’한다는 반응만 내놓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미국과 더 굳건한 동맹국임을 자처할 수 있을까.

 

■ 시시비비(是是非非)

<중앙칼럼>(김현기의 시시각각)위안부 합의 전날 밤의 한·일전

일반적인 여론과 배치되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일수록 자세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여론에 호응되는 논점만 다루는 경우가 많다.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여론’에서 벗어나기 힘든 민감한 현안이다. ‘위안부’라는 성역화된 이미지에 도전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안부 합의 전날 밤의 한·일전’이라는 칼럼은 과거 ‘위안부 합의’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현 정부가 추구하는 ‘피해자 중심 해결’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칼럼에서 기자는 “당시 양국 핵심 관계자들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확인했던 내용 중 일부”라며, “굳이 이를 전하는 건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의 공식 조사 발표,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문’이 마치 우리가 일방적으로 조급하게 양보했고,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포장되고 있음을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글의 목적을 밝힌다.

기자는 ‘해외 기림비 지원’ 등에 대해 기본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이면합의로 엮는 건 “오버 중의 오버다”라고 비판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를 지켜봐 온 이라면 내용적 측면에서 꽤 진전된 합의였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합의의 의의와 맥락을 서술한다.

문 대통령의 ‘피해자 중심 해결’에 대해서는 ‘듣기에는 참 좋다’며 날선 비판을 한다. “할머니들, 가족마다 입장과 주장이 제각각이며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목소리 큰 시민단체가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 주장을 모두 대변하는 것처럼 돼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치와 언론이 왜곡했다. 피해자 모두 100% 만족하는 해결이란 애초 기대하기 힘든 구조”이며 ‘피해자’ 분들의 평균 연령이 91세인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양새인 점을 우려한다.

기자는 ‘피해자 중심 해결’이라는 단어와 TF보고서에서 밝힌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 문제는 단기적으로 외교협상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대목에 주목한다. 이러한 표현에 숨은 이면이 무엇인지, 의미있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이게 바로 이 정부의 진짜 속내가 아닌가 싶다. 어떤 재합의를 해도 욕먹을 게 뻔하다면 섣부른 재협상 따위 하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역사 카드를 꼭 손에 쥐고 임기 내내 가겠다는 것 아닐까”


<경향사설>남북고위급 회담 성사로 단절의 시대 끝내야

경향은 사설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 대화는 필수다. 이것이 바로 남북 모두 대화 단절의 시대를 끝내야 할 이유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대화의 소중함은 대화 없는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했고, 이로 인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급기야 한반도 전체가 전쟁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한다.

마치 ‘대화의 단절’이 ‘북핵의 고도화’를 이뤘다는 인과 관계 서술은 이전부터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맥락과 다양한 요인이 무시된 채, 밀접한 인과 관계처럼 호도하는 것은 현상을 잘못 이해하도록 만든다. 의도적으로 이러한 인과 관계를 굳히고자 하는 것인지, 다른 원인은 외면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와 같은 주장은 대화하면 풀릴 법한데 대화를 하지 않아 북한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논리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을 축소시킨다. 대화의 단절이 된 맥락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것이다. 청소년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거나 일탈을 하면, 그 모든 원인을 대화의 부재로 돌리는 것과도 비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안보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핵 고도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경제적 교류를 차단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 중 하나이다.

경향은 사설을 통해 아직도 부족한 대화 환경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등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압박이 압도하는 상황에서 자칫 남북대화가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과거 잘못된 행적을 지적하는 것은 없다. 오로지 대화를 통해서는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온정주의적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일까.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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