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냐 리즈 트러스냐...재밌는 내기 내건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한국선 '왕실 장례 대행사냐' '여왕 장례 비대위원장이냐' 트러스 총리 비꼬기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달 5일(현지시각) 취임한 후 45일만에 역대 '최단기'의 불명예를 안고 사임하게 되면서 영국 정치의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트러스 총리에 관한 흥미로운 언급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국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트러스 총리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여럿 나오고 있기 때문.
먼저 트러스 총리 사임 여부를 내기로 풀어낸 사례가 영국에서 등장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Daily Star)가 '양상추'가 먼저 썩을 것인지 트러스 총리가 먼저 물러날 것인지 유튜브 실시간 생중계를 내보냈던 것. 이는 지난 14일부터 시작됐는데, 데일리스타가 양상추를 트러스 총리의 '대항마'로 내세운 이유는 양상추의 유통기한 10일보다 먼저 트러스 총리가 물러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소위 '양상추 캐삭빵(캐릭터 삭제 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내기는 영국 내에서 매우 유명해졌다. 어느 영국인은 얼굴까지 가려지는 초록색 쫄쫄이 옷을 입고 영국 총리 관저 앞에서 'Lettuce In(양상추쪽에 건다)'는 종이를 들고서 일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한쪽 손에 양상추를 들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몸에 양상추 잎을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다. 이 내기는 트러스 총리의 귀에도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트러스 총리는 '양상추보다 내가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러스 총리가 20일(현지시각) 총리 사임을 발표하면서 결국 그녀가 양상추보다 먼저 '시들어버린' 셈이 됐다. 양상추는 7일째라 아직 멀쩡했던 것. 데일리스타는 밤에는 양상추에 이불을 덮어주고 수면 안대를 씌워주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21일 현재 데일리스타 유튜브 생중계엔 4만5천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른 상태며, 데일리스타측은 양상추 대신 'THANKS(감사합니다)'란 종이 쪽지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보수당 경선 때부터 트러스 반대 진영에서 트러스 당시 후보를 비판했던 말들 또한 재차 언급되고 있는 모습도 포착된다. △ 정부 최고위층 내에선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현실 인식이 결여돼 있다 △ 사람들은 부유한 이들에게 더 큰 수익을 안겨주는 게 아닌 지역 균형 발전을 원한다 △ 트러스의 대책 없는 감세 정책은 사회주의와 다름 없다 △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부자 감세는 잘못된 가치. 정부가 차입으로 감세 자금을 조달하는 건 전혀 보수당답지 않아 △ 현 시점에 필요한 건 이번 겨울을 어떤 에너지 계획으로 돌파할 것인가이며, 경기 침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매우 명확한 계획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줘 이들을 안심시키는 것 등이다.
한국에서는 트러스 총리의 조기 실각을 지난달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전 영국 여왕과 연결지어 비꼬는 의견이 많다. 엘리자베스 2세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 트러스 총리 접견 및 총리 정식 임명이었으며, 트러스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여왕의 장례를 치뤄야 했기 때문.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트러스 총리를 두고 '장례 대행사 아니냐' '사실상 왕실 장례식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임기동안 여왕 장례만 치르고 간다'는 조롱·비아냥이 섞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트러스 총리의 임기 45일 동안 무사히 마친 굵직한 업무가 그달 8일부터 19일까지 12일간의 국장 주관 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외에도 '제2의 마거릿 대처 수상이 될 거라더니 역대 최단기 퇴물이 돼 버렸다' '철의 여인이라더니 돌의 여인이 됐다' 등 영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한 것에 대해 트루스 총리를 비꼬는 반응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은 2022년 명목 GDP가 3조3760억 달러로 세계 5위에 해당하고, 영국 파운드화는 국제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화폐로 전 세계 무역 결제 통화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 경제적 혼란이 생기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트루스 총리를 조롱하는 데엔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