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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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본토와 러시아가 지난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가 8일(현지시간) 폭발로 일부 붕괴했다. 러시아의 주요 보급로였던 크림대교 붕괴는 러시아 측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시간) 타스·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7분쯤 트럭에 실린 폭탄이 폭발해 3명이 숨졌으며, 크림대교의 철도 통행 부분에서 석유를 싣고 크림반도로 향하던 유조차에도 불이 옮겨붙어 폭발하면서 다리 일부가 붕괴됐다. 철도 교량 수 십 미터 구간의 구조물이 불탔으며 철로 자체가 붕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 조사위원회는 성명에서 "잠정 조사 결과 3명이 사망했다"며 수습한 시신은 남녀 1명씩으로 폭발한 트럭 주변을 지나던 차량 승객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나머지 1명의 신원이나 폭발한 트럭 운전자의 상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조사위는 트럭 소유주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크림대교는 2014년 러시아가 2500억 루블(약 5조7000억 원)을 들여 2018년 개통한 18㎞ 길이의 다리로 푸틴 대통령이 직접 개통식을 주재했다. 당시 직접 트럭을 몰아 다리를 건넌 푸틴 대통령은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이들이 이 다리의 건설을 꿈꿨다"면서 개통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디언과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크림대교 폭발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실질적·상징적으로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크림대교는 우크라이나 남부로 이동하는 주요 통로로 러시아의 핵심 보급로였다. 

이번 폭발로 다리가 완전히 복구되는 데 2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덴마크 교량 설계·건축 전문업체인 COWI의 데이비드 매켄지 기술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크림대교의 구조가 손상돼 완전복구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안드리 자고로드뉴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크림대교 붕괴가 러시아군의 고질적 문제였던 보급 차질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다른 점령지에 군사물자를 조달하고 병력을 이동시키는 데 있어 안전한 후방 기지였다. 하지만 크림대교 붕괴로 원활한 물자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남동부 점령지에 있는 육로를 통해 물자를 실어나르거나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항로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미군의 다연장로켓이나 무장 무인기(드론) 등으로 보급선을 집중 타격해 대대적 성과를 올리고 있다. 러시아군은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보급에 어려움을 노출하고 있다.

크림대교는 러시아 내에서 우크라이나 병합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여겨졌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대교 개통을 정치적 성과로 여러 번 자랑해오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70번 째 칠순 생일 바로 다음 날 발생한 크림대교 폭발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영국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제임스 닉시는 AP통신에 "이번 공격은 러시아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며, 우크라이나의 사기는 더 올라갈 것"이라며 "러시아가 크름대교를 재건할 수는 있겠지만 전쟁에서 패배하는 와중에 이를 방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했다.

러시아는 폭발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의심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사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민간시설 파괴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권의 반응은 테러주의자로서 그들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러시아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주가노프는 "테러 공격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규탄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폭발이 일어난 트럭이 러시아에서 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 측에서도 폭탄을 실은 트럭이 크림대교 진입 전 엑스레이(X-ray) 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사고에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트위터에 다리가 불타는 모습과 메릴린 먼로가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노래하는 장면을 합성한 영상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우정본부는 "크림대교, 정확하게는 크림대교였던 것의 기념우표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트위터에 파괴된 다리 사진과 함께 "크림대교는 시작일 뿐"이라며 "불법적인 모든 것은 파괴돼야 한다. (러시아가) 도둑질한 것은 모두 우크라이나에 반환되어야 하며, 러시아가 점령한 것은 모두 추방돼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은 크림대교 폭발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등 기쁨을 드러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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