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촛불 들고 모이는 것을 능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모여서 으쌰으쌰하면 뭐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번 재미(?)를 봐서 더욱 그렇다. 어쩌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싸움 구경, 불 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지만 불난 집이 자기 집이고 싸우는 사람이 자기 가족임을 눈치챌 만한 지력은 없는 걸까?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임기 전에 몰아내는 것을 어떻게 월드컵 축구 거리 응원 정도의 짜릿하고 신나는 이벤트로 생각할까?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얘들아, 본관으로 와! 본관에 오면 화장품 공구랑 게임도 하고 밤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따뜻한 모포도 주고 아침 식사도 제공할 거야. 본관으로 꼭 놀러와. 다같이 본관으로 모이자.”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명문대 여자 화장실 문짝에서 발견한 문구이다. 변기에 앉으면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그 눈높이에 붙은 예쁘게 치장된 작은 벽보였다. 당시 그 학교 본관에서는 며칠째 학생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슈는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평생교육원 사업에 그 학교가 선정되었는데 그 사업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여러 대학이 신청한 중 어렵게 선정된 사업으로, 학교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사업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평생교육원 학점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자기 대학의 이름을 나눠주기 싫었던 것이다. 
 뭐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평소에는 평등과 나눔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도 자기 것을 나누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고 드는 상황이야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용서가 안 되는 구절은 “화장품 공구랑 게임도 하고 밤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라는 부분이다. 학생들이 본관이라는 중요한 공간을 점거하고 밤샘 농성을 한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농성이 마치 놀이인 듯, 축제인 듯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아주 달콤하게, 아주 흥미롭게.

 광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슈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인데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이다. 유명 가수가 초대되고 가족끼리 손잡고 시위에 가담한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들의 상당수는 아이를 데리고 바람 쐬러, 즐기러 나왔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확고한 의도를 가지고 나온 부모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모습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될지 미처 알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도 많을 것이다. 
 6년 전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광장으로 뛰쳐나가 그 대열에 휩쓸렸던 친구 하나가 중계방송하듯 현장의 소식을 화상 통화로 알렸다. 
“역사의 현장에 나오니 가슴이 벅차다.”
 그는 좌파 성향의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대단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그렇게 좋아 날뛰었을까?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그렇게 가슴 벅차 했을까? 
 촛불 집회에 나간 사람 중 가장 한심한 인간들은 국회의원들이다. 누구보다도 국회의원들이 광장의 군중을 가로막고 “여러분, 저희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저희가 여러분의 뜻대로 처리하겠습니다”라며 설득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로 국정이 이뤄지는 나라이다. 국민을 대표하여 정치를 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광장에 나와 군중과 함께 촛불을 들고 앉아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자신들이 국민의 대표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심각한 상황도 의미도 모른다. 국회의원도 일반 국민도 모른다. 그저 광장에서 촛불을 들면 그게 다인 줄 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다는데 상당수의 국민과 정치인들은 어찌 그리 우매할까?

 대한민국이 촛불에 불살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던 그해, 헌법재판소에서 아직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기 전이었다. 사회학 석사학위를 보유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친구가 촛불 집회를 적극적으로 찬양했다. 평소 좌파도 아니었고 나름 이성적이고 스마트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다. 아버지는 육군 장성 출신에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온갖 단물은 다 누리는 친구였다. 근거 없는 이유로 흥분하는 그와 몇 마디 설전을 했지만 한껏 들뜬 그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였다. 설득하기에 지친 내가 말했다.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보자.”
“그래, 헌재가 여론에 따라 판결할 거야.”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헌재는 헌법에 따라 판결하는 기관이지 여론에 따라 판결하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무지랭이도 아니고 사회학 석사라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다니.
“여론? 여론이 뭔데?”
“촛불이 여론이지.”
 그가 너무도 당당하여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침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일어나는데 그 친구가 나를 다시 불렀다.
“너 다른 데 가서 그런 소리 하지마. 우리니까 괜찮지, 너 변을 당할까 무섭다.”
 나는 이후 그 친구와 만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2년 후쯤 모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문재인 정권을 욕하느라 게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온갖 규제와 사회주의적 정책 때문에 나보다는 그 친구가 훨씬 잃을 게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너 2년 전에 촛불 집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잖아. 촛불 집회 결과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건 뻔히 내다보이는 결과였는데.”
 할 말이 없어진 그는 느닷없이 외쳤다.
“아무튼 박정희가 나쁜X이야.”
 나는 느닷없고 얼토당토않은 그의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친구는 유신 반대 데모를 하던 대학 시절의 사고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거였다. 평소 좌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여 잘 쓰지 않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너 공부 좀 해라.”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사람들은, 특히 좌파들은 아주 작은 일만 생겨도 큰 목소리로 외친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또 촛불을 들어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자신들이 촛불을 든 이후 나라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생각지 않는다. 맥락없이 “아무튼 박정희가 나쁜X이야”라고 외치는 친구와 마찬가지로 자기 행동이나 사고에 대한 성찰도 없다.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광장에 촛불 들고 모이는 것을 능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모여서 으쌰으쌰하면 뭐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번 재미(?)를 봐서 더욱 그렇다. 어쩌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싸움 구경, 불 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지만 불난 집이 자기 집이고 싸우는 사람이 자기 가족임을 눈치챌 만한 지력은 없는 걸까?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임기 전에 몰아내는 것을 어떻게 월드컵 축구 거리 응원 정도의 짜릿하고 신나는 이벤트로 생각할까?
 작정하고 선동에 나서는 사람들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들의 얄팍한 선동에 속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달콤한 선동에 속아 광장으로 뛰어나가는 무지한 행동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나라가 뒤집어지고 학교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정치적 이슈를 “화장품 공구도 하고 게임도 하는” 그런 기분으로 참여하는, 광장에서의 시위를 소풍이나 인기 연예인 콘서트쯤으로 여기고 모여서 즐기는 철없는 영혼들은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은 가벼워지는데 교육은 제 역할을 못하는 이 상황의 출구는 있는 걸까?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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