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실패한 정권은 모두들 똑같은 이유로 실패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어쩌면 소설 자체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를 이 문구는 수많은 칼럼과 논평의 서두로 상투어처럼 애용돼왔다. 필자는 윤핵관 그룹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숙청 시도로 촉발된 수개월째의 난조와 침체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실태와 현주소를 참작하건대 이번 글의 서두로 등장한 문장을 감히 다음과 같이 변용하고 싶다.

“성공하는 정권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성공하지만, 실패하는 정권은 모두 똑같은 이유로 실패한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인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 현지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의 지극히 짧은 회동을 마친 다음 평소 습관대로 무심결에 내뱉었을 비속어가 낳은 파문의 여진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라 발음했다고 주장하는 진영이나, ‘날리면’이라 말했다고 우기는 세력이나 이제 한 가지 부분에서만은 대략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분위기이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책임진 고위 당국자들의 역량과 실력이 국민들의 기대와 눈높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의 이념적 성격을 불문하고 대통령이 해외순방에 나섰다 돌아오면 여론조사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이 보통이었다. 만약 정상외교가 여론의 동향에 우호적으로 반영되지 못한 경우, 그 이유는 국내에서 벌어진 다른 불미스러운 악재에 기인해 있었다. 이를테면 러시아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만나 진행한 한러 정상회담에서 거둔 성과가 빛바랜 원인은 순전히 이른바 ‘옷로비 사건’의 여파에서 비롯되었다.

반면, 외교활동 수행과정 자체가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금번 순방외교는 상당히 이례적 사례에 속한다. 민심의 주류는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해만 끼쳤다고 판단하고 있다. 별다른 가시적 결실을 올리지 못한 윤석열표 정상외교가 단순한 정책실패의 차원을 뛰어넘어 외교참사로까지 비화된 저변의 배경이다.

양이 이끄는 군대가 된 한국외교

“사자가 이끄는 양의 무리가 양이 이끄는 사자의 무리를 이긴다.”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 이래로 서양에서 철칙처럼 통용되어온 리더십의 원리이다. 성공한 군주들은 강력한 리더십 즉 지도력이 앞에서 끌어주고, 검증된 콘텐츠, 곧 효과적 정책이 뒤에서 받쳐주는 구조와 형태를 띠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지도력과 정책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하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면? 성공한 인물과 집단은 예외 없이 전자를 택하는 법이다. 왜냐? 지도력과 정책은 물독과 바가지의 관계인 연유에서였다.

콘텐츠가 부실한 현실은 바가지에 금이 간 데 비유될 수 있다. 리더십이 취약한 상황은 밑 빠진 독에 빗댈 수가 있다. 깨진 바가지일지언정 우공이산의 자세와 심정으로 인내심을 갖고서 부지런히 물을 퍼 담으면 독에는 서서히 물이 채워진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는 대형 살수차 100대를 동원해도 물 한 방울조차 온전하게 담기가 불가능하다.

필자는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대한민국의 직업 외교관들이 갑자기 무능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외교 관료들의 전반적 자질과 평균적 수준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단지 외교를 이끄는 리더십에 결정적 변동이 생겼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실상 최초로 영입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2차관이었다. 대선후보 윤석열은 19명으로 구성된 외교정책 자문단을 꾸렸다. 공식적으로는 윤덕민 전 외교연구원장이 모임의 좌장을 맡았으나 자문단의 최고 실세가 김성한 전 차관이었음은 물론이다. 김성한은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 직후 용산 청와대실의 국가안보실장으로 취임해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진짜 의중이야 어떻든 간에 세간에서는 김성한 실장이 윤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기동창생인 것이 외교안보 사령탑에 발탁된 핵심적 사유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외교에 실패하면 국가의 존립이 뿌리부터 통째로 위태로워지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중차대한 외교안보 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로 구실할 인물을 연고인사로, 정실인사로, 측근인사로 뽑았다는 시각이 유관 공직사회 전체에 파다해질 수밖에 없는 부주의한 행동을 대통령이 덜커덕 저질러버린 셈이었다.

내치는 문고리 인사가 일정한 정도에서 용인될 여지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북한과의 관계 관리를 포함한 외치에서는 문고리 인사가 있어선 안 된다. 한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저 머나먼 중남미나 아프리카 소국의 대사로 대통령의 초등학교 친구를 임명했다면 모를까, 안보실장에까지 윤핵관을 내리꽂았다는 인상을 주어선 안 된다. 김성한 안보실장 카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제관계에 관한 식견과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허술하고 낮은지를 역력히 입증해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김성한 안보실장이 대단히 유능한 외교안보 전문가일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그러나 실적과 경력에서 김성한 실장에 버금거가나 또는 능가할 능력과 경륜의 소유자가 우리나라 조야에 분명 여럿 있었으리라. 윤석열 대통령은 안보실장에 자신의 초등학교 친구를 앉힘으로써 인맥이 먼저이고 능력은 나중이라는 그릇된 신호를 관가에 발신하고 말았다. 인맥이 먼저고 능력은 나중인 정권 아래에서 어느 공직자가 미쳤다고 최선을 다해 일하려 하겠는가? 대충 시간이나 어영부영 때우며 이 정권이 빨리 끝나길 바랄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 정부는 우리나라 역대 정권들 중 외치에서 가장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아왔다. 김대중 정부의 외교안보 수장으로 맹활약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무런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지 않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었다.

철저히 능력 본위로, 실력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져야만 할 영역이 다름 아닌 경제와 외교안보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과 외교안보 라인이 능력 중심으로, 실력 우선으로 선발됐다고 믿을 국민이 현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하면 과연 얼마니 되겠는가? 경제위기와 안보위기의 복합위기 앞에서 유난히 갈팡질팡하고 허둥지둥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안타까운 모습이 본인 스스로의 자업자득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