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오는 12월부터 화석연료 기업에 대해 ‘횡재세(Windfall Tax·초과이윤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러시아의 공급중단 사태로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막대한 이윤을 챙긴 화석연료 기업이 그 대상이다.

EU의 횡재세 도입, 민주당의 ‘반기업 정서’ 캠페인에 기름 붓나?

EU 각료급 이사회인 교통·통신·에너지이사회(이하 에너지이사회)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에너지 가격 급등 대책을 마련했다.

카드리 심슨 유럽연합(EU) 에너지 정책담당 집행위원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EU 에너지 장관 회의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EU는 이날 긴급정상회의를 열고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 완화를 위한 대안들에 관해 논의한다. [사진=연합뉴스]
카드리 심슨 유럽연합(EU) 에너지 정책담당 집행위원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EU 에너지 장관 회의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EU는 이날 긴급정상회의를 열고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 완화를 위한 대안들에 관해 논의한다. [사진=연합뉴스]

뿐만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 주요국가들은 개별적으로 이미 화석연료기업에 대한 횡재세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중이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횡재세 도입’ 주장이 강화될 가능성이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서방국가의 횡재세 도입 취지와 그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 등을 검토해서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처럼 반기업 정서를 토대로 삼아 정유사들에 대한 징벌적 과제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해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EU와 영국 등 서방국가들의 횡재세 도입의 특징은 세 가지 정도이다.

EU의 횡재세, 징벌적 과세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 위기 극복대책의 일환

첫째, 서방국가들의 횡재세 부과는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횡재세 부과로 인한 기업의 투자활동 위축 등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7개 EU회원국들은 피크 시간대에 전력소비를 최소 5% 감축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리나 시쿠트 에스토니아 경제인프라 장관은 "(에너지) 평균 가격을 내리기 위한 가장 유력한 조치는 피크 시간대 전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 대응차원에서 횡재세를 도입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에너지 절약’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EU의 횡재세는 기업 살리기가 목적, 독일은 횡제새 투입해 도산위기 가스회사 국유화

둘째, EU의 횡재세는 석유, 가스, 석탄을 생산하거나 정제하는 기업들이 거둬들인 잉여 이익에 대해 과세하지만 그 용도는 ‘위기에 처한 사람과 기업’을 돕는 데 있다.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유가 급등 등으로 타격을 입은 에너지 판매기업을 수혜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EU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기업들을 돕기 위해 횡재세를 부과해 140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95조원)를 모금하자는 집행위원회의 제안에 대해 합의했다”고 밝혔다. '연대 기여금'이라는 명칭의 세금을 한시적으로 의무 부과한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추가 세금이지만 ‘연대 기여금’이라는 명칭에서처럼, 그 명분은 사회적 연대에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유럽연합은 횡재세 도입 방침을 밝히면서, 에어지 기업에서 195조 원을 거둬들여 소비자 부담을 낮춰주겠다고 밝혔다. [사진=MBC 캡처]
유럽연합은 횡재세 도입 방침을 밝히면서, 에너지 기업에서 195조 원을 거둬들여 소비자 부담을 낮춰주겠다고 밝혔다. [사진=MBC 캡처]

화석연료 기업을 징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부과하는 것이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독일 정부가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국 최대 가스회사 '유니퍼'를 국유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협상은 막바지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정부는 지난 7월 유니퍼에 약 150억 유로(약 20조9000억원)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회사 지분 30%를 사실상 매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함에 따라 경영난이 심각해졌다. 독일 정부는 유니퍼를 완전히 인수하는 방안으로 선회했다. 현재 유니퍼의 최대 주주는 지분 과반을 보유한 핀란드 국영 에너지 회사 포르툼이다. 독일 정부는 포르툼이 소유한 지분을 인수할 뿐만 아니라 약 80억 유로(약 11조1370억원)에 달하는 자본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유니퍼 지분의 약 90%를 확보하게 된다. 이처럼 완전 인수가 종료되면, 유니퍼에 투입하는 공적자금은 약 290억 유로(약 40조 4000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 비용은 국채가 아니라 횡재세를 통해 조달된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유니퍼 인수 지원에 사용될 예산은 국채 형태가 아닌 에너지 회사의 횡재세에서 충당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U는 정제기업에도 횡재세 부과, 영국은 정제기업 제외하고 실시

셋째, 횡재세 부과 대상 기업을 가급적 제한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화석연료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라 영업이익의 부침이 심한 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변수로 인해 유가나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기도 하지만 코로나19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에는 가격 급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 기업이 영업적자에 시달린다고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격 급등으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둔다고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이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것은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해 가계와 기업이 겪는 위기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U 합의안에 따르면, 횡재세 부과대상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생산 및 정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다. 정제기업에 대해서도 부과하는 게 특징적이다.

그러나 EU에 앞서 횡재세를 도입한 영국은 원유를 직접 시추·생산해 판매하는 에너지 기업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영국 정부는 지난 5월 26일 정유업계의 초과이익에 대해 25% 세금을 부과하는 ‘에너지 수익세’를 도입, 당일에 즉각 발효시켰다. 이미 수익의 40%에 세금을 부과하는 상황에서 25%를 추가 과세한 것이다.

단 원유 생산 활동에 대한 수익에만 세금을 매기고, 수입 원유 정제 활동과 관련된 수익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의 정유 4사들처럼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후 석유 제품으로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횡재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내수시장의 석유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민주당 등 야권의 횡재세 법안, 위기 극복 대책은 없고 징벌적 과세 차원에서 추진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은 동원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량.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은 동원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량. [사진=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12조 3203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지난달 1일 정유사의 초과 이득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로 징수하는 ‘횡재세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유 4사의 이익이 기술혁신으로 생긴 수익이 아니라, 유가 상승에 따른 ‘단순 횡재’라는 게 법안의 취지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실상 횡재세에 해당되는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석유정제업자가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 소득에 비해 5억원 이상 초과 소득이 발생할 경우, 초과 소득의 20%를 법인세로 추가 납부하는 게 그 골자이다.

야권의 횡재세법은 접근방법 자체가 EU나 영국과 다르다. 정유 4사가 돈을 많이 벌었으니 추가 징세하겠다는 단순 논리이다. EU나 영국처럼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위기극복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그 대책의 일환으로 횡재세를 검토하는 게 아니다.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징벌적 과세를 신설하겠다는 정치공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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