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6차례 해임건의안 당사자들은 대체로 '자진사퇴'해
여당과 대통령실은 반발 분위기...대통령 수용하지 않을 듯
'결자해지' 당사자는 윤 대통령...정치력 보여줘야 할 필요성도

29일 통과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에 같은날 오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국힘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9일 통과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에 같은날 오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국힘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29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만이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단독 표결하여 통과됐다. 이에 대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하고 있으며 대통령실에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암시하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여야 강대강 대치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지만 여소야대 국면인만큼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형편이다.

#1. 역대 7번째 해임결의안...지금까지는 '자진사퇴'가 관례

이날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박 장관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7번째로 해임건의안 대상이 됐다. 이전에 해임건의안을 맞이했던 국무위원은 △ 이승만 정부의 임철호 전 농림부 장관(1955년) △ 박정희 정부의 권오병 전 문교부 장관(1969년) △ 동 정부의 오치성 전 내무부 장관 △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2001년) △ 노무현 정부의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2003년) △ 박근혜 정부의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2016년)이다. 이 중 김재수 전 장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진사퇴했다.

역대 해임건의안 통과로 봤을 때, 건의안의 당사자가 된 국무위원이 '자진사퇴'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라도 봐도 좋은 대목이다.

그렇다면 김 전 장관은 왜 사퇴하지 않았을까. 이는 그의 해임건의안이 공직 수행의 문제로 제기된 것이 아니라 취임하자마자 일으킨 '언사'의 문제 때문이란 평가다. 김 전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그가 특혜 대출 및 전세의혹, 모친 의료비 부정수급 논란으로 장관 부적격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경북대 동문 커뮤니티에 "온갖 모함과 음해, 정치적 공격이 있었다",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흙수저라 무시를 한 것"이란 글을 씀으로써 야당을 격분시킨 데 따른 결과였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가 해임건의안 수용 거부 입장을 밝혔고 김 전 장관은 2016년 9월 4일에 취임해 2017년 7월 2일까지 장관직을 수행했던 것.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해임건의안이 법적 구속력을 갖진 못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건의안을 거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에 해임건의안의 대상이 된 박 장관과 김 전 장관은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김 전 장관의 경우엔 장관직을 본격 수행하기도 전에 개인적 언사로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던 반면, 현 박 장관의 경우엔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엄연한 외교부 장관의 주무이기 때문이다. 해임건의안이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 캐나다 순방 외교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국격 손상과 국익 훼손이라는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사로 끝난 데 대해 주무 장관으로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명시한 데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9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만 참석한 국회 본회의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만 참석한 국회 본회의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2. 강력 반발하는 여당과 대통령실...'대통령 거부권' 전망돼

집권여당인 국힘은 민주당이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표결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하는 상황. 국힘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직후 낸 논평에서 "토론과 협의를 통해 운영돼야 하는 국회가 '정부 발목꺾기'에만 집착하는 민주당의 폭거로 또다시 무너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이 주장하는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사유는 그 어디에도 합당한 이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국힘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주 대표는 "민주당은 말로만 국익을 말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국익이 어떻게 되든 간에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며 "뭔가 흠을 잡아 확대·확장하는 게 대선불복의 뜻이 있는 것 같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이어 "국민들이 민주당에 169석을 허용한 것이 얼마나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고 위험한지 차차 알아갈 거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또한 국힘은 이날 오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집단으로 벌이기도 했다. 국힘 의원들이 든 피켓엔 '민생외면 정쟁유도/민주당은 각성하라", "협치파괴/의회폭거", "반민주 반의회/국회의장은 사퇴하라", "중립의무 위반/강력 규탄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통 국회 내에서 정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야당이 장외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는 게 일반적인데, 여소야대 형세가 심하다보니 이번엔 여당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고 볼 수 잇는 부분이다.

대통령실은 해임건의안 관련한 공식 입장이 "입장 없음"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같은날 출근길에서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이고, 지금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며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국민께서 자명하게 아시리라 생각한다"고 밝힌만큼 민주당의 해임건의안 의결에 간접적인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윤 대통령이 대통령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 형국이다.

#3. 윤 대통령의 정치력 요구되는 상황...'결자해지'해야 할 필요성 거론돼

현 상황에서 가장 빠른 해결책은 해임건의안의 당사자인 박 장관이 자진사퇴하는 것. 이는 역대 해임건의안의 관례를 따르는 것이며 '결자해지'이기도 하단 평가다. 또한 윤 대통령에게 가해질 여론의 비난을 더는 결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장관이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이 해임건의안 통과 후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 박 장관은 평소와 다름 없이 30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로 출근했다. 다만 해임건의안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다소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해임건의안의 당사자가 된 박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로 출근하는 모습. 해임건의안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박 장관의 얼굴이 다소 굳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임건의안의 당사자가 된 박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로 출근하는 모습. 해임건의안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박 장관의 얼굴이 다소 굳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윤 대통령이 박 장관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고 박 장관이 평소대로 출근했기 때문. 문제는 국회의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야당의 반발이 더욱 거세져 국정 동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단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거부했던 시기는 임기 중반을 넘어섰던 2016년 9월이었던 반면 윤 대통령은 아직 임기 초반이기 때문에 여야 대치가 수반할 부정적 영향을 직격으로 맞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국민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 30일 오전 발표된 한국갤럽의 9월 5주차 국정운영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도는 전주보다 4% 하락한 24%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65%에 달했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결과가 반영된 여론조사임을 감안하면 상당수의 국민이 현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윤 대통령이라고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정 평가 사유를 보면 이 사실이 더욱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직무 수행 부정 평가 사유의 1위는 '외교'였다. 전주(7%)보다 10% 상승한 17%를 기록한 것. 여기에 발언 부주의(8%), 진실하지 않음/신뢰부족(6%), 국격훼손/나라망신(1%) 등의 사유가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국민은 박 장관보다도 윤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는 해석도 배제할 수 없다.

30일 오전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대한 부정평가가 국정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결자해지'를 해야 할 주체는 윤 대통령일 수 있단 분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사진=한국갤럽]
30일 오전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대한 부정평가가 국정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결자해지'를 해야 할 주체는 윤 대통령일 수 있단 분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사진=한국갤럽]

결국 윤 대통령이 박 장관을 유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직접 나서서 '결자해지'해야한단 지적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이 현 사태 관련해 사과까진 아니더라도 '유감' 정도의 뜻을 표명해 야당의 반발을 무마함과 동시에 국민 여론에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단 것이다. 

이번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듯 윤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은 이전 대통령들보다 미약하고 코어 지지층도 적다. 더구나 윤 대통령의 경력으로 미루어보건대 정치적 협상을 해본 경험이 없어 여야대치를 풀기 더더욱 어려운 상황. 하지만 현 정치 지형에서 윤 대통령이 비판 여론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대통령과 여당의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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