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루나와 테라 개발사인 테라폼랩스의 공동창업자 권도형 대표에 대해 검찰이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했다. 테라 사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선 권도형 대표의 신변을 확보하는 게 가장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앞서 검찰은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 창립 멤버 등 6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외교부에는 이들에 대한 여권 무효화 조치도 요청한 상태이다.

앞서 권 대표는 지난 4월 말 국내 회사를 정리하면서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권 대표가 출국한 지 1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5월 중순쯤, 테라와 루나는 일주일 만에 99% 폭락했다. 1억 원어치가 500원도 안 되는 수준까지 떨어져, 실제 손실은 –99.99999%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창업자는 지난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며 귀국 여부를 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권도형 테라폼랩스 창업자는 지난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며 귀국 여부를 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테라와 루나 손실율은 99.9%... 검찰, 권도형이 폭락 전부터 해외도주 준비 판단

검찰은 권 대표가 폭락 전부터 해외 도주를 준비했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권 대표 가족과 재무 관련 핵심 인물들도 5월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싱가포르 경찰이 권 대표가 싱가포르에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 권 대표는 "도주가 아니다"라며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 중이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은 "그동안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변호인을 통해 출석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며 권 대표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검찰은 권 대표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당초 테라·루나 투자자들은 사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경법),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으나, 지난 14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은 혐의를 수정했다. 테라·루나가 일종의 '증권'에 해당하는데, 이에 따르는 증권신고서 제출 등 투자 규제를 준수하지 않아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바뀐 것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사법당국은 테라·루나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Howey Test(하위 테스트)'를 근거로, 테라·루나에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7일 싱가포르 경찰은 “권도형이 싱가포르에 없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지난 17일 싱가포르 경찰은 “권도형이 싱가포르에 없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투자계약증권은 사업내용 등록하고 모집 진행해야 하는 ‘자본시장법’ 위반해

투자계약증권이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이익을 기대하고 공동 사업에 금전을 투자해 그 결과에 따라 대가를 받는 형식의 증권을 의미한다. 검찰은 테라·루나가 '공동 사업에 의해 금전 투자가 이뤄지고, 그 이윤이 타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창출됐으므로' 증권성을 띤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금융위원회에 관련 사업 내용을 등록하고 모집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자본시장법 위반이라는 게 검찰의 논리이다. 실제로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권 대표가 코인을 사전 발행하고 이를 소수에게만 알린 점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9년 권 대표가 당시 기준으로 약 1조5600억원 상당의 테라 관련 코인(SDT) 10억개를 사전 발행하면서, 이 사실을 소수의 기관 투자자에게만 알렸고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당시 루나 코인의 보유량에 따라 의사 결정 투표권을 부여했는데, 검찰은 이를 근거로 테라와 루나 코인에 증권 성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은 의사 결정 구조가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는 ‘탈중앙성’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권 대표의 테라 프로젝트는 의사 결정 구조가 주식을 다량 보유한 일부 소수에게 집중돼 있는 일반 기업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가 발행한 코인 역시 증권 성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 사기나 유사수신 혐의보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이 용이하다고 판단

법조계에서는 기존 투자자들이 고소한 ‘사기, 유사수신, 특경법상 처벌 수위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보다 훨씬 높다’는 점에서 ‘테라·루나의 증권성을 주장하는 것이 사기, 유사수신보다 혐의 입증에 더욱 용이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유사수신 혐의를 적용하려 해도 현행법상 가상자산은 '금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테라ㆍ루나 폭락 사태에 대해 사기죄로 혐의를 따지기 위해서는 사업 주체의 고의성 입증이 필수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테라·루나의 운영 주체가 사기를 저지를 의도가 있었음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사법당국이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할 경우 업계 사활 걸려

업계에서는 사법 당국이 특정 가상자산(암호화폐)에 대해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가상자산·블록체인 업계의 동력을 꺼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을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지급수단이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왔다. 국내에 유통되는 가상자산에 대해 증권성 판단을 내린 전례가 없는 실정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연내 ‘증권성 토큰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통해 증권형·비증권형 토큰을 정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가상자산을 증권성 유무로 나눠 증권형 토큰은 자본시장법을 통해, 비증권형 토큰은 새로 제정될 디지털자산 기본법에 따라 규율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일 금감원·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자본시장연구원 등이 모인 가운데, 증권형 토큰의 발행 및 유통과 관련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일 금감원·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자본시장연구원 등이 모인 가운데, 증권형 토큰의 발행 및 유통과 관련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위가 어디까지를 증권형 토큰으로 간주할지에 따라 업계의 사활이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루나와 비슷한 스테이블 코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퇴출되면 디지털증권시장으로 넘어가

루나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스테이블 코인은 모두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트론(TRX) ▲웨이브(WAVES) ▲메이커(MKR) ▲스팀(STEEM) 등이 이에 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금융 당국이 이들 코인을 증권형 토큰으로 간주할 경우, 이 코인들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 당국은 증권 성격을 가진 코인들은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닌, 한국거래소 산하에 신설될 디지털증권시장으로 넘긴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제외한 상당수 코인에 대해 증권성이 있다고 간주할 경우, 거래소에 있는 이들 코인을 상장폐지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향후 판결을 통해 테라·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파급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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