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간신문.(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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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쯤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갓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요 미디어들의 특성과 사례들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신문의 미래에 대한 찬·반 토론 중에 한 학생이 ‘수구적 보수 신문’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토론을 마치고 그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수구적 보수 신문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학생 왈 ‘군부 독재를 찬양했던 나쁜 신문’이라고 한다. 또 물었다. “그럼 수구 보수라는 말은 반민주주의라는 뜻이냐?” 고개를 끄떡이면서 내뱉는 말, “보수 신문은 소멸되는 게 맞습니다.” 내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보수 신문 말고는 계속 존속할 수 있는가?”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강평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더니, 중·고등학교 정치·경제 수업과 방과 후 수업에서 배웠다고 한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마디로 ‘조·중·동=보수신문=나쁜 언론’이라는 도식이 머릿속에 정형화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초·중·고등학교 정규 교과에 미디어 관련 과목은 없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회 관련 수업에서 약간 스치듯 언급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만 방과 후 수업 같은 비정규 과목이나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들은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는 이름으로 더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매년 수 백억원의 예산을 쓰는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주요 사업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문제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 이른바 ‘미디어 바로 읽기’는 ‘좋은 미디어와 나쁜 미디어’를 구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특정 사건과 관련된 조선일보 기사를 비판하고 한겨레신문 기사가 왜 좋은 기사인가를 비교 설명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미디어 교육을 통해 ‘선악의 이분법’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일간신문.(사진=연합뉴스)
국내 일간신문.(사진=연합뉴스)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지닌 언론 보도들을 균형있게 접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도리어 그런 주장은 정치적 편견을 빠진 수구 꼴통 논리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교육 담당자들이 대부분 언론 관련 단체나 시청자 단체들이 배출한 이른바 ‘미디어 일꾼들(?)’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 관련 단체들이 주로 어떤 성향인가는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얼마 전 현행 국사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들이 실렸다. 진단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경인교대 강석화 교수는 인터뷰에서 국사 교과서의 80%가 현대사이고, 그 내용이 민주화 투쟁에 맞추어져 있다고 지적하였다. 분량보다 역사를 선·악의 투쟁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이 더 문제라는 주장이다.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구분하는 이분법 시각도 이런 왜곡된 역사교육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정권 내내 국민들을 호도했던 ‘민주와 반민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같은 이분법을 언론에도 그대로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내놓은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언론개혁 주장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언론개혁을 지탱하는 토대가 왜곡된 미디어 교육에 있다. 국가와 공교육 시스템이 사실상 방치해 오면서 좌파 세력 육성의 온상이 된 미디어 교육을 정규교육체계로 수렴해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권에서 게토화된 역사·사회 교육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데, 미디어 교육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좌파 진영이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시청자미디어재단을 비롯한 미디어 교육 관련 기관들도 시급히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지난 정권 인사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미디어 관련 기관장들을 밀어내는 것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좌파 미디어들의 토착 기반을 박멸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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