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저녁 9시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직장동료였던 30대 남성 전모씨의 스토킹에 시달린 끝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토킹이 참혹한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늦은 밤도 아닌 밤 9시에 서울 한복판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살인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다.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씨는 이미 불법촬영 혐의와 스토킹 혐의로 고소를 당해서 사건 다음날 1심 선고를 앞두고도 대담하게 살인을 저질렀다. 게다가 살인을 한 그날 낮에는 두 달 치 반성문을 법원에 내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성문을 쓰면서 흉기를 구입하고 살인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법원에 대해서도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스토킹 가해자였던 전씨에 대해 미리 조치를 제대로 했더라면, 20대 여성 역무원의 살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다.

그동안 스토킹으로 인한 범죄를 막기 위한 조치가 너무 미흡했다는 점에서, 이번 신당역 살인은 “국가가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의 미흡한 규정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① 스토킹 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전씨로부터 스토킹을 300여차례나 당한 20대 여성 역무원은 경찰에 전씨를 고소했던 직후를 제외하면 별다른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8일부터 1개월 동안 '신변보호 112시스템 등록' 조치를 받았지만, 1달 후 연장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한 달간 피해자의 위험도를 체크했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고, 피해자도 연장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신고한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에 대한 안전조치가 11월 초 해제된 이후, 피해자가 전씨를 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를 했을 때도 추가 조치는 없었다. 결국 10개월 뒤 전씨가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했던 셈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원하지 않는데 경찰이 강제할 순 없다"며 "위험도가 높으면 조처를 할 것을 권고밖에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경찰도 법원도)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최대한 배려를 했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경찰에서 한 달 동안 신변 보호를 해 주었지만, 친고죄로 피해자의 고소사건이라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6일 CBS라디오에서 '가해자 감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6일 CBS라디오에서 '가해자 감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그러면서 이 교수는 “감시의 대상이 잘못됐다”고 짚었다. 처음부터 스토커를 감시해야 되는데, 스토킹 피해자를 감시하는 제도를 운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까 스토커는 대낮에 막 돌아다니면서 피해자를 감시하는데, 그걸 제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 교수는 코로나 확진자의 휴대폰에 앱을 깔아서 지리적 추적을 했던 것처럼, 스토커의 휴대폰에 그런 종류의 앱을 깔아서 피해자에게 계속 접근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피해자 대신 스토킹 가해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② 법무부,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규정 폐지 추진키로

16일 법무부는 스토킹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토킹 피해자가 원치 않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반의사 불벌죄는, 피해 당사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뜻한다.

현재 해당 법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으로 인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수사기관의 초기 개입이 어렵고,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범죄를 저지르거나 위해를 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가 이처럼 신속한 조치를 내놓은 데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장관은 지난 15일 업무를 마친 뒤 저녁 7시쯤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을 비공개 방문해, 역 관계자에게 사건 경위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 장관은 수행원 없이 홀로 현장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사건을 책임 있게 챙기기 위해 나왔다”며 “스토킹 범죄로 재판받던 범죄자가 스토킹 피해자를 살해했는데 국가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족분들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도 안 된다”면서 “법무장관으로서 책임감을 깊이 느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위치 추적 범위도 확대된다. 2차 스토킹범죄 및 보복범죄 예방을 위해 사건 초기 잠정조치 방법으로 가해자 위치추적을 신설하기로 했다. 지난달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범죄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최장 10년까지 부착하도록 하는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당시 한 장관은 “개정안을 통해 국가가 스토킹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③ 회계사라고 구속영장 기각?...비극적 살인사건 앞에 법원도 자성 분위기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오던 전씨는 사건 당일 일회용 승차권을 이용해 신당역으로 이동한 뒤 화장실 앞에서 1시간 넘게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당시 일회용 위생모를 쓸 정도로, 오래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 모씨가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 모씨가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들이 분노하는 대목은 법원이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이다. 도주 우려가 없고 주거가 확실하고 전문직으로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스토킹은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법원이 이런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는 점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본인의 동생이나 누나, 혹은 어머니가 스토킹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법원도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변호사들도 자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6일 유튜브 ‘어벤저스’에 출연한 서정욱 변호사는 “스토킹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대표 큰누나 아들이 스토킹해서, 피해 여성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당시 이 대표는 조카의 변호사로서 ‘심신미약으로 인한 범죄’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 변호사는 “스토킹으로 기소가 되면, 판사와 제일 친한 변호사를 수소문한다”며 “전관이나 판사와 친한 변호사가 밀착이 돼 영장을 기각하고 가볍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해자 전씨도 300회 이상 스토킹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구속됐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연이어 서 변호사는 ‘스토킹은 살인의 전조’로, “1번 스토킹하면 100번 1000번 스토킹한다”며 “앞으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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