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경우, “한국은 불법파업 천국이 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나온 안들이 폭력·파괴행위는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반면, 최근 발의된 안은 ‘폭력·파괴행위여도 노조의 의사결정에 따른 행위라면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 및 가압류를 제한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이 1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이 1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은 근로자의 민·형사상 면책 범위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범위를 대폭 넓히고 노조 교섭 대상인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라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가압류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 등을 거치며 개정안의 내용이 점점 더 세게, 더 강경하게 바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 8165억 손실 초래...민주노총, ‘손배소 금지 입법’ 주장

지난 2016년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지만,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 때문이다. 천문학적 금액(8165억원)의 손실을 입은 대우조선해양이 노조 측에 470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했고, 노동계가 반발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민법을 앞세운 손해배상 협박으로 무력화되는 현실을 바로잡자”며 수년간 방치한 노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런 민노총의 입장을 대변이라도 하듯, 지난 8월 31일과 9월 1일 각각 발의된 강민정 의원(민주당)안과 양경숙 의원(민주당)안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 및 노조 활동에 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인정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처럼 하청노조 파업으로 원청이 손해를 봐도 배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단체들,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 면책해 사용자 재산권 과도하게 침해” 비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14일 국회에서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지난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전 위원장 측에 해당 법안이 “노조에 면죄부를 주는 ‘노조 방탄법’이며 죄 없는 기업과 주주, 근로자에게 손해를 보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 파업 사태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이나 가압류 요구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를 밀어붙이는 데 대해 경제계가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전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해 사용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면서,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법이라고 말했다.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14일 오후 국회를 찾은 손경식 경총 회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14일 오후 국회를 찾은 손경식 경총 회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조 강한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위헌’ 시비로 ‘손배 금지’ 입법화 안돼

야권에서는 영국 사례를 들어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을 과도하게 요구하지 않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은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상한선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별 노조 구성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묻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노조의 목소리가 강한 나라에서도 노조의 불법행위는 면책이라거나 손배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이준희 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은 “프랑스는 1982년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입법이 있었으나 위헌 결정이 나서 시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 개정안들이 ‘위헌’이라며 ‘입법을 중단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특히 하이트진로의 경우 파업에 따른 손배 소송을 철회하는 대신, 화물연대로부터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낸 점을 거론하며,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합의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파업이 장기화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전해철 위원장은 14일 사용자 단체장들과의 면담을 마친 후 “다음주 초 노동자 중심 대책위원회와 만나서도 이야기를 들을 계획”이라며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등 노란봉투법 제정에 드라이브 걸어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란봉투법' 제정을 추진하기 위해 노동시민단체 80여 개가 모여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기업이 손해배상과 가압류 등으로 침해하고 있다며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손해배상은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것임을 대우조선하청 노동자들 투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며 “손해배상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임을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 투쟁을 통해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14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에서도 올해 말까지 국회가 노조법 2조, 3조를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법 2조의 개정을 통해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력을 가진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조법 3조의 개정을 통해서도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수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22개 민생입법과제에 ‘노란봉투법’ 포함돼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22대 민생 입법 과제’ 중 하나로 ‘노란봉투법’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국회 과반 의석(169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내놓은 22개 민생입법과제에 노란봉투법을 포함한 만큼, 올해 정기국회 안에 법 통과를 시도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황이다. 정의당도 노란봉투법 통과를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재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6명의 위원 중 10명이 민주당과 정의당이다. 상임위 위원장은 물론 법안심사소위 위원장도 민주당이 맡고 있다.

국회는 다음달께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서 해당 6개 법안을 통합 심사하는 형태로 대안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불법파업에 따른 기업의 피해는 감당 못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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