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정부가 바이오 의약품 등 생명공학 분야도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이어 바이오·제약 등 핵심 산업의 자국 내 생산을 사실상 강제하는 법안이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를 미래 핵심 산업으로 보고 사활을 걸고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중인데 점차 가열되는 미중 갈등 가운데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골자로 하는 내용으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미국에서 발명된 모든 것을 미국 내에서 만들도록 했다. 

백악관은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강력한 공급망 구축, 물가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글로벌 산업은 생명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혁명의 전환점"이라며 "미국은 해외의 원재료와 바이오 생산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고, 생명공학 등 주요 산업의 과거 오프 쇼어링(생산시설 해외이전)은 우리가 중요한 화학 및 제약 성분 같은 재료에 대한 접근성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오는 14일 관련 회의를 통해 이날 행정명령을 구체화할 광범위한 신규 투자와 지원을 발표한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바이오 생산을 확대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것"이라며 "미국은 과거 생명공학 분야의 해외생산을 허용해왔지만, 중국의 첨단 바이오 제조 기반 시설에 대한 의존도에 우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생명공학 분야의 생산시설 해외 이전이 미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위기감이 이번 조치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의 산업과 탄탄한 연구 기업을 감안할 때 바이오 경제는 우리 강점이자 엄청난 기회"라며 "해외의 취약한 공급망을 미 전역에서 고임금 일자리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국내 공급망으로 대체하는 바이오 제조업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한국 바이오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정부와 기업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바이오헬스 산업 관련 행정명령은 IRA와 반도체법 등으로 한국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IRA법은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도록 하는 법안이다. 반도체법은 미국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투자하지 못 하게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담았다. 

이에 더해 미국 정부의 이번 행정명령은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사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와 기업 모두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생산을 위탁하지 말고 자국 생산을 하라며 이를 사실상 법으로 강제한다면 한국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코로나19 모더나 백신을, SK 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 백신을 국내에서 만드는 중이다. 

일단 정부는 바이오·제약 분야의 미국 내 생산에 대한 지원과 외국 생산에 대한 규제에 관한 구체적 발표 내용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 정부가 180일 내에 바이오산업 자국 내 생산의 구체안을 내놓을 것으로 안다. 거기에 어떤 채찍과 당근이 들어갈지 봐야 한다"며 "결국 보조금으로 자국 산업을 키워 중국과 맞서겠다는 것인데 우리 기업이 영향을 받을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리쇼어링 정책에 몰두하고 있다. 재정과 제도적 인센티브를 통해 미국 내 투자·생산을 확대한다는 것으로 '중국 견제' 역시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핵심 산업 세 가지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를 지목해 중국의 산업 경쟁력과 기술 우위를 불허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들 분야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정부로부터 유탄을 맞는 일 역시 늘어날 수 있어 대전략(Grand Strategy)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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