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지정 기준 강화...일부 교사, 학생들에게 학부모용 투표용지에 대리 투표하도록
돌아온 조희연, 혁신학교 확산에 박차...11년 만에 4배 증가
학부모들, 혁신학교 ‘학력저하·포괄적 성교육’ 반대

온수초등학교가 지난달 학부모에게 배포한 혁신학교 재지정 찬반 여부 투표용지와 봉투(학부모 제공)
온수초등학교가 지난달 학부모들에게 배포한 혁신학교 재지정 찬반 여부 투표용지와 봉투(학부모 제공)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 재지정과 관련해 학부모 의견을 묻는 투표에서 부정투표 논란이 일어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구로구 온수초등학교는 교원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혁신학교 재지정’ 찬반의견을 묻는 투표를 진행했다. 학부모 투표권은 전체 840명 재학생 기준 1인 1표로, 2023학년도 혁신학교 재지정 신청 동의 여부에 수기 기입 하도록 했다. 투표용지는 동봉한 봉투에 넣은 후 밀봉상태로 학교 중앙현관에 위치한 투표함에 넣도록 했다. 학부모가 직접 제출하거나 학생이 대신 투표함에 넣을 수 있었다. 학부모 투표 기간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3일 동안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매년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를 진행한다. 운영 기간은 4년이다. 기존에는 서울형 혁신학교 재지정 및 신규지정 공모에 신청하려면 교원과 학부모 중 한쪽의 동의율만 50%를 넘겨도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통과가 가능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교사와 학부모 동의율이 모두 50% 이상이 넘어야 하는 것으로 기준이 강화됐다.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지난달 7일 이 같은 내용의 ‘2023학년도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 계획’과 ‘네 가지 운영 전략 변화’를 발표했다. 2023학년도 서울형 혁신학교 신규 및 재지정 신청은 오는 15일부터 시작된다.

학부모 투표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5학년 한 학급의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용 투표용지에 학생들이 대신투표하도록 시킨 일이 발생했다. 일부 학부모들이 이에 항의하자 학교측은 다음날 문제가 발생한 학급의 투표용지 20장을 회수하고 새로운 투표용지를 배포했다. 학교 관계자는 7일 펜앤드마이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올해 처음 혁신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이라 실수가 있었다”며 “문제가 된 투표용지는 모두 회수한 후에 다시 (학부모들께) 발송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표과정에서도 발생했다.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진 투표용지에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었던 것. 개표 과정에서 똑같은 일련번호의 투표용지 2장이 나오자, 학교측은 해당 투표용지를 폐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학교 관계자는 “개표 시 투표용지가 모두 회수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련번호를 매겼던 것 뿐”이라며 “무작위로 일련번호를 발송했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허술한 투표함 관리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투표함 앞에서 학생 몇몇이 펜을 들고 직접 투표하는 것을 목격한 학생들이 있다”며 “투표함이 위치한 중앙현관 앞 CCTV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직접 투표한 것이 아니라 봉투에 풀을 부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2일 학교측이 공개한 학부모 투표율은 전체 840명 중 741명이 투표에 참여해 88%에 달했다. 교원 투표율은 약 90%였다. 개표 결과 교원 65%, 학부모 64.9%가 혁신학교 재지정 신청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 학교운영위회 심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학부모 A씨는 “온수 초등학교는 지난 2018년 혁신학교 신청 과정에 학부모를 배제하고 밀어붙이기식 진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례가 있는 학교”라며 “이번에도 학부모 투표 과정이 심각하게 잘못되었지만 학교측은 ‘괜찮다’ ‘문제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 서울형혁신학교 운영 기본 계획 중 '혁신학교 지원 계획'
2022 서울형혁신학교 운영 기본 계획 중 '혁신학교 지원 계획'

혁신학교는 지난 2009년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교사에게 교육과정 자율권을 주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토론 중심 수업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학교 확산’을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2010년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진보 교육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학부모들은 학력 저하와 포괄적 성교육, 좌편향 사상교육 등의 이유로 혁신학교에 반발해왔다. 올해 6.1 지방선거에서 보수우익 교육감이 당선된 경기, 부산 등 일부 시도교육청은 혁신학교 축소·폐지 정책을 내놨다.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혁신학교가 학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며 추가 지정을 보류했다. 하윤수 부산교육감도 부산형 혁신학교인 다행복학교에 대해 예산과 인력 지원을 일반학교 수준으로 낮추겠다며 사실상 축소 정책을 밝혔다. 강원형 혁신학교인 행복더하기학교에 대해서도 사업 폐지가 결정됐다. 충북교육청도 혁신학교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전북교육청도 혁신학교 신규지정 절차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희연 교육감이 3선에 당선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신규 공모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8일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2023학년도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 계획’에 따르면 올해 운영되고 있는 서울형혁신학교는 초등 183교, 중등 46교, 고등 17교, 특수 4교 등 총 250곳이다.

서울에 혁신학교가 처음 도입된 2011년 이래 서울형혁신학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1년 29교에 불과했지만, 2016년 127교, 2019년 221교, 올해 250교 등이다. 지난 2011년에는 서울 전체의 5%(29곳)에 불과했지만 11년 만에 20%(200여곳)까지 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신규지정 학교에 평균 6,700만원을 지원한다. 재지정 학교에는 평균 5,900만원을 지원한다(2022년 기준). 지원 금액은 혁신학교 지정 연차와 학교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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