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30주년을 맞아 한국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 화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글로벌타임즈]
한중관계 30주년을 맞아 한국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 화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글로벌타임즈]

지난 26일 한국인이 보기엔 매우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취재했다. 중국 푸젠성 출신 조상을 두었지만 풀라우피낭(Pulau Pinang) 섬에 있는 말레이시아 제2의 도시 조지타운(George Town)에서 나고 자란 화교 빌리 탄(Billy Tan) 씨를 만난 것. 그의 한자 이름은 진자기(陳耔祺)다. 빌리 탄 씨는 말레이시아 최고 명문대라 평가되는 국립 말라야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한국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를 만난 이유는 중국인의 후손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의 눈에 현재 중국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아울러 한국에 오래 머무른 재한 외국인으로서 한중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민감한 주제일 수 있지만 양안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비록 그가 국제외교 전문가는 아니지만, 오히려 일반인으로서 틀에 박히지 않은 솔직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했다. 과연 빌리 탄 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질문에 대답했다.

펜앤과 인터뷰를 진행한 빌리탄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의 명소를 찾아다니곤 한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가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펜앤]
펜앤과 인터뷰를 진행한 빌리 탄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의 명소를 찾아다니곤 한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가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펜앤]

-한국엔 언제 왔고, 한국어는 얼마나 배웠는지.

"한국에 처음 왔던 건 2013년 8월이었다. 그 땐 한글만 겨우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후 1년 동안 어학원을 다니며 한국어를 익혔다."

-한국어를 굉장히 잘 하는데 중국어와 한국어 외에 할 줄 아는 언어가 있는지.

"내 조상들은 중국 푸젠성 출신이라 집안에서는 민남어(臺灣語)를 사용한다. 사실 민남어가 가장 편하다. 중국어는 화교 학교에서 배웠는데 처음엔 배우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그리고 어릴 때 홍콩 방송을 자주 봐서 광동어도 조금 할 줄 안다. 거기에 말레이시아에선 말레이어가 필수다. 그러니 민남어, 광동어, 만다린 중국어, 영어, 한국어, 말레이어 총 6개 언어를 할 줄 아는 셈이다(웃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어릴 땐 한국이나 한국문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 국가문화를 더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가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인과 친해지면서 한국문화를 접하게 됐고, 관심이 생겼다. 그 후 부산 부경대학교의 여름학교 교환학생으로 2달 정도 다녀온 후 한국으로 유학갈 결심을 하게 됐다."

-유학? 어디로 유학을 갔단 말인가.

"말라야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과정 입학하기 전 한국 정부초청장학금을 받으면서 전남대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를 공부했다. 지금은 졸업하고 건축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길 시작해보자. 스스로의 정체성을 뭐라고 생각하나. 중국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완전한 말레이시아인 중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표현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을 봐도 대다수는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엔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계 사람들을 '화교(華僑)'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중화권에서는 '화교', '화인(華人)', '화예(華裔)'로 세분화한다. '화교'는 대만이나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현지 사람들과 교류를 잘 하지 않고 중국인 공동체에만 참가함으로써 '중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계 이민자를 지칭한다. 반면 '화인'은 거주 중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계 공동체 참여 비율이 높으며 중국·대만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화예'는 살고 있는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계 공동체에 참여하긴 하지만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으며 현재 살고 있는 국가의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중국계 후손을 말한다. 한국계 이민자로 상정한다면 '화교'는 1세대, '화인'은 2세대, '화예'는 3세대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빌리 탄씨의 조부모가 말레이시아로 건너왔으므로 3세대인 그는 '화예'여야 맞겠지만, 빌리 탄씨는 자신을 '중화 정체성을 지닌 말레이시아인' 즉 '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칼로 무 자르듯 정확히 재단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중국 문화를 사랑하고 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인'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은 스스로를 화교라고 하나, 아니면 화인이라고 하나.

"중국계 후손이 보기에 '화교'란 말엔 '이주해온 지 얼마 안된 외부인'이란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화교 커뮤니티에선 자신들을 '화인'이라 지칭한다. 다만 한국인들이 나를 화교라고 하는 건 상관없다."

-한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긴 하지만, 한국인들은 중국의 위협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중국은 미국 사드가 자신들의 안보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있는지.

"이는 군사적인 측면이 엮여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군사 충돌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도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 '원교근공'이란 말도 있듯 인접한 나라간의 갈등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더욱 피하기 힘들다고 본다. 한국의 입장에서 인접국인 중국과 갈등이 생기듯,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자주 부딪친다. 한중간에 충분히 양보하고 협상한다면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한국 문화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을 실시했고 지금도 완전히 해제하고 있지 않은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중국의 일방적·강압적 외교 대책과 일사불란한 처리 방식이 매우 문명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스스로를 경제 강국이라 생각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방식을 통해 타국을 협박하고 있다. 다른 나라를 협박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건 매우 야만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동북공정, 김치공정, 한복공정 등 한국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행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과 중국처럼 인접한 나라 사이에선 오랜 세월을 걸친 교류를 바탕으로 문화 공유 현상이 일어나고 서로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원나라(元) 시기 고려양이 유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유럽 국가들의 전통 의상은 전체적으로 매우 비슷하지만 그 기원을 따져 어느 한 나라의 전통 의상이 다른 모든 나라의 기원이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결국 서로 닮아가고 서로 영감을 받아서 비슷한 문화나 풍습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주변국의 모든 문화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에게 잘못이 있다. 다만 한국이 중국의 주장을 직접 받아치는 건 격이 떨어진다고 본다. 그렇게 강력하게 반격하기보다는 교양 있고 고상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혹시 중국이 홍콩에 실시한 '일국양제'가 성공 혹은 실패 어느 쪽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이 홍콩에 적용한 '일국양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홍콩은 '아시아의 보석'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2047년까지 일국양제를 실시하겠단 약조를 깨고 직접 개입함으로써 홍콩은 이전보다 더 발전하거나 더 번영하기는커녕 중국의 돈줄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는 건 넌센스다."

-그렇다면 중국이 최근 '대만 백서'에서 대만과의 통일시에도 '일국양제'를 적용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만약 대만에 '일국양제'를 실시한다면 중국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의 중국의 강압적인 처리 방식을 보면 '일국양제'가 대만에 계속 적용되기란 매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일국양제'로 양안이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이를 면밀히 감시함으로써 '일국양제'가 안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계 후손으로서 양안관계에 대한 발언은 민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혹시 가능하다면 양안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중국 혹은 대만에 거주해본 적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다만 홍콩의 사례로 봤을 때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어 대만에 이를 적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만이 현재 대만에서 집권하고 있는 민진당 및 범록연맹의 주장대로 독립한다면 대만의 경제적인 타격이 매우 클 것이다. 대만은 매우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독립의 여파를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과 대만이 서로에게 더 좋고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 한국에서 혹시 상처를 받은 적 있는가.

"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중국계'라 하면 본토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난 그게 너무 싫다. 나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중국 문화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현 중국에 대해서는 비판 의식을 갖고 있다. 중국계 후손이라고 해서 무조건 중국인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영주권을 취득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한국에 얼마나 더 머무를 예정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영주권을 취득한 상황이다. 한국 영주권을 취득한 이유는 한국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싱가포르를 최우선 선택지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 곳으로 진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한국이 좋고 한국에서의 삶보다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날 계획이 없다. 다만 가족들이 여전히 말레이시아에 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지난 3년간 풀라우 피낭을 방문하지 못했다. 혹시 나중에 다른 기회가 생겨 한국을 떠나게 되더라도 한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에 지속적으로 거점을 둘 생각이다. 한국 영주권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계획을 갖고 있다."

빌리탄 씨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한국 영주권까지 취득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펜앤]
빌리 탄 씨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한국 영주권까지 취득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펜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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