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 식단인 '쌀밥, 된장국, 생선구이'. 하지만 일본인들의 식습관 변화로 일본산 쌀 소비량은 줄어들었고, 그 결과 일본의 식량 자급률도 대폭 감소했다. 이로 인해 '식량안보' 문제가 불거졌단 평가다. [사진=블룸버그]
일본의 전통 식단인 '쌀밥, 된장국, 생선구이'. 하지만 일본인들의 식습관 변화로 일본산 쌀 소비량은 줄어들었고, 그 결과 일본의 식량 자급률도 대폭 감소했다. 이로 인해 '식량안보' 문제가 불거졌단 평가다. [사진=블룸버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국방예산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여기에 대만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일본의 '식량안보'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수십년간 일본 소비자들은 쌀과 생선 대신 빵, 고기, 식용유를 선호하기 시작해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1965년 73%에서 2020년 37%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전 일본 해상자위대 부함장이었던 이토 토시유키(伊藤俊幸) 가나자와공업대학 기술연구소 교수는 일본 정부가 논과 기타 농지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게 되면서 일본이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졌다고 분석했다. 이토 교수는 "일본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오직 경제적 효율성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즉 일본 정부가 일본의 식량 자급률에 신경쓰지 않고 값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세계 곡물가 급등, 비료 부족 및 연료 인플레이션 사태에 더해 엔화 약세까지 겹쳐 최근 몇달간 인스턴트 라멘에서부터 아이스크림까지 식품 가격이 올라 일본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인 부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단 분석이다. 

미중 갈등 심화 및 양안관계 악화로 대만 해협 인근에서 해상 봉쇄가 일어나거나 해상 교역에 지장이 생기면 단순한 식품 가격 상승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것.

일본은 미국이나 EU와는 달리 식량 수입이 줄어들 경우 대안이 많지 않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국내의 쌀과 밀 생산량을 늘려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식량안보를 강조하는 스즈키 노부히로(鈴木伸宏) 도쿄대농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안보에 관해서는 식량이 무기에 앞선다"며 "식량이 없으면 싸울 수조차 없다"고 했다.

일본인들의 식습관이 쌀 중심의 식사에서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블룸버그는 일본의 식습관 변화가 부분적으로는 높은 1인당 소득에 의해 추동됐다고 분석했다. 여행과 텔레비전 시청을 통해 더 다양한 식습관이 일본인들에게 노출되기 시작하는 한편, 세계 무역의 확대로 식량 수입 또한 늘어났다. 여성의 사회활동·노동활동이 증가하고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삶의 방식에 대폭 변화가 일어났고 패스트푸드를 통한 끼니 해결도 늘어났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맥도날드 매장이 3번째로 많은 나라다.

일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의 1인당 해산물 섭취량은 20년 전의 40kg에서 25kg으로 대폭 하락했다. 그리고 생선을 섭취하는 경우에도 노르웨이나 칠레에서 수입한 고등어나 연어 등 더 지방이 풍부한 생선 위주로 선호도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식량 자급률이 감소한 또 다른 주요 요인으로는 거의 전적으로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동물 사료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로 인해 와규 등 일본 국내에서 사육·생산되는 대부분의 육류가 일본 식량 자급률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 농림수산대신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자민당 의원은 지난 6월 일군의 자민당 의원들과 함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가 식량 안보에 대해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리야마 의원은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해야만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며 "비료나 종자를 포함해 자국에서 생산해낼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전통 주식인 쌀 소비는 수십년간 감소했고, 일본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체 밀 중 자국산 밀의 비중은 반세기 동안 반으로 줄어 13%로 떨어졌다. 일본에서 소비되는 밀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나라들에서 수입되고 있다.

호주산 밀이 치바현의 한 부두를 통해 수입되는 모습. [사진=블룸버그]
호주산 밀이 치바현의 한 부두를 통해 수입되는 모습. [사진=블룸버그]

이로 인해 양안 전쟁 등 국제 교역에 즉각적이고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의 식량안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단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전 농림수산성 관리였던 야마시타 카즈히토 캐논 글로벌 문제 연구소 연구책임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만약 일본이 연루된다면, 일본의 해상 교역로는 파괴될 것이며 미국·호주·EU에서 수입하는 식량 수입이 중지될 것이므로 일본 전체가 물리적 수입 경로를 잃고 기근을 겪게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일본 정부는 내년 정부 예산을 짜는 과정에서 식량 안보 예산을 확보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는데, 고령화 및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이 국방비 지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기 때문. 이와 관련해 기시다 내각은 최근 내년 경제 계획에 착수하면서 밀, 쌀 등의 품목과 더불어 동물 사료용 곡물의 국내 생산 증대가 필요하단 의견을 내놓은 상태다. 다만 블룸버그는 '말이 행동보다 쉽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본의 상황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국내 밀 생산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이모작'이란 지적이다. 매해 쌀을 경작하기 위해 논에 물을 채우기 전 밀을 키워 수확하는 방식이지만 현재는 이러한 농사법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 농업 종사 인구의 고령화·감소, 다른 일과 겸하면서 두 작물을 재배하기엔 버거운 시간제 농업의 확대로 인해 대부분의 논은 그 해 대부분 기간 동안 사용되지 못하고 놀리고 있는 판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는 일본 농부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니가타 현에서 3대째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본 북부 니가타 현의 켄모치 이츠오 씨는 "5월부터 10월까지 논에서 벼를 재배한다"며 "11월부터 4월까진 눈이 오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켄모치 씨는 "생산가는 오르는데 쌀 가격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겨우 삶을 이어나갈 판"이라며 "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뿐이지 논이 없었으면 진즉에 포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들과 농업계는 여러 해 동안 일본의 쌀 소비량을 늘리려 노력해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자포니카(Japonica)'라 불리는 투명하고 짧은 낱알의 품종 쌀이 일본에서 소비되고 재배된다. 일본 관료들은 일본인들이 식사 한 끼당 쌀 한 숟갈씩만 더 먹어도 식량 자급률을 1% 높일 수 있단 계산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진 전혀 성공적이진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일본인들은 매년 1인당 평균 53kg의 쌀을 먹는데 이는 1960년대 중반 소비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탄수화물 섭취를 점점 피하고 있으며, 고령화되고 있어 식사를 더 하려는 경향도 줄어들고 있다. 많은 젊은 근로자들은 일본 쌀을 제대로 요리한다는 것은 한 시간 정도 뜸을 들여야 함을 의미하는데, 이 과정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인들조차도 일본 전통 가정식인 쌀밥, 된장국, 생선구이 대신 토스트와 요구르트로 아침 끼니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단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쌀 소비의 감소, 가격을 지탱할 수 있는 강력한 농업 블록을 정치적으로 지정해야 한단 요구에 직면한 상황에서 1970년대부터 쌀 생산을 감소시킬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취해왔다. 현재 일본 정부는 농부들이 저녁 식사용 벼 재배에서 하급 동물 사료용이나 쌀가루용 벼 재배로 전환할 수 있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쌀 생산보다 쌀 수요가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을 뿐더러 쌀 가격은 지난 10년간 20% 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야마시타는 급진적 전략이라 할 만한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쌀 생산 감소 정책을 폐기하고, 쌀 가격이 떨어지게 놔두자는 것.

수확량을 개선하고 경작 지역을 늘리면 쌀 생산은 현재 매년 7백만 톤에서 1천6백만 톤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야마시타의 주장이다. 이로 인해 일본 쌀 가격이 낮아지면 수출경쟁력이 생기게 된다. 만일의 사태가 터지면 정부는 쌀 수출을 중지하고 한동안 국내 쌀로 연명하면 된단 것이다.

야마시타는 이를 위해선 농부 1인당 평균 3.3헥타르의 논을 보유한 형태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인당 경작 면적이 넓어질 수 있도록 거대 농장화되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되면 농업 종사 인구가 줄어도 기계화 농법으로 충당할 수 있으며 쌀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단 것이다. 이는 과거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인클로저 운동'과도 일견 비슷해보인다. 야마시타는 "나이가 많아서 놀리는 땅이 많다"며 "지금은 별 걱정이 없지만 다음 세대에서 위기가 터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한편 모리야마 의원은 일본 쌀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비료 생산 등 농업 보조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농업 관련 기본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값싼 식량 수입이 항상 가능하단 추정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진 효율성에 대해서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값싼 식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단 가정도 해야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한국의 2021년 식량 자급률은 사료를 포함해 21.7%에 불과하고 식량수입은 전 세계 5위에 해당한다. 일본보다 더 낮은 셈이며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내 돌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식량안보가 취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단 소리다. 결국 한국도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미리 적극 대비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후지산 인근의 논에서 농부가 벼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블룸버그]
후지산 인근의 논에서 농부가 벼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블룸버그]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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