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년 특집 ②] '화이(華夷)'적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는 중국
[한중수교 30년 특집 ②] '화이(華夷)'적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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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가 30주년을 맞았다. 우호적 이웃국가 관계를 맺는 데 주요 장애물로 작용하는 요소가 중국의 '화이적 세계관'이란 지적이다. [사진=글로벌타임즈]
한중관계가 30주년을 맞았다. 우호적 이웃국가 관계를 맺는 데 주요 장애물로 작용하는 요소가 중국의 '화이적 세계관'이란 지적이다. [사진=글로벌타임즈]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겠단 이야기가 나왔던 2016년 말 중국이 한국에 외교적 결례로 충분히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2016년 12월 26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했던 천하이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국내 정재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냐"며 "너희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란 발언을 했던 것. 

천하이 부국장의 발언엔 중국이 한국을 동등한 외교 상대로 보기는커녕 속국으로 간주하는 듯한 관점이 관측된다. 근대 외교가 시작된 후 모든 국가는 영토의 대소, 인구의 다소(多少)에 관계없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을 '작고 크게' 보는 인식, 외교를 상대국에게 고통을 주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마치 '천자국'이었던 전근대 중국 전제 왕조가 '조공체제'하에 주변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단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상국'이라도 되는 것인양 한국에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2016년 말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의 발언은 한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로 간주될 정도로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란 지적이 잇따랐다. [사진=KBS]
2016년 말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의 발언은 한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로 간주될 정도로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란 지적이 잇따랐다. [사진=KBS]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 관계', '상호존중'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엔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동등한 지위를 누릴만한 상대로 보지 않고 있단 점이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단 지적이다. 즉 중국 5천년 역사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중화사상', 이를 바탕으로 한 '화이적 세계관'이 현대 중국에서도 드러난단 평가다.

중국인의 저변에 깔린 '중화사상', 그를 기반으로 한 '화이적 세계관'은 '중국'이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중화문명이 세계의 중심이고 중국문화가 세계의 그 어떤 다른 문화보다도 우수하며 타 민족을 '오랑캐'로 낮춰봄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조공체제'는 19세기 중반 영국과의 아편전쟁, 1894-1895년의 청일전쟁을 통해 중국의 군사적 허약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전까지 동아시아에 통용되던 세계체제였다. 

그에 가장 적극적으로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소중화'이라 여기기까지 했던 한국이 이제는 근대 외교체제 하에서 옛 '상국' 중국과 동등한 지위·권리를 누릴 뿐더러 중국이 유일한 경쟁자로 생각하는 미국과 안보동맹을 체결해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하는 형국이니, 중국으로서는 한국을 반드시 옛 종속관계로 굴복시키려는 의도를 품었을 수도 있음이 천하이 부국장의 발언에서 읽힐 수 있는 것.

천하이 부국장의 발언은 일정부분 실제 조치로도 나타났단 평가다. 사드 보복이 '한한령(限韓令)'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는 2017년에 절정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드라마·영화 수입을 차단하고, 한국 관광을 기존의 20% 이하로 제한하며, 한국산 화장품과 공산품의 수입을 불허하고, 한국산 식품 검역 강화 및 수입을 제한하며, 한국행 노선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등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상당부분 타격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같은해 발간된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중국의 일련의 조치들로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최대 8.5조원의 경제적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한령은 부분적으로 해제됐을 뿐 여전히 한국을 옥죄고 있다.

중국이 '화이적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대 중국이 '초민족주의적(Ultranational)' 국가이기 때문이란 평가다. 한족을 포함해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중화민족'이란 개념을 통해 국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국 당국이 직접 조성하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단 평가다. 

존 미어섀이머 교수는 그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미중 패권경쟁의 시대』에서 "현대 중국은 초민족주의가 무르익은 나라"며 "민족주의는 중국인민들의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 강력한 힘이었다"고 평했다. 이어 "중국의 지도자들은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더욱 더 민족주의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고도 적었다. 또한 "민족주의를 국가에 대한 민중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중국 지도세력의 단순한 선전광고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실수"라며 "실제로 많은 중국 국민들은 자유의지에 의해 열정적으로 민족주의적 이념에 열광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처럼 강렬한 중국의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위대한 중화문명이 서구에 군사적으로 패배했단 굴욕감, 분노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상징적 사건이 영국과의 아편전쟁. 아편전쟁은 1840-1842년의 1차 아편전쟁, 1856-1860년의 2차 아편전쟁으로 나뉜다. 1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에도 당시의 청나라는 외세를 오랑캐라는 뜻의 '이(夷)'로, 서구열강 관련 사무를 '이무(夷務)'라 불렀다. 그러다가 2차 아편전쟁에서 다시 한번 패한 후 베이징 조약에 포함된 조건대로 '이무'를 '양무(洋務)'라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영국에 처음 패했을 때조차도 외세를 오랑캐로 보고 있다는 인식을 공개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단 것이다. 서구 열강은 이를 문제삼아 2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들을 오랑캐라 부르지 말란 조건을 내건 것.

제1차 아편전쟁(1840-42)에서 영국과 청나라간의 해전을 묘사한 그림. 동아시아 '조공체제'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중국은 영국의 '철갑선'으로 이뤄진 한줌 함대에 처절하게 패배했고, 이로 인해 중화문명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절치부심, 와신상담은 이를 곱씹으면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아편전쟁(1840-42)에서 영국과 청나라간의 해전을 묘사한 그림. 동아시아 '조공체제'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중국은 영국의 '철갑선'으로 이뤄진 한줌 함대에 철저하게 패배했고, 이로 인해 중화문명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절치부심, 와신상담은 이를 곱씹으면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다른 문명을 오랑캐로 보던 중국은 동쪽 오랑캐란 뜻의 '동이'로 간주했던 한국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으며 '상국'으로서 '속국' 한국에 영향력을 계속 미치고자 했다. 단적인 예로 조선 개국의 시작이었던 '강화도 조약' 체결 과정을 지켜본 청나라의 실권자 이홍장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에 다른 서구열강에게도 개국할 것을 권했다. 서구열강과 조약 체결을 거부하던 조선이었지만 이홍장의 권유에 따라 전면 개국을 결정하게 됐으니 청일전쟁 전까지 조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유지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핵심 당국자 중 한 명인 이홍장. 그는 1870년부터 95년까지 북양통상대신으로서 조선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홍장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실권을 잃었다. 그는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사진= '다시보는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발췌]
청나라 말기 핵심 당국자 중 한 명인 이홍장. 그는 1870년부터 95년까지 북양통상대신으로서 조선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홍장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실권을 잃었다. 그는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사진= '다시보는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발췌]

즉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중국은 '조공체제'의 중요 요소였으며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한국이 다시 자신의 영향력 하에 들어와야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명실상부한 21세기의 패권국으로 등극할 수 있단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도날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4월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내게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한 것에서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제 G2로 거론될만큼 국가의 전반적인 역량이 커졌다고 판단하고 '공격적 민족주의'를 주변국에 표출하고 있다. 영토·인구 등 국가를 이루는 기본 요건에서 중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한국 등 중국의 이웃 국가들이 이에 대한 반응으로 '방어적 민족주의'를 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형국이다. 결국 중국이 21세기에 맞지 않는 '중화사상'과 '화이적 세계관'을 계속 유지하는 한 한국도 중국과 믿을 수 있는 동반자 관계, 진정한 우호 관계를 맺기 어려울 수 있단 소리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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