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정비사업 지연 논란이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값의 큰 폭 하락’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25일)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은 지난주 -0.12%에서 금주 -0.18%로 내림폭이 확대됐다.

정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지연 논란의 여파로 1기 신도시 아파트값 하락폭이 커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정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지연 논란의 여파로 1기 신도시 아파트값 하락폭이 커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추가 금리 인상 등에 대한 우려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아파트값이 지난주 대비 하락하는 가운데, 특히 수도권의 아파트값 하락폭이 크다는 점에 주목된다. 이번주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주 대비 0.11% 하락했던 것과 비교되는 수치이다. 0.11%는 지난주(-0.09%)보다 하락폭이 커진 것이며, 2019년 3월 4일(-0.11%) 조사 이후 3년5개월여 만에 최대 낙폭이다.

수도권 아파트값 하락폭 9년 7개월만에 최대치

수도권 아파트값 하락폭은 2013년 1월 14일 조사 당시의 -0.19% 이후 9년 7개월 만에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지연 논란의 여파로 1기 신도시 아파트값 하락폭이 커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분당신도시가 있는 성남시 분당구는 지난주 -0.07%에서 금주 -0.13%로 낙폭이 확대됐다.

또 일산신도시가 있는 고양시는 -0.06%에서 -0.12%로 하락폭이 2배로 커졌고, 산본신도시가 있는 군포시는 지난주 -0.13%에서 금주 -0.16%로 확대됐다.

정부가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당초 주민들의 희망보다 늦은 2024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실망 매물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지난 8·16 대책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종합계획) 수립 시점을 2024년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예상보다 일정이 지연되면서 1기 신도시 주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일각에선 '공약 후퇴' 논란까지 나오며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해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

지역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기 신도시 재정비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확대·개편하고, TF에 5개 신도시 기초단체장을 참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신도시 TF를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지역마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마스터플래너(MP)도 지정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겠단 방침도 내놨다. 특히 9월 중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겠다고 밝혀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시장을 TF에 참여시키고, 차관급 회의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시장을 TF에 참여시키고, 차관급 회의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원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번 대책(8·16대책)이 주거공급 관련 종합과제여서 신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적었다”면서 "1기 신도시 주민들이 기대하고 궁금해하던 부분들에 약간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 오해도 있었고 설명 부족도 있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단 하루도 우리(국토부)로 인해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후에 오히려 1기 신도시 아파트값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원 장관의 진화가 역부족인 셈이다.

원 장관 압박했던 윤 대통령도 머쓱해진 상황

원 장관의 해명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토교통부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둘러싼 공약 파기 논란과 관련해,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주택정책을 발표했으나 국민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대변인의 발표였다.

윤 대통령은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도 예전 같으면 5년 정도 걸리는 사안을 최대한 단축했다. 그런데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발표할 때는 우리(정부) 시각이 아닌 국민 시각에서 판단해달라, 정책을 언제 발표하느냐보다 국민에게 잘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을 압박했던 윤 대통령으로서는 머쓱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수위 시절부터 국민들에게 사업 일정 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시장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실정이다. 30만 가구에 육박하는 1기 신도시 재정비는 마스터플랜 수립까지 최소 1년 반에서 2년가량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데다 이주나 기반시설 정비, 주변 시장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할 때 급하게 서둘러서도 안 되는 중대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주도론은 착각?...“지자체 권한 확대해라”

대통령과 장관이 1기 신도시에 초집중하는 상황이지만,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정부는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당장 다음 달 발주해 최대한 서두르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일정이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각 도시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대책을 고심한 흔적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과 관련해 "다음달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5개 신도시별로 전담 마스터플래너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과 관련해 "다음달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5개 신도시별로 전담 마스터플래너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일산재건축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각 도시에 맞는 처방전이 필요한데, 전부 똑같은 플랜을 내놓으면 무슨 소용이냐"며 "일산은 근처에 이주 수요를 받을 도시가 많아 크게 대책 마련이 필요하지 않은 곳임에도, 한데 묶여서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분당 시범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도 "특별법을 정교하게 만들어 국회를 통과하게끔 하는 것은 국토부 역할이지만, 마스터플랜까지 주도하겠단 것은 월권이 아니었나 싶다"며 "지자체 권한을 더 확대해 실무가 원활히 추진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기 신도시 재정비가 별다른 진척 없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정쟁의 도구로만 이용’되는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산본 소재 재건축 추진 단지에 거주하는 60대 주민 김모씨는 "준공 30년을 앞둔 단지가 대부분인데, 아직도 구체적인 타임테이블이 없다"며 "정쟁 도구로 이용하다가, 2024년에 다시 총선용으로 우려먹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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