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보장 원하는 김정은에 핵은 '창과 방패'…CVID 못 받아들일 것"
"협상 종착점 北 비핵국가로 포장된 완전한 핵보유국화' 아닐까 싶다" 비관
"北 '조선반도 비핵화'는 南에 미군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 받으라는 것"
"김정은, 쇼맨십과 사람들 시야에서 '착각' 일으키는데 상당히 능해" 경고
탈북 배경으로 "자손들까지 세습체제 살게 할 수 없어, '자유'가 가장 큰 유산" 강조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탈북 엘리트'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북한이 스스로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프로그램 해체(CVID)'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VID 이행 자체가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신격화된 '수령 절대권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미·북 협상이 '핵 감축' 수준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태영호 전 공사는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 여부 전망'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앞으로 (미북 정상회담이) 한달쯤 남았는데 제가 미리 섣불리 예단하는 건 아니겠지만, 완전한 CVID가 아니라 최근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S(충분한)-VID, 북한 핵위협의 대폭 감소나 충분한 핵 감소에 가까운 결론이 날 지도 모른다"면서 "종착적 결론은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국가로 포장된 완전한 핵보유국화'가 아닐까 싶다"고 답변했다.

태 전 공사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김정은이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말하는 북한의 체제안정은 북한의 세습 통치구조 보장, 절대적인 권력구조 보장"이라며 "CVID에 기초한 비핵화는 쉽게 말하면 강제 사찰과 무자비한 (핵시설) 접근을 해야만 핵 폐기 과정으로 갈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대북특사단 방북 당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했으나 유물론을 따르지 않고 세습 독재와 수령 절대권력주의라는 관념론을 따르는 등 북한 체제의 모순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했으나 유물론을 따르지 않고 세습 독재와 수령 절대권력주의라는 관념론을 따르는 등 북한 체제의 모순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태 전 공사는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같은 인간 수령을 하느님처럼 절대화한 가운데, 당·군·정과 행정기구시스템이 동작하는 속에서 외부세계가 북한에 들어가 보고싶은 대로 다 뒤져서 핵 폐기 과정을 샅샅이 드러낸다는 건 북한 권력의 가장 핵심요소 근간인 '수령 절대권력 구조'를 핵 폐기 과정을 통해 허물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결국 김정은이 체제안정 보장을 전제하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CVID는 아니다"며 "분명히 단계적·동시적(핵 폐기)이라는 건 북한 체제붕괴로 이어지는 걸 절대로 반대하고 자기 체제의 권력구조를 더 공고히 하면서 하는 CVID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정한 핵 폐기 즉 완전한 CVID로 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을 향해 북한인권문제도 제기될텐데 체제보장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앞으로 북핵(협상)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강력히 주장하는데, 우리가 핵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바란다면 '레짐체인지'(정권 교체)와 '인권보장'의 길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는 "진정한 핵 폐기를 하려면 지속적인 경제적 압박과 군사적 압박 제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최선의 향배"라면서도 "현실정치에서 우리가 과연…"이라며 "미국도 한국도, 더군다나 이런 시기 평화(무드)를 깨면서까지 북핵을 (완전히) 해결하겠느냐, 이거는 국민도 지지하지 않고 정부나 미국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현실적인 한계를 거론했다.

기자간담회에서는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무엇인가', '비핵화 용어는 미국·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가도 통용되는 말인가' 등의 질문도 나왔다.

태 전 공사는 "2006년 이미 북한이 첫 핵실험을 했을 대 북·중 사이에 한반도 비핵화란 무슨 개념이냐는 대논쟁이 벌어졌다"며, 당시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강석주 북한 외무성 1부장을 만나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고 항의했다가 "김일성 주석의 비핵화 개념도 모르고 있었나", "조선반도 비핵화란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는 반론을 당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번 판문점선언에 보면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다"면서 "북으로서 할 것은 당연히 핵무기 폐기겠지만, 한국으로서 할 일은 당연히 미국으로부터의 핵 자산의 임시적인 전개 중지, 미군으로부터의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 남북이 비핵화를 같이 가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폐기가 같은 개념이냐, 전혀 다른 개념이다"고 강조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보유를 '창과 방패'에 비유하는 모습.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보유를 '창과 방패'에 비유하는 모습.

북한이 최종적으로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가 정황도 제시됐다.

태 전 공사는 "제가 아니라 김정은이 핵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팩트 자료만 제기하겠다"며  4·27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4월20일 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의 어록을 들었다.

김정은은 당시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를 자신하며 핵 보유를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자 "우리 후손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가지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를 토대로 태 전 공사는 "보검은 창이고 담보는 방패"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창과 방패를 내려놓을 일이 없다, 반드시 같이가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을) 내려놓을 것 같으면 왜 4·27 남북회담을 7일 앞두고 이런 말을 했겠나"라며 "이는 북한 TV에서 매일 내보낸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베트남·중국식 개혁 개방이 아닌 '개성식 경제모델'을 추구할 것이라는 자신의 전망에 관해 "김정은의 갈길은 (공단이 들어섰던) 개성식 단절모델"이라며 '선(先) 관광지화-후(後) 경제특구'를 북한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북한이 베트남·중국처럼 일당독재 체제만 유지하면서 ▲외부정보 유입 ▲사상 해방 ▲자유로운 이동 등을 허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체제와 권력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 3가지 없이 개성이 성공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추구한다고 판단한 '개성식 경제모델'의 요건 3가지에 관해 설명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추구한다고 판단한 '개성식 경제모델'의 요건들에 관해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단기간에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완성한 점 ▲남북 정상회담 등에서의 평화무드 연출 ▲오는 23일~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현장 공개 등 조치에 나선 것을 두고는 "자기 아버지와 달리 판단과 집중력이 대단히 좋다", "상당히 쇼맨십도 잘한다", "상당히 현실적인 정책을 편다"는 평가와 함께 "사람들의 시야에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에 상당히 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핵실험장 폐쇄현장 공개 언론 초청 대상에서 일본을 배제한 것에 대해서는 "최근 북핵문제 관련해서 핵 당사자인 미국을 빼면 CVID를 강하게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 한국은 침묵하고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근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CVID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계속 얘기한다"며 "북한은 어떻게든 CVID를 미국과 밀실회담에서 넘기려는데, 계속 아베 총리가 CVID를 해야 한다고 북한을 엄청 자극했는데 이 때문이 아닐까"라고 밝혔다. 

반대로 영국이 언론 초청을 받은 경우에 관해서는 영국이 ▲핵보유국이라는 점 ▲국제정치 질서상 미국이 영국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점 등을 배경으로 지목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2016년까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내다가 그해 8월 한국으로 망명했다. 이날 태 전 공사는 자신의 탈북 사유에 대해 "북한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복지시스템이 번창하던 피크 시절도 봤고, 고난의 행군 시절도 봤다"면서 "북 체제가 할아버지 대로부터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손자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앞으로 내 자식들과 또 그 자손들까지 저런 노예제와 같은 세습 체제에서 살도록 내가 허용할 것이냐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내가 이 시점(탈북 직전) 한국으로 탈북해서 내 자식과 자손들에게 자유를 줄 환경에 와 있는데, 그들을 데리고 내가 북으로 들어간다면 괴로움에 자식과 손자를 바라볼 수 있겠나. 마지막에 내 자식들에게 '자유'를 줘야겠다, 자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아버지로서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 생각하고 먼 훗날 떳떳이 내가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여운을 남겼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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