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박정희 기념재단 기획실장

이미 이 나라는 ‘이승만과 박정희’ 덕분에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향유해 온 시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찾아 북한 주민과 인민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死線)을 넘어온다. 아무리 이념이 좋은 세상이라지만, 그대들이 보기에 전체주의를 위해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포기할 시민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1948년 8월 15일 오전 11시,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이날 신생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정체(民主政體)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40여 년 동안을 왜적(倭敵)의 손에서 모든 학대를 받아서 다만 말과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자유로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민족이 절대로 싸워 온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 활동과 자유 판단권을 위해서 쉬지 않고 싸워 온 것입니다.”(「경향신문」, 1948년 8월 18일).

이날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하에서 우리가 왜적에 맞서 쉬지 않고 싸운 독립운동의 근본적 이유는 개인의 자유 활동과 자유 판단권, 즉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였다고 선언했다. 그 점을 이승만 대통령은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근본적 자유’란 무엇인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인류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기존의 정치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국가를 독립시킬 신념이 하나님의 법으로 성립하였다는 말로 시작하는데, 그 신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민은 정부를 조직했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다.”

이영훈 교수는 이승만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종교적으로 신봉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그의 정치이념은 1904년 한성감옥에서 저술한 『독립정신』이란 책에 확실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승만이 1948년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언급했을 때, 그것은 조물주가 모든 사람에게 부여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정부 권력의 정당성이 유래하는, 때로 포악한 정부를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게 하는 인민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승만은 1948년의 대한민국의 독립 선포를 1776년의 미국 독립과 동질의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했다. 그것은 앞의 인용문에 이은 다음과 같은 그의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를 압박하는 왜적은 그들의 전제정치를 고집하였으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마음은 더욱 굳어져서 (중략) 모든 일에 서양민주국(西洋民主國)의 방식을 모범으로 하여 우리의 공화적 사상과 습관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으며, 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30년 동안에 뿌리를 깊이 박아 지금의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30년이라 함은 1919년의 3·1운동부터라는 뜻이다. 거기서 출발한 우리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서양민주국을 모범으로 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독립운동은 일제의 포악한 전제정치에 맞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와 애국선열의 희생과 미국 등 우방의 원조로 ‘개인의 근본적 자유’에 입각한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탄생한 제1의 기본 조건은 ‘개인의 근본적 자유’다.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추구하는 정치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이 결합한 정치 원리로서,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정치이념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이데올로기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체제인가?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이며, 민주주의는 일반 시민이 주권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이념이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시민이 폭넓은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복수 정당제를 채택해야 하며, 시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법과 정책을 만들기 위해 참정권과 상향식 의사 결정 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의 집중이나 과도한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해 권력 분립 제도를 채택해야 하며, 정당한 법 절차로써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적법 절차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권력의 행사를 법으로 제한할 때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으면서 ‘개인의 근본적 자유와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

이처럼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판결한 바 있다. 다음과 같은 선고가 그 전형에 속할 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自由民主的 基本秩序)라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를 말한다.”(헌법재판소 1990. 4. 2. 선고 89헌가113 결정)

그런데 올 1월 2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 자문위원회가 만든 헌법 개정안 초안 내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대한민국의 국가 기본 원리인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 사회’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 정책’은 ‘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로 슬그머니 바꿔 놓았다.

‘자유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과 확연히 구별되는 정치 체제다. 좌익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북한도 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질서에서 ‘자유’가 빠졌으니 이제 인민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도 어느 누가 말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헌법개정안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체제의 대한민국으로 나가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 된다. 이들이 구상하는 다른 체제의 대한민국이란 과연 어떤 체제를 원하는 것일까?

필자는 지난해 2월 발간한 저서 『황교안 2017』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체제의 대한민국을 추구하는 세력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들은 태극기 대신 촛불을 들고,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국가정보원 해체 혹은 약화, 선의의 경쟁을 통한 자유시장경제보다는 공짜급식, 공짜 의료보험, 반값 등록금, 사회적 시장경제, 경제 민주화, 그리고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통일을 거부하고 남북 연방제 통일을 추구한다.

이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사회주의 내지는 사회민주주의, 혹은 공산 전체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뜻한다. (중략) 탄핵 정국의 참모습은 ‘비선 실세’로 얼룩진 장막을 걷어내면 남북 연방제 추진 세력과, 이를 막아내고 대한민국을 지켜내려는 대한민국 수호 세력 간의 피할 수 없는 일대 결전으로 정리된다.

저자가 현 국면을 두 세력의 결전으로 보는 결정적 이유는 연방제 추진 세력들이 촛불·횃불·단두대를 들고 광화문에 집결하여 박근혜 구속, 이석기 석방, 통진당 복원, 그리고 “북쪽은 우리의 미래다. 우리의 희망이요 삶이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확실한 증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박근혜 하야, 구속을 외치는 장면만을 연속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석기 석방 관련 주장이나 대형 조형물은 철저하게 은폐하여 마치 촛불 집회가 순수한 박근혜 하야 집회인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는 데 앞장섰다. (중략)

정리하자면 탄핵 정국의 핵심 본질은 대한민국이 월남식 공산 통일이냐, 아니면 서독식 흡수 통일이냐를 결판내기 위해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전체주의 세력 간에 벌어진 아마겟돈 전쟁이다.’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전체주의 추종세력 간의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 세력은 패했다. 전체주의 추종세력은 선거에서 이겨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에서 승리하여 집권했다고 말한다. 박근혜 탄핵이야 그럴 듯한 명분이니 집어치고, 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 들고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으니 그 마지막 피날레가 개헌으로 귀결되는 것은 모든 혁명세력들의 공통점이다. 그 개헌안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빼 버리는 것쯤이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닌가.

드디어 흑심이 잔뜩 서린 개헌안도 발표되었고,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처럼 극소수 꼴통세력들을 제외하고는 고요하다. 마지막 고비인 개헌도 전 언론 동원해 일사천리로 밀어대면 손쉽게 정리될 것이다.

분위기도 짱이다. 그 동안 우려했던 ‘사람 중심’이란 용어마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가 날 때마다 “사람 중심 경제”를 외친다. 우리 국민 64.9%는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에 공감한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되었다(MBN, 2017.12.28.)

사람 중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그런데 그 용어가 주체사상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다만 그렇게 전 국민이 우민화(愚民化) 되어 TV에 속고, 언론에 속고, 선전선동에 휘둘리는 사이 대한민국은 집단광기적 전체주의 세상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모든 삶은 국가가 책임져 주기를 바라면서….

한 가지 사족(蛇足)을 붙인다. 이미 이 나라는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자’ 덕분에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70여 년 향유해 온 시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찾아 북한 주민과 인민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死線)을 넘어온다. 아무리 이념이 좋은 세상이라지만, 그대들이 보기에 전체주의를 위해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포기할 시민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하긴 지금 심정이야 권력의 힘으로 찍어 누르면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될 것 같다고 착각들을 하시는데, 인생사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대들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김용삼 (펜앤 객원 칼럼니스트· 박정희 기념재단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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