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어느 카페에서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관련해 발생한 불편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이를 곡해해 논란이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한국인의 '문해력 하락'은 다른 일화에서도 감지된다. [사진=트위터]
지난 20일 서울 어느 카페에서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관련해 발생한 불편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이를 곡해해 논란이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한국인의 '문해력 하락'은 다른 일화에서도 감지된다. [사진=트위터]

2021년 11월 초 어느 방송사 기자가 뉴스에 출연해 '무운(武運)'을 '무운(無運)'으로 잘못 해석해 빈축을 산 바 있다.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이 기자가 "운이 없길 빈다"는 뜻으로 생각해버린 결과 빚어진 촌극이었다. 

그런데 기자 한 명의 실수이자 해프닝으로 끝난 것 같은 일들이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일화를 종합해보면, 한국인들의 문해력이 특히 한자어를 중심으로 떨어지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20일 SNS 중 하나인 트위터에서 일어났다. 웹툰 작가의 사인회 예약을 두고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한 사과문을 서울의 한 카페가 올리면서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를 본 일부 네티즌이 되레 화를 냈던 것이다. 

카페측이 사용한 '심심한 사과'란 표현은 일종의 격식 있는 관용구로 사용되곤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심심(甚深)'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함'이란 뜻을 갖고 있다. 즉 '아주 깊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드린다'라는, 불특정 다수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공손한 사과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본 네티즌들 중에는 카페 측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심심'을 '심심하다(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로 받아들여 '지루하고 재미 없는 사과'라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느 네티즌은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고 재밌다, 너희 대응이 아주 재밌다"란 반응을 보였으며, 다른 네티즌은 "심심한 사과(웃음), 진심이라면에 이어 심심한 사과라니, 생각이 있는 사람이 (사과문을) 올리는 게 어떠냐"란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카페측은)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냐"는 반응을, 그 외에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이라니(웃음),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주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카페의 '심심한 사과'를 곡해한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
카페의 '심심한 사과'를 곡해한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

즉 일부 네티즌들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이란 관용구를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기에 이런 반응을 내놓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 사이에 문해력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같이 단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화들은 지속적으로 회자돼왔다고 할 수 있다. '수납' 단어를 모른다든지, '성함'이라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이름이라 말해야 알아듣기도 하며, '구직 활동'이란 단어를 모르기도 한다. 또한 날씨가 '쾌청'하다라고 하면 '상쾌하다' 이런 뜻 아니냐며 어려운 단어 쓴단 핀잔을 듣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한숟가락 떠먹는다는 뜻의 '한술'을 '음주를 한다'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화들은 인터넷에서 '무식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일화들은 '한술'의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한자어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앞선 '심심한 사과'를 두고 카페가 과도하게 한자어를 사용한다며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은 "애초에 깊을 심이라서 같은 뜻의 우리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한자를 쓰냐"며 "'매우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하면 되지 않냐"고 주장했다. "그리고 웹툰 관련이면 미성년자들도 많을텐데, 사회생활 안해봤으면 이 표현 모를 수도 있지 않냐"고 카페 측을 비판했다.

카페 측의 '심심한 사과'를 쓸데없이 과도하게 한자어를 많이 사용했다고 지적하는 어느 네티즌의 글. 문제는 이 글에도 '쓸데없이 과도하게' 한자어가 많이 사용됐단 점이다. [사진=트위터]
카페 측의 '심심한 사과'를 쓸데없이 과도하게 한자어를 많이 사용했다고 지적하는 어느 네티즌의 글. 문제는 이 글에도 '쓸데없이 과도하게' 한자어가 많이 사용됐단 점이다. [사진=트위터]

재밌는 사실은 이 비판 글도 한자어를 다수 사용했단 점이다. 다른 네티즌이 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과도', '한자어', '사용', '미성년자', '사회생활', '표현' 전부 한자다"라는 것이다. 결국 한자어 사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표현 사용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정보 습득 방법이 책으로 대표되는 잉크 매체에서 유튜브 등 영상 매체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지난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및 대응 전략 발표'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분석 및 학업성취 수준 향상 지원방안'에도 명시돼 있다. 

여기엔 '디지털 세대인 중·고등학생의 영상 매체 이용 습관이 강화되어, 제한된 시간 내에서 긴 글을 이해해야 하는 국어과 평가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 이는 2021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늘어난 이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 상황 및 제한된 학습 활동의 여파와 함께 주 원인으로 거론됐다. 즉 휘발성이 강하고 쉽고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영상 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문해력 및 단어 습득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단 이야기다.

다르게 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새 것은 받아들이지만 옛 것은 각광받지 못하는 디지털 시대의 역설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운탕 한술'을 '매운탕 한 숟갈'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시는 술'로 해석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한자어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물을 세는 기본 단위에 대한 지식조차 부족한 셈이다.
'매운탕 한술'을 '매운탕 한 숟갈'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시는 술'로 해석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한자어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물을 세는 기본 단위에 대한 지식조차 부족한 셈이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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