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치기' 논란이 지난 13일 M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이영자 씨의 발언을 통해 터져나왔다. 이영자 씨는 비빔국수를 소리내지 않고 먹던 배우 이정재 씨에게 "왜 면치기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진=MBC 캡쳐]
'면치기' 논란이 지난 13일 M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이영자 씨의 발언을 통해 터져나왔다. 이영자 씨는 비빔국수를 소리내지 않고 먹던 배우 이정재 씨에게 "왜 면치기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진=MBC 캡쳐]

최근 '면치기' 관련 논란이 뜨겁다. 최근 한 방송에서 면치기를 하지 않고 조용히 면을 먹는 출연자에게 '왜 면치기를 하지 않느냐'는 다소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터진 것. 논란은 '면치기가 한국의 식사예절에 어긋나는지'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논쟁을 추가로 낳았다. '면치기를 조장하는 먹방을 규제해야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어났고 '한국인은 언제부터 면치기를 했는지' 기원을 추적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은 면치기 문제의 핵심인 '한국의 개인주의' 문제에서 다소 비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면치기 논란이 불거지게 된 계기는 지난 13일에 방영된 MBC의 <전지적 참견 시점>이었다. 평소 잘 먹는 것으로 유명한 방송인 이영자와 일일 방송 손님으로 나온 배우 이정재 씨, 정우성 씨와 함께 칼비빔국수를 먹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영자 씨는 면치기를 하지 않고 조용히 먹는 이정재 씨에게 "국수를 소리를 안 내냐"며 면치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면치기를 할 때 나는 소리인 '호로록', '후루룩'이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정도로 크게 내면서 비빔국수를 먹었던 것이다. 화면엔 '호로로로로록'이란 의성어 10개가 이영자 씨의 몸 전체를 덮는 특수효과로 처리됐다. 그만큼 이영자 씨의 면치기가 자극적이고, 충격을 줬단 얘기다. 이정재 씨는 이영자 씨의 면치기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워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정재 씨의 놀라는 모습이 캡쳐돼 여러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영자 씨의 면치기에 이정재 씨는 매우 놀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스튜디오에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은 "이렇게 먹어야지"라며 이영자 씨의 면치기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MBC 캡쳐]
이영자 씨의 면치기에 이정재 씨는 매우 놀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스튜디오에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은 "이렇게 먹어야지"라며 이영자 씨의 면치기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MBC 캡쳐]

이는 어찌 보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과장된 장면일 수 있다. 또한 면치기를 하면서 국수를 먹을 수도, 면치기를 하지 않고 조용히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의 핵심은 "국수 소리를 안 내냐, 소리가 나야한다"는 이영자 씨의 발언, 그리고 이영자 씨의 면치기를 보고 "이렇게 먹어야지"라며 통일된 방식을 강요하는 듯한 방송에 출연했던 다른 연예인들의 발언에서 감지되는 '개인주의'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남이사' 어떻게 먹든 취향을 존중하기는커녕 이렇게 먹어야만 한다며 통일된 방식을 요구하는 일부 한국인들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문제란 것이다.

이영자 씨는 면치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본인이 면요리를 먹을 때 면치기를 하는지의 여부와 다른 사람이 면치기를 하는지의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떻게 먹든 맛있게 먹고 소화가 잘 되면 그만이다. [사진=MBC캡쳐]
이영자 씨는 면치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본인이 면요리를 먹을 때 면치기를 하는지의 여부와 다른 사람이 면치기를 하는지의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떻게 먹든 맛있게 먹고 소화가 잘 되면 그만이다. [사진=MBC캡쳐]

이는 결국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무(無)개성, 획일성에 사로잡힌 한국 문화의 특수성 때문이란 평가다. 면요리를 면치기를 하면서 먹어야 '마땅하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은 한국의 다른 분야에서도 공통되게 포착되는 모습이다. 홍대나 강남역 등 서울의 번화가로 나가면 남녀를 불문하고 당시 유행하고 있는 머리스타일이나 패션대로 똑같은 차림새를 갖춘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때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던 '노스페이스 패딩'도 마찬가지다.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로 잘 차려입었는데 알고보니 다른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붕어빵'이 되어버려 결국 남과 똑같아져버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어버리는 것이다.

특정 패션이나 머리스타일이 유행하면 한국인들은 이를 따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비싼 돈을 들였는데 밖에 나가보면 똑같은 차림새를 한 '클론'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정 패션이나 머리스타일이 유행하면 한국인들은 이를 따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비싼 돈을 들였는데 밖에 나가보면 똑같은 차림새를 한 '클론'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 이러한 본질적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보단 면치기가 한국 식사예절에 어긋나는지의 여부, 면치기 문화 조장의 원흉으로 거론되는 먹방을 규제할 필요의 여부 등 부차적인 논쟁만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 가변성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면치기가 현재 한국 식사예절에 어긋나는지의 여부는 '칼로 물 가르듯' 판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먹방 규제 논쟁은 본질에서 더욱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먹방은 'ASMR', '귀르가즘(귀+오르가즘, 소리를 통해 쾌감을 느낌을 표현하는 신조어)'이란 표현을 만들어낼 정도로 규모가 커져 주요 문화 신산업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실제 삶에 먹방을 모방하거나 적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할 수 있다. 먹방을 보며 듣는 이유는 실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먹방은 일종의 '쇼'란 얘기다. 먹방 때문에 면치기가 유행이 됐단 주장은 먹방이 왜 생겨났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란 것이다.

면치기를 옹호하는 일각에선 냉면 사랑이 유별났던 고종황제가 "냉면만큼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더 맛있다"라고 했다며 면치기의 기원을 한국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고종황제가 냉면을 먹으며 면치기를 했든 안했든 현재 한국 사회의 면치기는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가 낳은 '신문화'란 분석이다.

옛 어른들은 젓가락질을 잘 못하면 식사예절에 어긋난다며 심하게 나무랐다. 한쪽 젓가락은 엄지 가장 밑으로 넣어서 약지로 받치고, 나머지 젓가락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놓고 엄지로 덮어 고정한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움직여 젓가락질을 해야만 했다. '정해진' 젓가락질에 능하지 않으면 식사예절, 더 나아가서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으로까지 치부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젓가락질을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젓가락질에 의견을 내면 '꼰대',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간주되는 세상이 돼버렸다. 

젓가락질을 잘 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 젓가락질을 못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젓가락질로 사람을 함부로 재단했다간 싸움이 나는 시대가 됐다. '올바른 젓가락질' 운운하면 '꼰대'로 치부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사진=대한급식신문]
젓가락질을 잘 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 젓가락질을 못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젓가락질로 사람을 함부로 재단했다간 싸움이 나는 시대가 됐다. '올바른 젓가락질' 운운하면 '꼰대'로 치부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사진=대한급식신문]

'남이사' 면치기를 하든 말든, 젓가락질을 잘하든 말든, 음식이 맛있는 게 중요하고 오히려 잘 씹어 넘겨 소화가 잘 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냔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아울러 면치기 논란의 근본 문제인 '개인주의가 없는 한국', '획일성과 정해진 방식이 강요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과 고찰이 필요할 때란 평가가 나온다. 1997년 악동꾸러기 같은 모습의 DJ DOC가 'DOC와 춤을'이란 노래를 통해 한국의 세태를 풍자했다. 20년도 더 흐른 지금까지도 이 노래가 풍자한 한국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 이영자 씨에게, 방송에 출연했던 다른 연예인들에게 이 노래를 다시 들려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먹지 나는 나에요 상관 말아 요요요

(후렴)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자신을 만들어봐요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춰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 다같이 춤을 춰 봐요 이렇게(1절)

뒤통수가 이뻐야만 빡빡 미나요 나는 뒤통수가 안 예뻐도 빡빡 밀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 머리를 보며 한마디씩 하죠 '너 사회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 반짝 대머리 옆머리로 속알머리 감추려고 애써요

억지로 빗어넘긴 머리 약한 모습이에요 감추지 마요 빡빡 밀어 요요요(2절)

(후렴 반복)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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