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웡 싱가포르 부총리 겸 재무장관. 웡 부총리는 차기 총리로 지명된 상태다. [사진=블룸버그]
로렌스 웡 싱가포르 부총리 겸 재무장관. 웡 부총리는 차기 총리로 지명된 상태다. [사진=블룸버그]

싱가포르의 로렌스 웡(Lawrence Wong, 黄循财, 황순재) 차기 총리 지명자가 미·중이 서로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대만 문제 관련 긴장 상태를 단계적으로 줄이려 하지 않는다면 "몽유병 걸린 듯 갈등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싱가포르 행정부의 최고 수장인 총리가 될 차기 후계자의 인터뷰란 점에서 싱가포르가 양국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란 평가가 나온다.

웡 지명자는 15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양대 경제 대국간 관계가 낸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및 그에 따라 중국이 대만 인근에서 실시한 군사 훈련의 결과 '매우 걱정스러운' 궤도 위에 있게 됐다"며 "점점 더 위험한 쪽으로 양국이 일련의 결정들을 내리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이 말하듯 누구도 일부러 싸우려 하진 않겠지만,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갈등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며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위험이다"라고 했다.

웡 지명자는 '미 정찰기 충돌 사건'을 거론하며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충돌이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2001년 4월 1일 미 해군 소속 EP-3 정찰기가 남중국해 상공에서 중국 전투기와 충돌한 후 중국 남부의 하이난 섬에 비상착륙했다. 그해 1월 미국이 국가미사일방어(NMD)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중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 사건은 미·중간 외교 분쟁으로까지 확대됐다. 거기에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 여부를 놓고서도 갈등이 터져나왔다. 다행스럽게도 그해 5월 30일 미·중 양국이 중국에 억류돼 있었던 미 정찰기 반환에 합의하고 정찰기 승무원들 또한 풀려나면서 갈등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웡 지명자는 "우린 일촉즉발의 상황, 우발적 사고, 오판과 같은 것들을 우려한다"며 "양측의 지도부가 계속해서 서로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길 희망한다, 특히 최고위급에서 이러한 노력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그러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으로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웡 지명자는 싱가포르의 목표는 "역내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주요 강대국들이 서로 우호 관계를 중첩시키는 것"이라 했다. 또한 '규칙에 기반한 다자간 무역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닛 옐런 미 국무장관이 내세웠던 '프렌드쇼어링'은 빈국을 더욱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웡 지명자가 우호국이나 동맹국들과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미국의 '프렌드쇼어링'에 우려를 표하면서 싱가포르는 미국의 변화하고 있는 대(對)세계전략, 즉 중국을 세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 하는 미국에 온전히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웡 지명자는 "국제 공동체가 '새로운 세계 질서'에 접어들고 있다"며 "이 질서 안에서는 교역, 경제, 금융이 '지정학적 경쟁의 도구'로 사용된다"고 했다. 이어 "더 많은 교역을 할수록 지정학적 경쟁이 줄어든다는 건 오래된 논리"라며 "이젠 지정학이 교역을 약화시킬 수 있단 새로운 논리가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한 "이는 더 분열되고 위험한 세계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우려스럽다"다고도 했다.

블룸버그는 싱가포르가 아시아에서 미·중간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국가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가 역내 리스크 관리에 힘쓰고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엔 미·중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와 같은 작은 도시국가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싱가포르는 무역에 의존하고 있을 뿐더러 제1교역 대상국이 중국이면서 동시에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기지를 제공함으로써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가 부각될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즉 싱가포르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경제·안보상의 이득을 최대한으로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인 웡 총리 지명자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중이 갈등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고 한 것도 싱가포르인으로서 싱가포르의 상황과 처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데서 나온 발언으로 파악된다. 

다만 여전히 미·중간 긴장은 고조돼 있다. 미 의회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한지 채 2주도 되지 않아 의회 대표단을 다시 한 번 파견했으며, 중국은 15일 이에 맞서 대만 주변에 새로운 순찰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중국은 지난 10일 발간한 '대만 문제와 새 시대 중국의 재통일'이란 제목의 백서에서 '하나의 중국'만 있을 뿐 '두 개의 중국'이나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 같은 건 없다며 강경한 입장에서 선회할 뜻이 전혀 없음을 대내외적으로 표방하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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