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고조되는 북한의 핵위협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군사동맹 강화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서 ‘체제부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민주노총에 비해 노사관계 등에서 합리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이같은 주장을 펴는 행사에 동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서울 도심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사진=YTN 캡처]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서울 도심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사진=YTN 캡처]

민주노총은 광복절 연휴 첫날인 지난 13일 서울 도심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제77주년 광복절 맞이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수천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한미전쟁연습을 중단하라", "한미동맹 해체하라","양키 고 홈" 등의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비판은 실종, 한미연합군사훈련만 맹비난

이들의 구호는 북한 정권의 입장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온 데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힘균형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윤석열 정부와 조 바이든 미 행정부 간의 합의만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노골적인 ‘친북 정치행사’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행사 현장에서 “전쟁 준비 훈련을 하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면서 “이 나라를 전쟁의 화염 속에 몰아넣으려는 윤석열 정부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양 위원장은 “미국에 치우친 대결정책이 아니라 자주적인 평화정책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단체인 민주노총이 임금이나 처우개선이 아니라 한미동맹이나 군사문제를 핵심이슈로 설정, 북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대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대회사, ‘체제부정’을 위한 궤변과 흑색선전으로 가득차

민주노총이 행사에 앞서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회사’의 내용을 보면 ‘체제부정’을 위한 궤변과 흑색선전으로 가득차 있다.

대회사는 “윤석열 정부는 출범 3개월만에 노동자 민중의 준엄한 심판에 직면해 있다”면서 “민생은 뒷전이고 재벌 퍼주기에 골몰한 결과이며, 평화를 외면하고 대결책동에 매진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인사 실패, 미숙한 국정 운영 등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남북)대결책동에 매진했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편 셈이다.

민생경제의 어려움도 남북관계 경색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코로나19팬데믹 기간 동안 지속된 저금리 기조를 완화하기 위한 글로벌 금리인상 정책, 이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 조짐,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과 같은 경제적 변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면서 윤석열 정부와 한미동맹을 매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열린 8·15 전국노동자대회 및 자주평화통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집회를 마친 뒤 용산 대통령집무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열린 8·15 전국노동자대회 및 자주평화통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집회를 마친 뒤 용산 대통령집무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신냉전으로 불리는 강대국 간 패권다툼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대만해협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면서 “이 땅에서도 다음 주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전쟁을 준비하는 훈련을 하겠다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미연합군사훈련은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수단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에 대한 인식은 공유해왔다. 문재인 정부에서만 약화되는 추세를 보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어전쟁’을 기본 성격으로 삼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이뤄질 경우 사실상 전쟁을 도발하는 행위라고 우기고 있는 모습이다.

대회사는 ‘반미 투쟁’과 ‘윤석열 정권 타도’가 최종적인 목표임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을 향해 투쟁하듯, 한반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그들의 손아귀에서 꼭두각시 노릇하는 하청 바지사장들처럼, 국익은 뒷전이고 한미일 동맹을 부르짓는 윤석열 정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경제패권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중심 공급망 구축을 압박하고, 대만사태 등을 계기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신냉전’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최대 우방국인 미국과의 투쟁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국가붕괴를 의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다수 국민은 충격적인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노총의 무리수, 북한 정권과의 교감으로 인한 선택

민주노총이 이처럼 무리수를 강행한 것은 북한 정권과의 교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3일 행사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조선직총) 중앙위원회가 보낸 ‘연대사’가 낭독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오은정 통일위원장이 대독한 연대사에서 조선직총은 “미국과 남조선의 윤석열 보수 집권 세력은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종 명목의 침략 전쟁 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다”면서 “로동자의 억센 기상과 투지로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무분별한 전쟁대결 광란을 저지 파탄시키자”고 주장했다. ‘방어전쟁’을 ‘침략전쟁’으로 왜곡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남북노동자가 단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서울 도심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사진=YTN 캡처]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서울 도심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사진=YTN 캡처]

민주노총, 전교조 등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집중공격하는 것은 지난 7월 29일 한미 국방부 장관이 회담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을 통합, 확대하기로 합의한 데 대한 북한 정권의 위기의식을 대변한 결과로 풀이된다. 북한 정권은 격분한 상태이다.

북한 정권, 지난 7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 결과에 격분한 상태

한미 국방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9월 중 확장억제전략협의체(Extended Deterrence Strategy and Consultation Group, EDSCG) 개최, 후반기 한미연합연습 을지연습과 통합·확대 실시 등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은 8월 22일부터 9월 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시킨 EDSCG는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무력화시킨 한미협의체이다. 2016년 10월 한미 양국 정부는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과 관련 기존 협의체였던 억제전략위원회(DSC)보다 격상시킨 차관급 협의체를 만들기로 합의, EDSCG를 출범시켰다. 전략적 목표는 북한의 핵위협 억제이다. 북한 핵미사일 발사 위협이 발생할 경우, 실질적인 대응능력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또 강화되는 이번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방어작전’과 ‘반격작전’으로 나뉘어 실시될 것으로 전해졌다 .

이 같은 내용이 북한 정권을 자극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조선신보>는 '강대강 국면에서 강행되는 미남(한미)합동군사연습'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조미(북미) 대결이 강대강으로 치닫는 국면에서 군사도발을 일삼는 것은 핵전쟁의 도화선을 눈앞에 두고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나 같다"고 주장했다. 북한 정권의 거듭되는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시험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명도 없이 ‘방어전쟁’인 한미연합군사훈련만 비난한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진 ‘합법집회’를 통해 북한의 주장을 고스란히 확성기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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