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펼쳐온 류삼영 총경이 12일 오후 감찰 조사 출석을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들어서기 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8.12(사진=연합뉴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펼쳐온 류삼영 총경이 12일 오후 감찰 조사 출석을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들어서기 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8.12(사진=연합뉴스)

경찰국 신설안에 반발해 사상 초유의 집단 반발을 주도한 경찰관이 감찰 조사 대상에 올라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감찰 조사 대상에 오른 경찰관이 이번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맞서겠다고 밝혀 그가 주도한 집단 항명성 행태가 특정 정치적 성향을 띄고 있음이 드러나는 모양새다.

바로 이번 사건의 촉발점은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내 '경찰국 신설안'으로 이는 윤석열 정부의 안건이다. 이에 집단 반발을 주도한 특정 경찰관이 문재인 정부의 숙원(宿願)이었던 공수처를 통해 맞서겠다고 밝힘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경찰 중립성 방어'라는 경찰국 반발 인사들의 명분이 사실상 '정치적 논란'을 위한 군불때기였음이 드러난 것.

경찰청(청장 윤희근)은 지난 12일 경찰국 설치에 반발해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해 대기발령 조치된 류삼영 총경에 대해 감찰 조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류삼영 총경은 오후2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 감찰담당관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자리에서 류 총경은 기자들에게 "전국(경찰)서장회의는 잘못된 대통령령 제정으로 인해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경찰권을 장악하려는 데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행위"라고 밝힌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발언은 그치지 않는다. 류삼영 총경은 "직무상 명령으로 우리의 회의를 방해했고 대규모 감찰로 받지 않아야 할 감찰조사를 받게 했다"라며 "우리의 선의를 왜곡해 불법으로 규정 후 쿠데타로 매도해 명예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반드시 문제를 지적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사건의 또다른 핵심은 '형사사법절차'의 정체에 있다.

기자들이 '형사사법절차'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고발을 뜻하는 것인가'라고 물어보자 "배제하지 않고 있다"라고 발언한 것. 즉,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신설안에 반발한 이후 문재인 정부가 강행했던 공수처를 통해 소명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처장 김진욱)는 14일 기준으로 출범 571일차를 맞이했다. 지난해 1월21일 김진욱 처장이 본격 취임하면서 신설 기관으로 자리잡았는데, 정작 그 취지와는 별개로 이렇다할 성과를 570여일 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게 정치권의 일부 시선이다.

문재인 대통령 "공수처 내달 출범하도록 국회 협조 당부". 2020.06.22.(사진=연합뉴스TV)
문재인 대통령 "공수처 내달 출범하도록 국회 협조 당부". 2020.06.22.(사진=연합뉴스TV)

본래 공수처라는 조직은, 노무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또다른 전신 중 하나인 열린우리당의 희망사업이었다. 이는 문재인 前 대통령의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자서전에 모두 실렸다. 그 이야기 일부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민정수석 두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오늘날의 공수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도 그렇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같은 회고를 통해, 공수처가 더불어민주당의 오랜 숙원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수처는 이미 지난 2020년 10월경부터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편성돼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이헌·임정혁 변호사가 야당이던 국민의힘 몫 추천위원을 맡았으나 7명 중 6명 이상 찬성해야 하는 조항을 '3분의 2'로 개정해 2020년 12월10일 본회의에서 강행 통과시켰다.

그렇게 공수처는 그 다음해인 지난해 1월21일 처장 취임이 이뤄지면서 오늘까지 571일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일명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 밑이 어둡다)격 신세에 놓이게 됐다. 당시 여당 입맛에 맞도록 야당 인사들의 비토(veto)권을 무력화하면서까지 출범시킨, 정당 민주주의의 편법적 입법 과정으로 점철된 졸속기관이었다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다.

기관 태생 과정에서 이같은 오점이 묻어있는 공수처는, 윤석열 정부에 의해 폐지될 가능성도 계속 점쳐져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법 공약을 밝히는데, 이때 "무능하고 정치 편향적인 공수처를 정상화시키고, 고위공직자의 부패 수사를 담당하는 진정한 수사기관으로 환골탈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계속 정치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처럼 야당(당시 국민의힘) 의원 전원에 대한 통신감찰을 감행할 경우 관련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뿐만 아니라 기관 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당시 공수처는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비롯해 공수처법에도 해당되지 않는 일반 민간인들을 상대로 통신조회를 해왔다. 공수처법 제2조 수사대상 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는 필자를 비롯해 <펜앤드마이크> 등 신문·방송사 기자들을 상대로 통신자료를 조회해오다 이 사실이 밝혀져 도마위에 오른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1일,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근거인 수사·정보기관이 영장없이 이동통신사를 통해 가입자의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현행법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다.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서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왼쪽 두 번째부터),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2021.1.21(사진=연합뉴스)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서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왼쪽 두 번째부터),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2021.1.21(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면서 현행법에도 없는 전국서장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이 지난 12일 본청 감사 전 기자들에게 이같은 행태를 보여옴에 따라 윤석열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공수처를 들먹이면서 '공수처 고발'을 예고했다.

류삼영 총경이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굳이 앞서 밝힌 행태를 저질러오며 인권 침해 논란까지 자초했던 기관을 통해 사법절차를 규명하려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도 눈길을 끈다. 그러다 보니 이에 따른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이 예상되는 바이다.

지난달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일명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 스스로가 이 자리에서 "경찰 중립성은 70~80년대 민주 투사들이 목숨으로 바꾼 아주 귀한 것으로 이를 위해 몸으로 막을 것"이라고 밝힌 발언을 통해 그 스스로 정치적 논란을 자초하는 모양새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수처 고발 등 만일의 사태 감행 시 류삼영 총경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현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공수처법)'상 제2조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대상인 '고위공직자'의 범위에는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이 포함된다. 경찰공무원 중에서도 경무관 이상 계급이 공수처 수사대상이 되는데, 류삼영 총경은 경무관 그 바로 아랫단계 계급인 총경 계급에 해당한다. 즉, 류삼영 총경이 경찰청을 상대로 공수처에 고발할 경우 윤희근 청장은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으나, 류삼영 총경은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이 아닌 경무관 그 아래 경찰공무원이므로 수사대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법에도 없는 '전국 서장 회의'를 주도했다는 류삼영 총경이 법적으로 완전 무결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제2항에서는 '공무원은 집단·연명(連名)으로 또는 단체의 명의를 사용하여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정책의 수립·집행을 방해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게다가 전국 치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임무를 갖고 있는 경찰서장들을 임의 소집했다는 점에서 치안공백의 문제 야기 논란으로부터 자유롭다고도 볼 수 없는 상황.

한편, 경찰청은 지난 12일 입장문을 통해 "류삼영 총경은 지난달 23일 경찰 인재개발원장을 통한 (윤희근)경찰청장(당시)직무대행자의 해산지시를 거부하고 (총경회의)참석자들에게도 전달하지 않은 직무명령 위반 행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경찰청 입구 현관 모습.(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경찰청 입구 현관 모습.(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