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문가 초청계획은 '없던 일'로...의심받는 진정성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 3월말 에어버스 디펜스 & 스페이스 인공위성 사진을 근거로 분석해 제공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모습. 북한은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하는 방식으로 폐기하는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 3월말 에어버스 디펜스 & 스페이스 인공위성 사진을 근거로 분석해 제공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모습. 북한은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하는 방식으로 폐기하는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은 오는 23~25일 사이에 핵실험장 폐기 의식을 진행한다고 12일 발표했다. 모든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시키고 입구를 폐쇄하며 관측설비와 연구소, 경비대의 구조물을 철거한 뒤 인력을 철수하겠다고 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공보에서 핵실험장 폐기 과정의 투명성 보장을 위해 국제기자단의 현지 취재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를 들어 취재국은 미국과 한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으로 제한했지만 취재진들을 위해 전용기와 특별열차를 편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핵 전문가’ 초청 계획은 은근슬쩍 없던 일로 만들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남북 정상회담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김정은은 (핵실험장 폐쇄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은 핵실험장 폐쇄 계획을 밝히면서 초청 대상에서 전문가를 뺐다.

북한의 이 같은 ‘핵실험장 폐기’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진정성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차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약속한 ‘폐쇄’가 아닌 ‘해체’ 수순을 밝아야 불능화시킬 수 있다고 앞서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밝혔다. 올리 전 사무차장은 김정은이 약속한 ‘폐쇄(closing)’는 ‘해체(dismantlement)’와 다르다며 콘크리트로 터널들을 메워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정은이 풍계리가 유일한 핵실험장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다른 핵실험장이 없다고 선언했는데도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발견된다면 현장에 가서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하 터널엔 폭발하지 않은 핵물질 즉 플루토늄 혹은 우라늄이 남아 있다”며 “터널이 제대로 봉인만 되면 이런 물질을 채취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올리 전 사무차장은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한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해당 시설을 복구할 핵심 설비는 고스란히 남는다”며 현장 검증을 통해 세밀한 부분까지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것이 증거인멸에 해당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조선일보는 15일 전성훈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인용해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 핵무기 개발의 핵심 시설로 과거 핵실험에 쓰인 핵물질 종류와 양, 정확한 파괴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물질들이 갱도 도처에 스며 있다”며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현장을 보존한 상태에서 가장 먼저 국제사회에 신고해야 할 시설”이라고 했다고 조선일보는 14일 전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은 바둑으로 치면 사석인데 북한이 이를 가지고 대마를 내주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비핵화의 관건은 핵시설, 물질에 대한 철저한 신고와 사찰·검증”이라며 “풍계리 핵실험장 같은 핵심 핵 시설이 폐기되면 이 과정을 북한의 ‘고백’에만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한편 한미 양국은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에 일단 환영의 뜻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북한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 회담에 앞서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이는 “매우 영리하고 정중한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발표는 남북정상회담의 약속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표로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두 나라 지도자들 사이의 믿음이 두터워지리라 기대한다며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한 여정의 첫 축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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