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적인 제스처 보인 트럼프... 중국 제제 완화 대신 무엇을 취했나?

'병 주고 약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실컷 약을 올리고 친절을 베푼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이란제제를 위반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ZTE를 압박해 혼을 내준 뒤 "중국 일자리가 위험에 처했다"며 "ZTE 정상화 위해 시진핑과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제와 압박으로 국가 대 국가의 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한 후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끌고가겠다는 심산으로 보여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과 나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ZTE가 (미국) 사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어 “(중국의) 너무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상무부는 이를 끝내달라는 (중국 정부 측의) 요청를 받았다”라고 올렸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달 16일 미국의 대북 및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ZTE에 대해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강력한 제제를 내렸다. ZTE는 중국을 대표하는 통신장비업체로, 스마트폰 판매에서 세계 9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만큼 타격이 컸다. 

ZTE는 중국 내에서조차 스마트폰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주 홍콩거래소에 제출한 문건에서 회사의 주요 영업활동을 중지했다고 밝혔다. 미 업체들로부터의 부품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ZTE는 통신장비 등에 들어가는 부품의 25∼30%를 인텔, 마이크론, 브로드컴 등의 미국 기업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만5,000여명의 직원을 둔 ZTE는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당한 이후 선전(深圳)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협력업체 직원 수천여명도 강제 휴가 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미 업체들의 부품공급이 끊기자 대체재로 활용될 것으로 보였던 대만 칩 제조업체인 미디어텍은 최근 정부 승인을 받아 중싱에 부품공급을 재개했지만, 미디어텍 외에 다른 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정부의 수출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에 쓰이던 부품의 대체제 활용도 원활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ZTE는 회사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미 상무부에 제재 유예를 공식 요청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이날 트위터를 통해 "ZTE가 다시 사업에 복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유화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병을 실컷 줬으니 이제는 약을 줄 차례라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과의 지난 3,4일 베이징에서 열린 1차 미중 무역협상에 이어 2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2차 협상은 빠르면 이번주 워싱턴에서 열린다. 트럼프가 유화적인 발언을 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난 8일 전화통화로 미중 무역마찰을 적절하게 처리하기로 논의한 이후다. 미국이 ZTE 사태로 궁지에 몰린 중국을 상대로 제제를 완화하고 다른 실리를 챙기는 것이 확정되자 유화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국은 이란핵 협정을 탈퇴하며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미북회담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경제 제제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외교적으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미 외신들은 미중 무역 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미국 측 기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부분으로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가 미국의 무역 적자와 일자리 감소의 원인으로 중국 정부의 정책적 영향을 지목해왔다는 점에서, 중국의 일자리 문제를 거론한 부분은 백악관의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ZTE와 중국 통신장비 회사 화웨의 미국 진출을 막아섰는데 이 같은 발언은 의외성을 띄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미 민주당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애덤 시프 하원의원은 "우리 정보기관들은 ZTE의 기술과 휴대전화가 중대한 사이버 안보 위협을 제기했다고 경고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중국의 일자리보다 우리 국가 안보를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미국 무역 전문 변호사인 클레어 리드는 ZTE 규제가 중국 지도부에 충격을 줬을 것이며,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매긴 관세 폭탄보다도 더 큰 경고음을 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제자문인 리우 헤는 미중 간 무역 분쟁 조정을 위해 조만간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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