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종 자료 제출·공시 의무를 지는 대기업집단 총수(동일인) 친족 범위를 기존보다 줄이기로 했다. 내국인뿐 아니라 한국계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11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은 현재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으로 규정돼있던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으로 축소했다.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이나 공정 경쟁 훼손 등을 막기 위해 대기업에 대해 상호출자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공시 의무 부과 등 규제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총수와 그 친족 등은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해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집단의 범위, 즉 계열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특수관계인 등에게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대상자가 이를 거부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면 제재를 부과한다.

총수 친족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규제 대상 기업집단과 특수관계인의 범위가 달라진다.

공정위는 "국민 인식과 비교해 친족 범위가 넓고 핵가족 보편화, 호주제 폐지 등으로 이들을 모두 파악하기도 쉽지 않아 기업집단의 의무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며 시행령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개정안에 따라 친족에서 제외되는 총수 혈족 5·6촌과 인척 4촌의 경우, 총수 측 회사 주식 1% 이상을 보유하거나 총수·총수 측 회사와 채무보증·자금대차 관계가 있으면 친족으로 보기로 했다.

공정위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기업집단 친족 수가 작년 5월 기준 8천938명에서 4천515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단, 계열사 수에는 거의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황원철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엄밀한 추산은 불가능하지만, 작년 5월 기준으로 서너 개 회사가 지분율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현행 제도 내에서도 친족이 독립 경영하는 회사는 분리 친족으로 인정받아왔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숫자가 적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또 사외이사가 지배하는 회사는 계열사에서 제외하되 임원독립경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열사에 편입하도록 했다.

그동안에는 사외이사가 지배하는 회사 중 임원독립경영 신청을 거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열사에서 제외했는데, 이 때문에 기업 부담이 커지고 유능한 사외이사 섭외도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집단 편입을 7∼10년간 유예받을 수 있는 요건(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5% 이상에서 3% 이상으로 완화한다.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집단 계열편입 요건 충족 후 1년간 유예를 신청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고, 그 회사의 자회사도 계열사 편입이 유예되도록 했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집단의 과도한 의무가 완화되고 규제의 실효성과 형평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기업 부담 완화에 중점을 두고 총수 친족 범위를 줄이기로 했지만, '규제 사각지대'로 지적돼온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와 관련해서는 시행령을 합리화하기로 했다.

현행법에서는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는 특수관계인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혼 배우자가 계열사 주요 주주로 총수의 지배력을 보조하고 있더라도 각종 규제망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개정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도 특수관계인에 포함했다. 다만 법적 안정성과 실효성을 위해 총수와의 사이에 법률상 친생자 관계인 자녀가 있는 경우에만 사실혼 배우자를 총수 관련자로 보기로 했다.

이 규정이 시행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M그룹 우오현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가 동일인의 친족으로 인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김희영씨는 이미 T&C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동일인 관련자에 포함돼 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한편, 공정위는 외국인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대기업집단 총수로 지정하는 내용을 이번 시행령에 담을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추가 협의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5월 1일에도 쿠팡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의장은 미국 국적이다.

윤 부위원장은 "지금 단계에서 김범석씨를 쿠팡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행령 개정에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내년에 지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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