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부장이 9일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요구한 ‘독립 자주’ ‘선린우호’ ‘윈윈’ ‘평등과 존중’ ‘다자주의’의 깜짝놀랄 속뜻은?

박진 외교부 장관은 8.9(화)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서 왕이(王毅, WANG Yi)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및 만찬을 갖고, △한중 양자관계, △한반도 및 지역ㆍ국제 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사진=외교부).
박진 외교부 장관은 8.9(화)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서 왕이(王毅, WANG Yi)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및 만찬을 갖고, △한중 양자관계, △한반도 및 지역ㆍ국제 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사진=외교부).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다섯 가지 마땅함(應當·응당)’을 제시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다. 왕 부장은 그동안의 한중관계를 ‘비바람’에 비유하며 앞으로 양국이 견지해야 하는 5가지 요구사항을 밝혔다. 

첫째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 자주’, 둘째 서로의 중대 관심 사항을 배려하는 ‘선린우호’, 셋째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하는 ‘윈윈’, 넷째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평등과 존중’, 다섯째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견지하는 ‘다자주의’.

왕 부장의 5가지 요구사항은, 자료상으로는 주어가 양국 외교장관으로 돼 있지만 사실상 왕 부장이 박 장관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외교가의 해석이다. 특히 기존의 고고도미사일 사드(THAAD) 배치와 관련된 ‘3불 정책’ 유지에 대만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편에 서달라는 입장을 추가적으로 더해 우리 측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는 9일 ‘중국 외교부장이 더 독립적이고 성숙한 양국 관계를 촉구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의 동북아연구소 다 지강 소장을 인용해 “왕 부장의 발언은 워싱턴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독자적인 외교를 고수할 것을 상기시키는 발언”이라고 밝혔다. 즉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 자주’”는 윤석열 정부에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 소장은 “한국의 나토 회의 참석과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동참은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음을 보여준다”며 “그러나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 중 하나이자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도발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피해야(shy away)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왕 부장이 언급한 “서로의 중대 관심 사항을 배려하는 ‘선린우호’”는 문재인 정권의 ‘사드 3불’ 정책의 유지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외교부는 10일 홈페이지에 한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 보도자료와 별개로 사드 관련 논의 내용을 담은 자료를 게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왕 부장은 박 장관에게 중국의 안보 우려를 중시하고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양국 외교장관이 사드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교환을 하고,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며 “(양측은) 서로 안보 우려를 중시하고 적절히 처리하도록 노력해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했다”고 했다.

중국 입장에서 ‘안보 우려 중시’는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사드의 레이더가 중국의 전략적 동향을 탐지할 수 있다는 중국의 안보 우려를 존중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적절한 처리’는 사드 3불에 ‘1한(限·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까지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타임스는 9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사드 문제는 여전히 양국 관계의 가장 큰 도전으로 남아있다”며 “윤석열 정부는 사드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드문제가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분노에 불을 붙이고 지난 30년 간의 한중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악화시켰다는 설명이었다.

신문은 “사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윤의 정치적 지혜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신문은 “박 장관의 중국 방문은 윤석열 정부가 대선 기간과 임기 초반을 지배했던 중국에 대한 이전의 강경한 태도를 무너뜨리고 한중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한편 외교부 당국자는 “두 장관 모두 각자의 사드 관련 입장을 깊이 있게 개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향후 한중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명확하게 공감했다”고 전했다. 일견 윤 정부가 ’사드 3불‘ 유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암시로도 해석된다.

양 부장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하는 ‘윈윈’” 요구는 미국 주도의 세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Chip) 4’에서 한국정부가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행보를 비판하며 한국과 중국이 함께 저지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10일 홈페이지에 ‘중·한, 공급망 안정 수호에 동의’라는 제목의 자료를 별개로 게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왕 부장은 회담에서 “현재 세계화가 역류를 만나 개별 국가가 경제를 정치화하고 무역을 도구화하며 표준을 무기화해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강하게 미국을 비판했다. 왕 부장은 “중·한 양측은 시장 규율을 위반하는 이런 행동을 공동으로 저지하고 양국과 전 세계 산업망·공급망 안전과 안정을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왕 부장의 이 같은 강경 발언과 달리 중국은 암묵적으로 한국의 ‘칩4’ 참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중국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국의 편을 들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있기 전에 이미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칩4’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올해 3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 일본, 대만 정부에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다.

박 장관은 한국의 ‘칩4’ 참여가 특정 국가 즉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박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미국의 (칩4) 제안은 산업의 증진에 방점을 둔 협력으로서 중국을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타임스는 8일 “최근의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칩4’ 예비회의 참석 의사를 밝히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하고 중국에 대한 수출 장벽을 언급하는 것을 피하도록 다른 참가자들을 설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요컨대 그들은 중국을 도발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이 미국이 만든 작은 파벌에 가입해야만 한다면 전 세계 공동체들은 한국이 진정으로 균형을 잡고 잘못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것이 서울의 고유한 가치를 증명한다”고 했다.

다음날인 9일에도 글로벌타임스는 “서울은 이전에 이 단체(칩4)의 특징을 배타적 ‘동맹’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를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협력 대화라고 표현했다고 코리아헤럴드가 보도했다”며 “그것은 한국 정부의 기본적인 태도, 즉 미국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핵심 이익과 관련된 일부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박 장관은 9일 왕 장관에게 ‘칩4’ 참여에 대해 ‘전적으로 국익에 기초해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박 장관인 이런 한국 측의 최근 결정은 순수하게 우리의 국익에 따라 판단한 것으로서 어떤 특정국가를 배제하거나 겨냥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유사한 문제 등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국익에 기초해 판단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히 천명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를 인용해 “한국은 두 강대국 사이에 편을 들기를 꺼리고 있으며 특히 지역 안정과 공급망 안보에서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즉 중국은 내심 한국이 미국 주도의 ‘칩4’ 회의에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평등과 존중’과 다섯째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견지하는 ‘다자주의’는 중국정부의 인권탄압 문제와 대만문제 등에 관여하지 말라는 경고로 보인다.

중국정부는 대만의 독립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인권탄압 문제, 홍콩의 자치권 보장 등을 ‘내정간섭’으로 간주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31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강력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 안후이성 툰시에서 열린 아프간 관련 다자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재장악한 탈레반 집권세력의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은 줄곧 아프가니스탄의 주권과 독립, 영토 보존성을 존중해왔고, 평화롭고 안정되며 발전한 아프가니스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중국은 철저하게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대한 불간섭 노선’을 강조하면서 유엔 제재가 아닌 이상 인도주의적 목적에 따른 조치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며, 그러나 중국은 자국의 이익이 걸려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주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중국정부는 “난폭한 내정간섭”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중국은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4일 “(윤 대통령이 아닌) 김진표 국회의장이 펠로시 의장을 만난 것은 예의바르게 보이고, 국익을 보존하는 조치였다”며 한반도 문제 전문가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뤼 연구원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회담했다면 대만 관련 주제가 언급됐을 것이고, 한국정부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한국은 중국을 화나게 하거나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왕 외교부장에게 대만 문제에 대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고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타임스는 ”박(장관)의 중국 방문은 중한 관계의 더 큰 발전을 증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매우 만족해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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