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의 동상이몽...왕이가 ‘칩4’ 가입을 막는다면 박진이 할 말은?
한중의 동상이몽...왕이가 ‘칩4’ 가입을 막는다면 박진이 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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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부터 2박 3일 동안 방중하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가질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경제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칩4’에 대해 중국이 부정적인 입장을 본격적으로 개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칩4’ 가입을 거부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칩4에 가입하지 말라”고 압박해올 경우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4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4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북핵 문제, 대만 문제, 경제안보 현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물론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이슈는 ‘대만 문제’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지난 2일 대만방문 이후 중국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다. 펠로시의 행보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파괴한 도발적 행위라는 게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대만을 겨냥한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보복을 시작하고 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대만 문제’보다 ‘칩4’가 더 중요해

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관한 한 원칙론을 고수하는 외교 전략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정도 줄타기 외교를 벌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패권을 둘러싸고 진행됐던 미중갈등이 대만 문제를 계기로 정치군사적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 정부는 ‘하나의 대만’ 원칙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대만의 평화’를 강조할 수 있다. 하나의 대만을 지지하는 것은 중국의 편을 드는 것이고, ‘대만의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이후 거세지는 중국의 군사행동에 대해 외교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지난 5일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했다. 특히 박진 장관은 EAS 회의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전제한 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역내 안보와 번영을 위한 전제조건인 만큼, 한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또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이라는 표현은 미국 등 서방세계가 중국 및 러시아의 물리적 행동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만과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무력시위, 한국은 직접 당사자 아냐

실제로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이후 닷새 동안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벌였다.

중국군은 첫날인 4일 대만 북부, 남부, 동부 주변 해역에 총 11발의 둥펑(東風·DF) 계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같이 전례 없는 화력 시위는 미국과 대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각종 전투기와 군함들이 연일 대만 해협 중간선을 넘나들었다. 4~6일 동안 중간선을 넘은 군용기가 모두 104대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과 대만의 비공식 경계인 중간선을 무력화했다는 군사적 의미를 갖는다. 대만군도 즉각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경고 방송을 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지난 5일 군함에 승선한 한 군인이 대만 쪽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대만 호위함 란양호 뒤로 해안선과 산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AP통신은 “신화사가 제공한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AP연합뉴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지난 5일 군함에 승선한 한 군인이 대만 쪽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대만 호위함 란양호 뒤로 해안선과 산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AP통신은 “신화사가 제공한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도 “중국의 도발은 무책임하며 오판의 위험성을 키운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친강 주미 중국대사는 “군사훈련은 영토와 주권 보호를 위한 적법한 조치”라면서 “미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즉각 행동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으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이제 무력시위를 중단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더욱이 대만 문제를 둘러싼 이번 미중갈등은 한국이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다. 객관적 입장에서 외교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중국도 한국 정부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바이든의 ‘칩4’ 구상은 새로운 한중 경제 갈등의 불씨, 반도체보다 문화산업이 더 취약?

그러나 ‘칩4’는 다르다. 한국 정부가 당사자이다. 때문에 박진 장관이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사안은 ‘칩4’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경제동맹인 ‘칩4’ 가입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기는 곤란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이 외교부장이 박진 장관에게 ‘칩4’에 가입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럴 경우 박 장관이 어떤 묘책을 낼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반도체 설계 분야 최강국인 미국과의 발전적 관계를 고려해 '칩4'에 가입하면서도 한중 경제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박진 장관은 캄보디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경제 안보 분야에서 공급망 안정적 관리를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칩4’ 문제가 회담 테이블 위에 올라올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8월까지 가입 확답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칩4’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중국에 막대한 수량의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수십조원 규모의 대미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논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패키징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D램 공장, 다롄에 미국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중국 시안의 삼성반도체 공장. [사진=연합뉴스]
중국 시안의 삼성반도체 공장.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칩4’ 참여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반도체 기업이 아니라 유통 및 문화 관광 산업쪽을 겨냥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과거 사드 보복때처럼 대체재가 많은 식품이나 문화관광 산업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진 장관은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칩4 동맹'이 중국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공급망 안전을 위한 중국측과의 협력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이 부장이 그 정도에 만족할 리는 없다. 왕이 부장이 한국의 ‘칩4’ 참여를 반대할 경우, 어떤 답변을 해야할지가 박 장관에게 지워진 진짜 과제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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