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정부의 ‘학제개편안’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여론 수렴 과정 없이, 덜컥 발표부터 해버린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추세이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반대 당론 공식화하며 박순애 부총리 사퇴 요구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일 사실상 반대당론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입법 사항인 학제개편에 대해 한 마디 논의 과정도 없이 덜컥 발표한 데 대해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무리한 학제개편을 추진해 교육현장의 혼선을 부추겼다고 공격했다. 교육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5세 조기입학 방침은 즉각 철회돼야 하고, 교육부 장관은 졸속행정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순애 장관의 학제개편안은 이미 물건너갔고 정쟁의 빌미만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회의에서 “학제개편이라는 거대한 사안을 의견수렴조차 없이 기습발표했다”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마루타인가, 선생님을 바보로 보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문정복 의원은 “국회의 인사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장관이 국민을 향해 핵폭탄을 투척하고 있다”면서 “맘카페를 보라, 완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비꼬는 박지원 전 원장, “음주상태에서 나온 교육정책”...경질 1순위 주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음주 교육정책을 매일 발표하는 박순애 교육부 장관, 마찬가지로 국민·경찰과 소통 없이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해서 31년 전 체제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아무리 측근이라도 경질해줘야 국민이 ‘아, 윤 대통령이 진짜 새롭게 시작하는구나’ 이렇게 감동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원장은 취학 연령 만 5세 하향 정책을 발표한 박 부총리를 두고 “음주 교육정책을 해 가지고 지금 나라가 시끄럽다”며 비꼬았다. 박 부총리가 2001년 12월 만취 수준의 음주운전이 적발되고도 선고유예를 받았던 이력을 빗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휴가를 보내며 정국 구상을 하는 만큼, 정국 타개의 방안으로 인적 쇄신을 고려할 경우 ‘1순위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박 전 원장이 이렇게 지적한 데는 박 부총리가 교육계나 국민과 아무런 소통 없이 대통령에게 느닷없이 보고부터 한 점 때문이다. 술 한 잔 먹은 게 아니라면 저런 교육정책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박 전 원장의 주장이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일 TBS 라디오에 출연, “박순애 교육부장관을 경질해야 국민들이 감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TBS 유튜브 캡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일 TBS 라디오에 출연, “박순애 교육부 장관을 경질해야 국민들이 감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TBS 유튜브 캡처]

박 전 원장은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인데 5살로 내리는 게 쉽나”라며 박 부총리가 4번 말을 바꾼 사실도 지적했다. “처음에는 4년간 한다고 하다가 이제 12년간 한다고 하더니, 연말에 국민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하다가, 이제 와서는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해서 거기에서 논의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음주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원장의 주장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경찰국 설치와는 또다른 문제”라는 반발이 나오는 상황이다. 경찰국 설치 문제는 논리적으로나 방향은 옳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지지했던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도 ‘5세 입학’ 비판...박 부총리는 정면돌파 시사?

하지만 박 부총리를 향해서는 ‘선무당’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취학 연령을 5세로 낮추는 문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의 공약에도 없던 내용인 데다, 인수위 시절에도 거론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육 전문가도 아닌 박 부총리가 교육계나 학부모의 의견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덜컥 발표부터 해버린 상황을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전교조와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양쪽으로부터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는 점에서, 박 부총리의 설익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는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단체이고, 보수 정당에 든든한 후원자였던 사실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서, ‘정무감각이라곤 없는 부총리’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박 부총리는 이 정책을 철회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 1일 예정에 없던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을 열고 "열린 자세로 사회적 협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너무나 많은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정책 철회 가능성을 전혀 열어두고 있지 않다는 태도였다.

지난달 30일 YTN에서는 ‘반대 의견이 많다면 초등학교 1년 조기 입학이 철회될 수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선을 그었다. 박 부총리는 당시 인터뷰에서 “그렇지는(철회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오히려 “아이의 미래와 취업에 대한 정보를 학부모들께 공유하게 되면 어머님들의 생각이 바뀔 여지도 있다"면서 거듭 정책 추진 의지를 보였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예정에도 없던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학제개편안에 대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예정에도 없던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학제개편안에 대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부총리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등 6개 학부모 단체를 만난 자리에서였다. 박 부총리는 “국민들이 만약에 정말로 아니라고 한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겠느냐”며 한발 물러났다. 지난달 29일 교육부 업무보고를 통해 정책 추진 뜻을 밝힌지 나흘 만이다.

박 부총리는 1일 교육 전문가 간담회를 시작으로 연이어 유아 교육 당사자들을 만났다. ‘확정되지 않은 공론화 단계’라는 점을 강조하며, 논란을 가라 앉히기 위한 시도로 풀이됐다.

학제개편은 물 건너가고 박 부총리 둘러싼 정치 공방만 격화될 듯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이 학제개편안 정책을 공식화한 것은 아니었다며 직접 해명에 나섰다. 게다가 윤 대통령도 휴가 중에 이례적으로 "각계 각층의 여론을 들어보라"고 교육부에 지시했다.

학제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듣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박 부총리에 대해 강도 높은 사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이 박 부총리를 경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2일 TBS에 출연한 박 전 원장은 “이상민 장관은 윤 대통령의 측근이지만, 박 부총리는 어떤가요?”라는 김어준의 질문에 “인수위 시절에 (박 부총리가 윤 대통령과) 특별히 잘 지냈다고 해요. 여러 소리가 나와요. (여기서) 말은 못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1990년대부터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꾸준히 거론됐지만 뚜렷한 진전을 내지 못할 정도로 예민한 ‘5세 초등 입학’을 ‘전격 발표’한 박 부총리를 둘러싼 정치공방은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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