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 펠로시 의장은 1일부터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아시아 순방에 나섰다. 공개된 방문국은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이지만 대만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 펠로시 의장은 1일부터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아시아 순방에 나섰다. 공개된 방문국은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이지만 대만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1일부터 아시아 순방에 나선 가운데 대만을 방문해 대만 정부 당국자들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어 미·중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펠로시 의장은 아시아 순방의 첫 일정을 싱가포르에서 시작했다. 펠로시 의장은 현지시간 1일 싱가포르에 도착해 같은날 저녁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리셴룽 총리는 "역내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는 안정된 미·중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싱가포르 외무부 장관이 밝혔다.

펠로시 의장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1일 회담을 가졌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펠로시 의장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1일 회담을 가졌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펠로시 의장은 리셴룽 총리와의 회담 후 미국 재계 인사들과의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는 비공개로 이뤄졌다. 펠로시 의장은 리셉션 참석 후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변인의 성명에선 대만이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지난달 31일 아시아 순방 일정 발표에서도 대만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의 고위급 인사들과의 회담만이 언급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실제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만에서 펠로시 의장이 만나게 될 인사들에겐 의장의 방문이 공지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의장과의 회동은 현지시간 2일 일부 이뤄질 예정이지만 대부분은 3일로 계획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엔 대만 정부 당국자들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둥썬신문(EBC) 등 대만 언론들도 2일 일제히 펠로시 의장이 2일 밤 10시30분(현지시각·한국시각 오후 11시 30분) 대만 쑹산공항에 도착해 다음날 오전 10시 떠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과 만날 것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의장이 분명히 올 것이다"라며 "유일한 변수는 의장이 타이페이(대만의 실질적 수도)에서 하룻밤을 보내느냐의 여부"라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이 실제 대만 땅을 밟게 되면 1997년 뉴트 깅리치 미국 하원 의장 이후 25년만에 성사된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이다. 이로 인해 펠로시 의장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오래 지속된 미·중 관계의 중심부에 서게 될 거란 예측이 제기된다. 미국 하원 의장은 미국 정치 위계서열에서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3번째로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원이 민의(民意)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최고 정부 기구이며, 하원 의장은 미국 대통령직이 일련의 사태로 공위가 될 경우 부통령에 이어 2번째로 승계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예정 소식에 중국은 강력 반발하며 미국에 경고하고 있다. 중국의 반발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가능성이 거론될 때부터 이미 높은 수위에 달했다. 자오 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19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미 관계에 심각하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대만 독립' 시도 세력에 심각하게 잘못된 신호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만일 미국측이 계속해서 이런 행동을 이어간다면 중국은 주권·영토 통합을 수호하기 위해 강력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미국은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하라"고 재차 경고했었다.

중국은 이러한 기존의 반발 수위를 더욱 높이는 모양새다. 중국 국영방송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최근 며칠간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의 경고도 재차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는 1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이 성사되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중국이 어떤 실질적인 행동을 할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중국 공산당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엔 '하원 의장'이란 미국 최고위 인사의 무게감도 있지만 '펠로시' 개인에 대한 혐오도 존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펠로시 의장은 1991년 중국 방문시 중국 당국이 경악케 할 만한 정치적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추모한다며 검은 색 바탕에 흰 색 글씨를 쓴 '민주주의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던 것이다. 그 플래카드엔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위하여'란 글귀가 한문과 영어로 적혀 있었다.

1991년 중국을 방문했던 당시 펠로시 의원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던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갔던 이들을 위하여'란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고, 중국 공산당은 경악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은 펠로시 의장을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혐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중국을 방문했던 당시 펠로시 의원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던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갔던 이들을 위하여'란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고, 중국 공산당은 경악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은 펠로시 의장을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혐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중국의 분노를 진정시키려 하면서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위기'로 몰아넣지 말라 중국에 경고했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할지라도 역내 미국 외교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미 당국자들이 중국에 설명했음에도 중국이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대만을 돕겠다고 세 차례 공언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여전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자신과 외교 관계를 맺는 모든 나라들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데, 미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이 원칙을 지지할 것임에도 중국이 과민반응 한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시진핑 주석과의 화상 회담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며 "워싱턴은 현상태(status quo)에 대한 일방적 변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의회는 행정부와는 독립돼 있다"고 시 주석에서 강조했다고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밝혔다. 커비 대변인은 중국이 "무책임한 수사법을 구사한다"며 비판했고 "미국은 펠로시 의장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만일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가 중국의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단 가능성을 함축한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커비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에 촉구한다"며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가더라도 '새로울 게 없다'는 게 정확한 상황 표현"이라 강조했다. "미국 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미국 하원 의장의 방문은 전례가 없던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가장 중요한 뉴스인 것으로 관측된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즈',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이를 보도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이 2일 대만 땅을 밟을 것인지 미·중을 포함해 주변국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일 싱가포르에서 촬영된 펠로시 의장의 모습. [사진=월스트리트저널]
1일 싱가포르에서 촬영된 펠로시 의장의 모습.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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