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가 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자문위원회)' 정기석 위원장을 '코로나19 대응 본부장'으로 임명하라고 지시했다. ‘전문가가 직접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하고 의사결정의 근거와 결과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전까지는 전문가가 비정기적으로 중대본 회의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상시적으로 중대본 회의와 소통 과정에 전문가가 참석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과학방역’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① 정기석 코로나19 대응 본부장 임명은 ‘전문가 중심 방역’ 정책

지난 27일 ‘코로나대응 정부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방역당국은 윤석열 정부의 ‘과학방역’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방역정책은 근거 중심의 정책,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정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브리핑에서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상황총괄단장은 "데이터와 경험에 입각한 근거 중심의 의사결정을 하는 게 하나의 축"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전문가 역량이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합의된 의견이 왜곡되지 않고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② 전문가 중심 방역으로 위중증과 사망 최소화에 초점 맞출 듯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일상 회복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위중증과 사망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번 정부 방역·의료 대응의 목표"라고 밝히며, 방대본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코로나 대응의 의사결정 거버넌스가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지고 과학적 데이터와 근거에 기반한다는 원칙 아래, 방역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적 모임 인원·시간 제한 위주의 통제식 방역은 하지 않겠다’며 자율적 방역 기조를 밝힌 백경란 질병청장의 방역정책에 대해, ‘각자도생 방역’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자율적 방역 기조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은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기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 국가는 부족함 없이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어르신과 어린이 등 감염 취약계층과 중증 환자에 대한 치료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진단과 진료, 처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코로나19 대응 본부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7월부터 민간 전문가로 구성돼 출범한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가 단순한 자문기구를 넘어, 중대본의 정책 논의 과정에서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대국민 소통에도 참여할 것으로 풀이된다.

③ ‘정무적 판단’아닌 ‘과학적 근거’ 강조한 안철수 방역론에 힘실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위기를 넘어 미래로, 민·당·정 토론회 - 반복되는 팬데믹 시대의 과학적 방역과 백신주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왼쪽에서 세번째)이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위기를 넘어 미래로, 민·당·정 토론회 - 반복되는 팬데믹 시대의 과학적 방역과 백신주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코로나19 대응 본부장에 임명한 윤 대통령의 이같은 기조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대목으로 평가받는다.

안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반복되는 팬데믹 시대의 과학적 방역과 백신주권'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과학방역은 방역정책의 결정권을 관료나 정치인이 정무적인 판단에 의해 최종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새 정부 들어서도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전문가가 아닌 관료에게 있다고 꼬집었다. 안 의원은 “현재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본부장은 국무총리,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의 본부장은 질병관리청장이 각각 맡고 있다"며 "현행법상 중대본이 방대본 위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행정 관료 내에서도 전문 관료 위에 비전문 관료가 지휘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정부의 방역정책이 ‘정치방역’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적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에서 방역정책 곳곳에 관료가 개입한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진정한 과학방역을 추진하려면 질병관리청장에게 방역정책에 관한 결정권을 전적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가 중대본에 설치됐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며 "감염내과 전문의인 백경란 현 질병청장은 방역 전문가이며 국민이 과학방역을 체감하기 위해선 질병청장에게 전권을 주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경란 질병청장 대신 정기석 위원장이 코로나19 대응 본부장에 임명됐다는 점에서, 안 의원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됐다고 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중대본과 방대본의 조직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기석 본부장은 지난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내에 설치된 코로나19특위에서 안철수 코로나19특위 위원장과 함께 호흡을 맞춘 전문가로 꼽힌다. 정 본부장이 코로나19 대응의 실질적인 총사령탑으로 ‘과학방역’을 이끌 것이라는 데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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