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칼럼]김칫국부터 마시라는 정부와 언론
[김인영 칼럼]김칫국부터 마시라는 정부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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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

언론의 이중성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때 남한을 방문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아주 스타가 됐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의장대의 사열을 받게 하고 부부 동반의 만찬 자리를 만들어 정상국가의 수반으로 국제 사회에 데뷔시켰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김정은을 정상국가의 수반으로, 그리고 김여정을 ‘김씨 왕조’ 출신의 ‘금수저’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전두환-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에의 민주화 투쟁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현 정부·여당의 지도자들이 김일성-김정은-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의 봉건왕조적 세습에 대하여는 한 마디 말도 없는 것이 괴이하다. 아마 현 정부·여당의 지도자들이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권력 잡기 투쟁’을 한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 괴이한 것은 지난 몇 해 동안 소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타령으로 지면과 뉴스를 가득채운 언론과 방송의 이중성이다.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대통령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방송 카메라의 앵글과 김정일의 딸로서 ‘백두혈통 출신의 수수하기만 한 스타’의 모습으로 김여정을 비춰주는 방송 카메라의 앵글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남한의 ‘금수저’와 북한의 ‘금수저’에 대한 언론의 논조는 달라도 너무도 달라 이중적이고 자기 모순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이중성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간에 화해와 평화 무드를 조성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전략적 연출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2000년과 2007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남북정상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무수히 찍었지만 남북한 정상의 악수와 포옹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지도, 핵을 몰아내지도, 평화를 가져오지도 못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도 남북정상은 웃으며 악수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는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보다 더 뜨거웠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더욱 극적인 만남을 연출했다.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깜짝 마중 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남북분단 55년 만에 남북한 정상이 만나 악수를 하고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정상회담도 하루가 아니라 2박 3일이나 계속되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진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직접 걸어서 넘었다.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평양에 까지 갔었다. 제2차 정상회담도 하루 동안 진행된 이번 정상회담과 달리 2박 3일 일정으로 열렸다.

사실 당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금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지도자의 위치를 누리고 있었고 국제적 인물이었고 오랜 투쟁의 경력을 가진 정치적 거물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386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던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위상은 현 문재인 대통령의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커다란 정치적 무게를 가진 것이었고 또 정상회담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 그 자체를 의미했다. 하지만 제1차 남북정상회담 뒤에도 제1차 연평해전은 발생했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핵위협은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먼저 이성을 상실한 우리에게 있다

과거 남북정상회담을 추동했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의 문제점은 목표했던 북한은 변하지 않고 도리어 남한이 먼저 변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북한을 지원해주면 돈 맛을 본 북한이 남한의 지원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결국 북한은 경제 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고 남한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유지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북한에 퍼주고 또 퍼주며 북한이 재정적으로 남한의 경제 지원에 기대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의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남한에 기대지 않고 도리어 핵무기를 개발하는 등 군사적 자위에 몰두했다.

이번 2018년 남북정상회담도 북한은 현재까지 아무 것도 변한 것도 아무 것도 내준 것도 없이 긴장 완화의 분위기만 이어가며 전략적으로 대처하고 있는데 도리어 우리가 먼저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 전체가 평화 분위기에 들떠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과거 사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때문에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 즉 남북한 데땅트로의 전술적 변화를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로 그릇되게 판단하여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먼저 무장을 해제하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 범할 것을 우려한다.

과거를 보자.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되돌아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도 지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호의적이고 낙관적으로 변화했다.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회담 전(前)’과 ‘회담 후(後)’로 구분할 만큼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인식을 바꾸었다. 특히 언론이 앞장서서 선정적 보도로 먼저 바람을 잡았다. 당시 언론은 김정일에 대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길을 안내하며 세심하게 배려하는 차분함”을 보였다고 썼다. 또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보도하며 나이 많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김정일의 겸손한 태도를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제 언론은 평양에서 가져온 냉면을 문재인 대통령께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는 김정은의 말을 보도하며 김정은의 겸손함과 배려 깊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과 2018년 정상회담은 출연자만 다를 뿐 프레임은 거의 유사하다. 18년 전의 ‘김정일 신드롬’과 지금의 ‘김정은 신드롬’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는 언론의 비이성적 과열 선정보도가 그 첫 번째 원인이고, 정부의 무비판적 감성적 태도가 두 번째 원인일 것이다.

국가를 지키는 현명한 지도자는 신중함(prudenza)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와 지도급 인사들은 어땠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가 제대로의 길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서훈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의 업(up)된 분위기 속에서 눈물을 닦는 모습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임종석 비서실장이 남북정상회담 내내 짓는 미소를 보면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분들이 이렇게 감성적이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또 적장(敵將)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김정은이 한 손으로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아 공손히 마시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모습을 보면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한민국 군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이성적이고 담대한 장군인지 의심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속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언론은 국민을 속이려고 온갖 교태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국민은 평양냉면의 맛이 어떻고에 빠져 생각 없이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본질적 변화인지, 북한이 변화된 모습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북한의 전략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의 실패를 다시 반복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우선 믿고 보라는데 반해 미국은 먼저 의심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불신과 의심은 국가와 국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한 바른 현실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협상 시작부터 과거 행정부와 달리 자신은 속아 넘어 가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미·북 정상간의 타협은 북한 비핵화의 시작일 뿐 그 끝은 수년 이상이 걸리는 완벽하고 철저한 검증이 종결된 후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니스트 모니즈(Ernest Moniz) 전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북한 비핵화는 ‘모든 것을 불신하고 검증 또 검증하라’가 돼야 한다”고 믿지 말고 검증하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오(Mike Pompeo)는 완전한 폐기(CVID)에 ‘영구적 폐기’(PVID)를 추가했다. 미·북협상의 타협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타협 이후의 검증이 중요한 것임을 미국 지도자들은 누누이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처럼 악수하고 선언하면 믿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폐기하면 비핵화임을 믿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존 볼턴(John Bolton)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핵무기 뿐만 아니라 “모든 핵무기, 탄도미사일, 생화학 무기 등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영구적인 폐기”를 해야 한다고 북한의 핵폐기 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다(『조선일보』, 2018년 5월 8일, A6).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 폼페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모습은 우리 공직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실제적인 핵위협은 우리가 받고 있는데 국가안보를 위한 공직자의 진정한 모범은 미국 관료들이 보여주고 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군주론』(Il Principe, 1513)에서 근대국가가 필요로 하는 군주의 새로운 행위규범으로 정치세계의 실체적 진실(verità effettuale)에 기반을 둔 ‘신중함’(prudenza) 즉 ‘사려 깊음’을 강조했다. “사려 깊은 사람(군주)은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알고, 가장 해가 적은 대안을 따라야할 올바른 대안으로 선택한다”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21장에서 설파했다. 군주(君主)가 국내외의 위험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나갈 수 있는 덕목으로 신중함을 지적한 것이다.

대한민국 공직자와 언론이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는 따지지도 않고 한나절의 정상회담으로부터 “김칫국 마시기”를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의 평양냉면이 뭐 그리 맛날 것인가. 또 대형마트에 가면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정상회담 만찬의 메뉴가 뭐 그리 중요한가. 정부와 언론과 방송이 이성을 잃고 들떠도 국민이라도 감성에 휘둘리지 말아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국민이라도 “정신 차리고 이성을 찾고 냉정해져야 한다.”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한림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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