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국회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 발언이 금융권과 정치권을 동시에 강타하고 있다. 이 원장은 최근 시중은행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상 외환거래’에 대해 “가상화폐 시장교란행위 성격이 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상화폐와 관련한 이상 해외송금 사례에서 불법성을 확인했다”며 검사 대상을 광범위하게 확대하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이 현재 확인한 이상 외화송금 거래규모는 신한·우리은행에서만 4조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금융감독원이 현재 확인한 이상 외화송금 거래규모는 신한·우리은행에서만 4조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북한 해킹집단 연루설, 권력형 비리 가능성 등 거론돼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 2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북한 해킹집단과의 연루설이다. 북한 해킹집단이 국내 거래소를 이용해 해킹한 비트코인을 현금화 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권력형 비리이다. 뇌물이든 비자금이든 비트코인으로 위장해 세탁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문재인 정부의 최고권력층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 정치권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일반 범죄 조직과의 연루설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정치 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적다는 점에서, 앞에 제기된 가능성보다는 파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우리은행에서만 ‘이상 외환거래’ 금액 4조1000억원 달해

금융감독원은 앞서 27일,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상황을 발표했다. 금감원이 지금까지 파악한 점검 대상 거래규모는 7조원(44개업체)에 달한다. ‘이상 외환거래’는 신설 소규모 법인 등에서 짧은 기간 거액의 외화를 반복적으로 송금한 거래를 말한다. 이 거래와 관련된 업체는 중복된 기업을 빼면 22개에 달한다.

금감원이 현재 확인한 이상 외화송금 거래규모는 신한·우리은행에서만 4조1000억원(중복제외 22개업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은행이 자체적으로 보고했던 규모인 2조5000억원(8개업체)보다 크게 늘었다. 신한은행은 3개 업체에서 1조6000억원을, 우리은행은 5개 업체에서 9000억원을 이상거래로 보고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신한은행을 통한 이상거래 규모가 2조5000억원, 우리은행의 경우 1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판단했다. 신한은행에서는 11개 지점에서 17개월간 1238회, 우리은행에서는 5개지점에서 13개월간 931회의 이상송금이 취급됐다.

김치 프리미엄 노리고 가상자산을 국내에서 현금화?

금감원은 27일 발표에서 외화송금이 이뤄진 방식을 공개했다. 대부분의 송금거래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시작된다.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체된 가상자산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현금화하는 수법이다.

시중은행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상 외환거래’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암호화폐 환치기로 추정된다. [사진=SBS 캡처]
시중은행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상 외환거래’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암호화폐 환치기로 추정된다. [사진=SBS 캡처]

김치 프리미엄이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의 가격보다 많게는 20% 이상 높게 거래되는 현상을 말한다.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해외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한 다음 국내 거래소에서 현금화하는 방법이 통용되고 있다.

현금화 이후 시중은행으로 이체된 자금은 다수의 무역법인 대표 등 개인·법인 계좌를 거쳐 무역법인으로 흘러갔다. 이는 다시 ‘수입대금’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달러로 송금됐다. 해외 송금 국가별로 보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3조2800억원 정도가 홍콩이었다. 일본이 약 5200억원, 미국이 약 2600억원, 중국이 2100억원 정도로 확인됐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법인의 대표가 같거나 사촌관계인 사례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러 법인의 임원을 겸임하는 특수관계인인 예도 포착됐다. 자금흐름 과정에서는 법인계좌에서 타법인 대표계좌로 돈이 가거나, 같은 계좌에서 다른 2개 법인으로의 송금, 특수관계인으로 여겨지는 업체들이 기간을 달리한 송금 등이 있었다.

‘이상 외환거래’에 대한 금감원 조사 기간, 2021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이러한 ‘이상 외환거래’는 지난달 말 금감원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서 보고를 받은 뒤 이뤄진 현장검사에서 밝혀졌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대한 금감원 조사의 대상 기간은 2021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였다.

금감원은 지난 1일부터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유사거래가 있는지 자체점검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7월말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검사는 현재 외환감독국과 일반은행검사국, 자금세탁방지실이 연계해 진행중인데 다음달 5일 이후 마무리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이상 송금을 실행한 업체에 대해 증빙서류와 송금자금 원천 확인 등 거래 실체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은행에 대해서는 외국환업무 취급과 자금세탁방지업무 이행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를 종료한 후 외환업무와 자금세탁방지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며 "은행의 이상 외화거래를 보다 실효성 있게 모니터링하고 억제할 수 있도록 감독 노력을 지속하고, 필요시 관계부처와 관련 제도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비정상 거래’ 수십건 검찰에 넘겨

대검찰청은 최근 금감원에서 이 사건 관련 ‘수사 참고 자료’를 제출받아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에 넘겼다. 이들 가운데 업체 관계자가 대구에 주소를 둔 A사에 대해선 올해 초부터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가 수사하고 있다. 대구지검은 올해 초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A사 관련 ‘비정상 거래’ 수십건을 통보받고 계좌 추적을 벌였다. 지난달에도 FIU가 A사의 ‘비정상 거래’를 더 찾아내 대구지검에 보냈다고 한다. 우리은행 지점을 통해 해외로 송금한 1조6000억원 가운데 대부분은 A사 계좌에서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대북 송금설’ 제기...‘FIU 무력화’ 배경 두고도 의혹 무성

금융감독원의 ‘거액 해외송금’ 발표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대북 송금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금융감독원의 ‘이상 외환거래’ 발표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대북 송금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검찰과 국가정보원까지 관련 조사에 나서면서, 정치권에서는 ‘대북 송금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해외 송금액이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에 국정원이 조사하느냐”라고 질문했고, 이복현 금감원장은 "해외 유출 이후 단계 부분에 대해선 검사 조사 권한이 없어서 그 이후를 직접 쳐다보고 있진 못하다"고 말을 아꼈다.

27일 유튜브 채널 ‘어벤저스’에 출연한 강찬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모든 계좌의 전산망을 걸어놓고 있기 때문에, 일정 금액(1000만원) 이상이 송금되면 그때부터 자동보고된다”며, 수십억원의 자금이 정체도 알기 어려운 이상한 회사들을 통해서 송금된 사실 자체가 “고위권력층의 봐주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국세청을 비롯해서 금융범죄를 잡아내는 전문가들이 다수 파견돼 금융범죄를 잡아내는 FIU를 무력화했다는 것은 ‘거대 권력의 지시나 압박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와 관련해 함께 출연한 신지호 전 국회의원은 북한과 연계가능성이 높은 해킹 집단 ‘라자루스’가 최근 8000억원에 달하는 암호화폐를 해킹한 사실을 미국 측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라자루스가 해킹한 암호화폐는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암호화폐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 유입돼 현금화됐을 것이고, 그 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번에 송금된 7조원 가량의 돈 중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은 상당하며,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묵인하거나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 논설위원은 진단했다. 강 논설위원은 대북 송금설이 아니라면, 국내 특정 세력이 뇌물로 받아서 암호화폐를 이용해 돈세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두가지 가능성은 엄청난 정치적인 문제”라며 “북한 송금설과 민주당 이 두가지는 전 정권이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반역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강 논설위원은 연이어 “이 사건이 터지니 윤석열 대통령이 이복현 금감원장을 임명한 이유를 알겠다”면서, 금융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이 금감원장으로 갔더라면, 유착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랬더라면 ‘이상 외환거래’는 덮였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복현 금감위원장이 굉장한 열정과 집요한 의지로 이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만큼, ‘최종적으로 송금된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서서히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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