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지난 23일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 모습/사진=연합뉴스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지난 23일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추진중인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문제가 극심한 정치갈등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정작 경찰이 당면한 최우선 개혁과제는 상위 직급자는 좁은 핀처럼 적고 순경같은 하위 직급자가 대부분인 압정(押釘) 모양의 극단적인 조직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흉기 난동 현장 이탈, 스토킹 피해자 보호 실패 논란 등 치안시스템의 무능과 허점이 잇따라 지적되는 가운데서도 치안·안전 같은 대국민 서비스 대신 승진과 수사권 등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한국 경찰의 문제를 만든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27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경찰관 12만 6,227명 중 일반직 국가공무원 4급, 서기관에 해당하는 총경 이상 간부는 650명으로 0,5%에 불과했다. 일반직 국가공무원의 경우 서기관급 이상 간부가 5~6% 선인 것을 감안하면 간부 비율이 1/10에 불과한 극단적인 압정형 조직이다.

한국 경찰이 원만한 피라미드형 구조가 아닌 이처럼 극단적인 압정형 계급구조를 갖게된 것은 1948년 정부 수립으로 경찰조직이 만들어지자 마자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순경으로 전투경찰을 대거 충원한 것이 시작이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경찰대 졸업자가 경위로 임관되고 승진을 독식하는 현상이 벌어짐에 따라 한국 경찰의 기형적 조직형태는 공고화됐다. 순경부터 치안총감(경찰청장)까지11단계에 이르는 한국 경찰의 계급단계도 큰 원인이 됐다.

반면, 미국의 경찰계급은 5단계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미국 경찰의 경우 행정이나 결제를 도맡는 상급자보다 일선에서 도둑을 잡는 비간부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 경찰의 조직문화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승진에 집착하지 않는다. “본인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현장직에 대한 보상도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찰관들은 승진에 목을 메고 있다. 특히 계급정년이 적용되는 경정부터는 퇴직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경정 승진 14년 뒤에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40대 후반에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과정급 경찰관은 “경찰 계급이 총 11단계로 일반 공무원의 9단계인 것에 비해 많고 상위 직급의 비율이 현저히 낮이 승진이 힘드니 극심한 인사 적체를 겪고 연봉·연금 측면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실토했다.

경찰조직의 압정형 구조는 ‘승진 방식의 부작용’으로도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경찰 하위직(순경~경감)은 근속 외에도 시험·심사·특진을 통해 승진하지만 경정부터는 심사를 통해서만 승진한다.

그러다보니 승진을 위해 경찰조직 상층부나 국회의원 등 정치권에 줄을 대면서 경찰 스스로 독립성을 저버리는 문화가 형성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와관련, 한 지방경찰청의 과장(총경)은 “14만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에서 누가 일을 잘하는지 ‘근평권자’(청장)가 어떻게 일일이 알겠는가”라며 “일단 승진되는 자리에 가야 승진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러려면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급자한테 찍히거나 빽이 없으면 ‘옷 벗고 집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돼있는 조직문화에서 소신애 따른 일처리, 중립이라는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경찰대 출신이 최초로 경찰청장에 기용된 이래 현재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를 거의 장악한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비경찰대 출신 경찰관들이 승진에서 밀리는 상황도 경찰 계급조직의 기형성과 더불어 정치적 중립성 및 치안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는 경찰문화 형성을 방해하는 큰 요인으로 꼽혀왔다.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정부는 경찰대 존폐문제를 포함, 경찰직급 단순화 등 부랴부랴 본질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개혁이 과거와 같은 경찰 길들이기로 끝날지, 아니면 경찰개혁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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