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전기버스와 동일한 보조금을 받는 중국산 전기버스가 한국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 지난 14일 자동차시장조사업체인 카이즈유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새로 등록된 전기버스 896대 가운데 399대가 중국산으로 44.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2020년 23.2%, 2021년 33.2%로 해마다 점유율이 오르는 상황이다.

지난 2018년 서울 성북구 정릉 도원교통 차고지에서 한 직원이 서울 시내버스에 처음으로 도입된 전기버스에 충전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8년 서울 성북구 정릉 도원교통 차고지에서 한 직원이 서울 시내버스에 처음으로 도입된 전기버스에 충전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중국산 전기버스 국내시장 점유율 50% 육박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상반기에 ‘일렉시티’ 204대를 공급해 시장 점유율 24%를 기록했고, 에디슨모터스가 19%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가 39% 비율로 압도적인 1위였지만, 올 상반기에는 점유율이 대폭 낮아졌다.

반면 중국산 전기버스의 점유율은 지난해 39%에서, 올 상반기에는 거의 50%에 달하는 상황이다. 2020년 4대 중에 한 대 꼴이던 중국산 전기버스가 올 상반기에는 거의 절반을 차지한 것이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이같이 인기를 끄는 데는 가격경쟁력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차의 전기버스 ‘일렉시티’의 가격은 약 3억5000만원 수준이다. 에디슨모터스나 우진산전 등 다른 국산 제품은 일렉시티보다 조금 싸다.

중국산 전기버스 가격은 이보다 최대 1억 원까지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중국산 전기버스의 1대당 수입단가는 2억원대 초반 수준으로 알려진다. 3억원대 초중반인 국산보다 훨씬 싸다.

가격 싼 중국산, 국민세금 투입되는 보조금 받으면 거의 ‘공짜’로 구입 가능

여기에 우리 국민 세금에서 투입되는 보조금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거의 ‘공짜’에 중국산 버스를 구입할 수 있다.

전기버스 도입과 관련한 보조금은 크게 3가지다. 저상버스로 도입할 경우 국토부가 지급하는 1억, 전기버스에 대해 환경부가 지급하는 1억, 게다가 서울시 기준으로 지급되는 몇 천만원의 보조금까지 합하게 되면, 총 2억 5000여만 안팎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중국산 전기버스 차체 가격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는 셈이다. 중국산을 구입하면 사실상 ‘공짜’인데, 국산은 최소한 수천만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운송업계에서는 중국산 전기버스 도입을 두고 ‘보조금 타먹기 사업’이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중국 업체들의 전기버스 판매를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국 정부는 자국산 배터리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급...한국 정부는 ‘통상 분쟁’ 운운하며 몸조심?

중국은 최근까지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그간 국내 배터리 3사가 중국에 배터리를 수출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자국산 배터리와 자국산 전기버스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을 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기차 저변을 넓힌다는 이유’로 중국산 전기버스에도 국산 전기버스와 똑같은 보조금을 지급해 온 것이다. 중국산 저가 전기버스에 시장을 통째로 내어주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 5월 청와대 개방 행사에 맞춰 서울 도심을 순환하는 시내버스(친환경 전기버스) 1개 노선(01번)이 신설됐다. 사진은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인근으로 01번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청와대 개방 행사에 맞춰 서울 도심을 순환하는 시내버스(친환경 전기버스) 1개 노선(01번)이 신설됐다. 사진은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인근으로 01번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산 전기버스 점유율이 가파르게 치솟자, 국내 제조사들이 중국산보다 더 많은 보조금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온적이다. 통상 분쟁 가능성이 있어 실제 적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이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해 온 것과 달리, 국산 전기버스 업체들이 역차별을 당한 셈이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전비’ 떨어지고 ‘사후관리’ 문제점 제기돼

국산 전기버스보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우는 중국산 전기버스에 대해 2가지 문제점이 지적되는 상황이다. 첫째, 일반 내연기관차의 연비에 해당하는 ‘전비’가 국산보다 훨씬 떨어져, 효율이 낮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정비 등 사후관리 수준이 국산보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승객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전비’는 전기차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로, 현대차 일렉시티는 중국산 전기버스보다 8~28% 가량 우수한 전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초 서울시가 전기버스 입찰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주행 테스트에서 드러난 결과이다. 현대차 '일렉시티'는 1.302㎞/㎾h로 가장 우수한 전비를 기록한 반면, 중국산은 1.1~1.2㎞/㎾h 수준에 그쳤다.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 누리집에서 공개하고 있는 일렉시티 공인 전비가 1.45㎞/㎾h인 점을 감안하면, 일렉시티는 실제 주행 전비와 인증 전비 간 차이가 거의 없는 셈이다. 반면 피라인모터스가 수입하는 중국산 전기버스 '하이거 하이퍼스'는 공인 전비 1.13㎞/㎾h, 비바모빌리티 '아시아스타 브이버스'는 1.16㎞/㎾h, 범한자동차 '황해 E-SKY '는 1.21㎞/㎾h 등으로 격차가 컸다.

중국산 전기버스 강세 속, 사후 관리에 우려 제기돼

중국산 전기버스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상황에 대해 운송업계에서는 ‘사후 관리’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버스의 경우 구입 후 통상 10년 가량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동안 제작사나 수입업체가 폐업하게 될 경우 부품 조달이나 정비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과거 중국산 디젤 버스를 도입했다가 몇 년 안 돼 업체가 폐업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운송업계에서는 ‘중국산 전기버스를 한꺼번에 바꾸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운송업체의 한 관계자는 "중국산 전기버스가 국내 보조금 정책에 무임승차하면서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기술력과 안전성이 검증된 국산 전기버스가 더욱 다양한 제품군을 갖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 “전기버스 대신 ‘수소전기버스’로 대체하는 방안 고려해보는 것도”

현대자동차가 지난 14일 부산모터쇼에서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를 공개하며 국내 전동화 라인업을 상용까지 확장했다.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는 하루 1회 충전으로 광역버스의 일상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26일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미래자동차학)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기버스 대신 ‘수소전기버스로 대체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대차의 수소전기 기술은 전 세계 최고라는 점에서, 중국과의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현대차는 지난 14일 부산 국제모터쇼에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과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를 공개했다. ‘유니버스’는 하루 1회 충전으로 광역버스의 일상적인 주행이 가능하고, 최고 출력은 335㎾이다.

현대차는 모터쇼 이후 부산·울산·경남(부·울·경)에서 유니버스 시범운행을 시작한다. 지난 1월 환경부와 부산시·울산시·경남도와 체결한 '부·울·경 수소경제권 내 수소전기버스 보급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에 따른 것이다. 현대차는 연내에 더 많은 지역으로 수소전기버스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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