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대다로 선발된 국힘 대변인 사이에 '펜스룰' 관련 설전이 벌어졌다. 그 주요 당사자는 문성호 대변인(오른쪽 첫 번째)과 박민영 대변인(왼쪽 두 번째)이다. [사진=페이스북]
나는 국대다로 선발된 국힘 대변인 사이에 '펜스룰' 관련 설전이 벌어졌다. 그 주요 당사자인 문성호 대변인(오른쪽 첫 번째)과 박민영 대변인(왼쪽 두 번째). [사진=페이스북]

국민의힘 '나는국대다' 출신 대변인들 사이에서 '펜스룰' 관련 논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사회를 강타했던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을 한 마음으로 비판했던 국힘 대변인들이 정작 여성 차별 논란이 발생하자 서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사건의 요는 문성호 국힘 대변인이 모 여성 기자의 식사 자리 제안에 남성 기자도 대동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한 것에 대해 박민영 대변인이 부적절하다며 지적하고 나선 것. 또한 문 대변인의 발언이 통상 남성이 여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한국에 알려진 '펜스룰'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펼쳐졌다.

사건의 발단은 6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힘에 출입하는 여성 기자 3명과 문 대변인이 지난 6월 22일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한 여성 기자가 문 대변인에게 다음 모임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 문 대변인이 '그 자리에 있던 여성 기자들 외에 남성 기자들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함으로써 논란이 시작됐다. 

이 기자는 다음날인 23일 본인의 칼럼을 통해 문 대변인을 비판했다. 비판의 요지는 문 대변인이 출입 기자를 상대로 여성 배제 논리인 '펜스룰'을 적용했단 것이다. 칼럼은 "공적 자리에서 만난 상대방을 '기자'로 본 게 아니라 '여성'으로 봤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문 대변인이 "모든 여성은 잠재적 무고죄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낫다"는 뜻으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칼럼은 문 대변인의 발언을 '여성들의 성폭력 무고로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들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며 '그로 인해 여성들만 있는 자리가 불편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해석했다. 문 대변인은 같은 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기자에게 전화해 사과했다.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이 논란은 같은 기자가 지난 6일 박민영 대변인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재언급됐다. 이 기자가 "문 대변인이 국힘 출입 여성 기자들에게 남성 기자를 대동해 식사 자리를 갖자고 요구해 '펜스룰' 논란이 있었다"며 박 대변인에게 이에 관한 의견을 물어봤던 것이다. 그러자 박 대변인은 "(문 대변인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 여성을 잠재적 무고 가해자 취급했으며 △ 공인이 기자에 대해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을 한 것으로 공적 업무 수행에서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국힘 대변인들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레디컬(급진) 페미니즘'을 비판해왔는데, 문 대변인의 발언은 자기모순이란 것이다.

박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본인 SNS에도 글을 올렸다. 25일 새벽 "'펜스룰'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가 자신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식적으로 알린다"며 "(문 대변인이) 직접 수습할 의지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단, 피해 당사자인 기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글을 올렸다. 박 대변인은 "나는 젠더 이슈에 있어 극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한치 모순된 언행을 일삼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잘못을 잘못이라 비판하고 수습한 사람이 도리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매우 불쾌한 상황"이라고 했다.

문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25일 오전 반박글을 올렸다. 문 대변인은 "여성 기자들과의 '식사자리'를 거부한 게 아니다"라며 "이미 여성 기자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식사자리에 잘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다음 모임을 식사자리가 아니라 술자리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 '술자리'로 전제하고 남성 기자들도 있으면 가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변인은 "내가 술이 약해서 밤에만 먹겠다고 해서 동석한 상근부대변인이 다음 약속을 밤에 잡자고 했다"며 "해당 기사를 쓴 기자도 동의했다"고 했다. 이어 "동석한 기자들이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싶어 사과했고 지금도 유감이다"라 하면서도 "다만 '술자리'에 대해 한 말을 마치 업무적인 영역에 대해 발언했다고 호도해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문 대변인은 "밤길을 걷는 여성이 만일을 대비해 호신용품을 소지하는 걸 두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페미니즘의 잠재적 가해자 이론은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이니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라 한다'는 논리를 근간에 두고 있다"며 "나는 이런 의도가 아니라 오직 내 스스로 조심하고자 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변인은 같은날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박 대변인이 왜 갑자기 나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남녀 기자가 동석하는 술자리를 갖자는 소리가 '펜스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식사 자리가 '공식 자리'라는 기자의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기자의 '업무 자리'라고는 할 순 있겠지만 '공식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여론은 주로 박 대변인의 처사를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자신이 '펜스룰' 논란의 주범이란 오해를 받고 있고 당에도 부담이 가고 있어 굳이 '총대를 멘' 측면이 있다고 했지만 문 대변인과의 조율 없이 독자적으로 입장을 낸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특히 2030에선 '박 대변인이 갑자기 나서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 대변인이 혹시 발생할지 모를 성 문제에 대비해 '자기 보호'를 한 것 뿐인데 왜 굳이 박 대변인이 나서 기자 편을 드냐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만 있는 자리에 여성을 부르면 이게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펜스룰을 적용한 것 뿐인데 왜 이게 여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거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문 대변인과 박 대변인 간의 온라인 설전은 박 대변인이 같은 날 사과글을 올리며 마무리됐다.

다만 문 대변인의 발언이 '펜스룰'이냐 아니냐를 차치하고라도, 국힘 대변인 사이의 설전이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의 성별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단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선 혹시 있을지 모를 불미스런 일을 방지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발언이나 행동이 이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행적으로 '낙인' 찍히곤 한다는 것이다.

여성 기자는 술자리에 남녀가 동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문 대변인의 발언이 "출입기자를 상대로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인 '펜스룰'을 적용한 것"이라고 했는데, 일각에선 '펜스룰'이 과연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문 대변인의 발언이 "모든 여성은 잠재적인 무고죄 가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낫다는 식의 주장이다"라고 단정했는데 이 또한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게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마이클 펜스 미국 부통령의 이름을 딴 '펜스룰'은 '의도치 않은 성적 문제의 발생을 피하기 위해 남성이 자신의 배우자 외에 다른 여성과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는 삶의 규칙을 의미한다. 펜스 부통령은 '펜스룰'을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지 않는단 신조"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이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 '펜스룰'이 왜 일종의 '시대정신'처럼 유행하게 됐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펜스룰'은 한국에 유입되면서 한국 남성들의 '자기보호 기제'로 의미가 변모했다고 볼 수 있다. '래디컬(급진)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 유행하면서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란 낙인이 원죄처럼 한국 남성들에게 씌워진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성들은 성적 논란에 조금이라도 휘말리지 않기 위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여성들과의 접촉 자체를 스스로 차단시키기 시작했고 이를 '펜스룰'로 정당화했다. 이러한 한국 남성의 입장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 대변인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펜스룰'에 대한 분석은 이미 예전부터 이뤄져 왔다. 이선옥 작가는 지난 2019년 '펜스룰'에 대해 "주된 목적은 자기 보호이고 도덕적 권리에 속한다"며 "펜스룰은 성범죄를 막는 것에 한정되지 않으며 그 주된 목적은 성범죄 혐의가 제기되어 자신의 자유, 안전, 삶, 명예, 지위 등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결국 "펜스룰은 자기 보호의 정신 실천이다"라며 "페미니즘에 입각해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도구로 비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소 한국 페미니즘을 비판해온 이선옥 작가는 '펜스룰'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이 작가는 성범죄 혐의로 인생 자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들이 사용하는 방법들 중 하나가 '펜스룰'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유튜브]
평소 한국 페미니즘을 비판해온 이선옥 작가는 '펜스룰'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이 작가는 성범죄 혐의로 인생 자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들이 사용하는 방법들 중 하나가 '펜스룰'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유튜브]

요컨대 문 대변인의 발언은 '여성을 잠재적 무고 가해자'로 보거나 여성 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보호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볼 수 있단 해석이다.

여성이 성적 논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듯이 남성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에 처할 수 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남녀칠세부동석'이 21세기 한국에서 재현되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벌어지고, 성별갈등이 더욱 심화될 거란 예측도 제기된다. 결국 이번 국힘 대변인 사이의 설전이 한국 성별갈등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단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에서 여성을 연구하는 '여성학'은 자리를 잡았으나 남성을 연구하는 '남성학'은 발달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남성성에 관한 기존의 저작들은 완성도 면에서 떨어진단 지적을 받는다.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남성을 비하했단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최태섭 작가의 저작 역시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성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때 '펜스룰' 관련한 논란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에서 여성을 연구하는 '여성학'은 자리를 잡았으나 남성을 연구하는 '남성학'은 발달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남성성에 관한 기존의 저작들은 완성도 면에서 떨어진단 지적을 받는다.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남성을 비하했단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최태섭 작가의 저작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남성을 분석했단 평가를 받았다. 남성에 대한 중립적인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때 '펜스룰' 관련한 논란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