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하면서 ‘깡통전세’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깡통전세를 비롯한 ‘전세사기’가 최근 들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1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들어 전세보증금 피해 규모가 30% 이상 늘어났다. 지난 1~5월까지 5개월간 전세보증보험 피해 금액은 272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2021억원)과 비교하면 1년 새 703억원(34.8%) 늘어난 수치이다.

전셋값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집값을 뛰어넘는 깡통전세로 인해,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JTBC 캡처]
전셋값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집값을 뛰어넘는 깡통전세로 인해,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JTBC 캡처]

이 피해 금액은 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이들의 사례만 집계한 것이다. 전체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의 비중이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 액수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실거래가 확인 어려운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작은 빌라 등에서 주로 발생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전월세 상한제 등을 다룬 임대차법 개정을 국회에 공식 제안하면서, “전세 사기와 같이 민생을 위협하는 범죄는 강력한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게 전세사기 유형을 상세히 분석하고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경찰에 전세사기 전담반을 구성하는 등 전세사기 범죄를 강력히 단속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전세 사기는 대부분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작은 빌라, 원룸 거주자들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거래가 확인이 우선’돼야 하지만, 연립이나 다세대 등은 실거래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목련마을 주공1단지 아파트 중탑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후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전세사기 범죄를 강력히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의 유형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① 깡통전세, 갭투자의 부작용?

깡통전세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매물을 말한다. 깡통전세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로 ‘갭투자’가 꼽힌다. 소액의 자금을 이용해서, 많게는 수백 채의 주택을 매입한 다음, 임대차를 놓은 다음 계속 보증금을 돌려막는 수법이다.

보증금을 반환해 줄 때마다 새로운 임차인을 받아들여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게 마련인데, 어느 순간 순환이 안 되면 전부 깡통전세로 전락해 피해를 발생시키는 유형이다.

최근 서울 중랑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사기 의혹 사건 역시 갭투자에서 비롯된 깡통전세 사기에 해당한다. 갭투자로 빌라 400채를 소유한 30대가 종합부동산세를 미납하면서 모든 주택을 압류당한 사건으로,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세입자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한국식 전세 임대차’ 구조에서 '깡통전세'가 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깡통전세'가 늘어나고 관련 피해도 잇따르는 실정이다. 가령 전세금 반환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임대인이 돈을 줄 여력이 없으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② 대리인이 임차인과 계약을 이중으로 맺은 경우

대리인이 임차인과 전·월세 계약을 이중으로 맺은 뒤, 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집주인에게 월세 계약 체결을 위임받고, 임차인과는 전세계약을 맺어 보증금을 꿀꺽하는 것이다. 영화배우 김광규씨가 당한 전세사기도 이에 해당한다. 김씨의 경우 부동산 중개업자가 월셋집을 전세로 소개한 뒤, 중간에서 전세금을 챙긴 것이다.

2019년 경기 안산시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던 자매가 이런 수법을 이용, 120여 명으로부터 65억 원을 챙긴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대리인이 아닌 월세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며, 다른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체결한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

③ 신탁사를 이용하는 방법

전세난이 심화하면서 신탁등기된 매물을 '저렴한 매물'로 가장해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은 임차인을 끌어들이는 경우를 말한다.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넘어간 집을 위탁자(임대인)가 멋대로 임대차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챙기는 것이다.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넘어간 신탁물건은 통상 특약사항으로 위탁자의 대리 임대차계약 시 수탁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위탁자가 임대차계약을 맺으려면 신탁회사의 동의를 받고 신탁관계가 기재된 신탁원부 등을 임차인에게 안내하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수탁자 동의 없는 계약을 체결하면 임차인은 '불법점유자'로 간주돼, 집을 비워야 하고 최악의 경우 보증금을 몽땅 날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신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신탁원부 발급이 번거롭고, 권리 관계 파악이 까다로운 점을 악용하는 수법이다.

신탁관계에 대한 설명의무가 있는 중개인이 해당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거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대상물을 성실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지만 일부 중개인들은 문제 소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임차인에게 거래를 종용해 사태를 키우기도 한다.

④ 집 한 채를 여러 임차인과 계약하는 수법

불가피한 사정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세입자의 보증금을 노린 ‘나쁜 임대인’도 분명 존재한다. ‘나쁜 임대인’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집 한 채를 여러 임차인과 계약하는 수법이다.

계약 전에는 타인의 임대차 사실을 알기 어려운 맹점을 노린 것이다. 임차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민등록 전입세대 열람이 있지만, 임대차 계약을 맺은 이후에 신청 가능하다. 따라서 계약 전에는 서류상으로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점을 노리는 수법이다.

중개인 없이 임대인과 직거래하는 경우, 이러한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세사기를 막으려면...‘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반환보증’ 가입이 첫 걸음

전세사기를 당한 경우, 피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해 보증금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경매까지 2년은 족히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전 예방’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송달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승소해도 돈을 돌려받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임대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알려진다.

젊은 층이 주로 전세사기의 표적이 되고 있어 사회 초년생들은 특히 유의해야 한다. 특히 고가 매물은 세입자가 꼼꼼하게 따지지만, 중저가 매물은 상대적으로 그런 경향이 덜한 데다, 젊은이들은 부동산 경험이 적다는 점에서, 전세사기의 타깃이 되는 것으로 관측된다.

전세사기를 막는 첫걸음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반환보증’에 가입하는 것이다.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데다, 문제가 있는 집이라면 가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에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꼽힌다. 은행은 담보 가치를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대출이 잘 나오지 않거나 이율이 너무 높은 경우에는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계약은 중개인 입회하에 임대인과 직접 하고, 등기상 소유주와 계약자 신분증을 비교해 진짜 집주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잔금도 집주인 계좌로 보내는 게 안전하다. 만약 대리인과 계약할 경우에는 위임이 월세인지 전세인지, 위임장이 위조는 아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공인중개사에게 선순위 권리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상가에 밀집한 공인중개업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공인중개사에게 선순위 권리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상가에 밀집한 공인중개업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인중개사에게 선순위 확인 권한 부여하자는 주장도 제기돼

물건의 시세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깡통전세 유형은 시세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깡통전세 여부를 알기 어려운 신축 빌라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만약 주변 매물보다 너무 싼 가격에 나온 집은 피해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매물'이거나 ‘신탁사를 이용한 사기’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중개인에 의한 피해도 가끔 발생하는 만큼, '국가공간정보포털'에서 등록 중개인 여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일부 중개업자 중에는 추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 단계에서 자신의 중개 사실을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중개인과 계약해야 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22일 “원룸이나 상가주택 등은 선순위 임차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후순위 계약 체결의 경우 경매시 전세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사태가 빈번하다”면서 “공인중개사에게 이 같은 선순위 권리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 전세사기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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