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아시아 순방 도중 대만 방문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계획이 확정되진 않았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아시아 순방 도중 대만 방문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계획이 확정되진 않았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8월 대만을 방문할지 모른단 소식이 나오자 중국이 반발하는 모양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성사될 경우, 펠로시 의장은 워싱턴과 베이징이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시기에 대만을 방문한 미국 인사 중 최고위급이 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밝혔다.

중국은 강력 항의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찾을 경우 미국과 중국간의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오 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과 미국 관계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분리주의 세력에게 심각하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오 대변인은 또 "만일 미국측이 계속해서 이러한 행동을 이어간다면 중국은 주권과 영토 통합을 지키기 위해 강력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미국은 책임있는 자세를 견지하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측 관계자는 보안 문제가 있다며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하길 거부했다. 다만 의장의 계획을 잘 알고 있는 익명의 인사에 따르면 대만 방문은 더 넓은 범위의 아시아 순방의 일부 일정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백악관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은 펠로시 의장의 계획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을 통해 밝혔다. 대만 외무부는 펠로시 의장 방문 관련해 어떤 정보도 미국으로부터 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대만 역시 이에 관해 미국과 정식으로 협의한 바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베이징은 펠로시 의장을 매우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추모하기 위해 1991년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주의 찬성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펼친 전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치인들의 대만 방문 및 미국-대만 교류가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대만의 공식적인 독립을 지원하는 쪽으로 선회한걸 의미하는 게 아니냐며 베이징이 우려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평가했다.

베이징은 점점 더 늘어나는 미국-대만간 상호 교류를 목도하고 있다. 베이징은 이를 도발로 인식하고 있고 워싱턴의 정책이 선회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중이다. 구체적인 예로는 미국과 대만간 FTA추진, 대만의 세계보건기구 참여 논의가 있으며, 미국 정치인들이 대만 방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침공한다면 미국이 대만을 돕겠다고 세 번 언급한 바 있다.

펠로시 의장의 외교적 행보로 미중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게 된다면 미국과 중국이 양국간 긴장 관계를 진정시키려고 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달 양측이 외교 라인을 통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양 정상간의 회동이 무산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중국 대만 침공 우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실화'

베이징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라 주장하고 있으며 워싱턴이 대만을 지원하고 있단 사실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자치를 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총통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법에 의거 대만의 방어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

대만의 독립된 지위는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중국 내전의 유산이며, '양안 통일'은 시진핑 주석에겐 끝나지 않은 과업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서 3번째 연임을 노리고 있는 시 주석은 지난 10년간 군사력을 대폭 늘린 바 전문가들은 이는 궁극적으로 대만 섬을 침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이 대만을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영원히 기다리진 않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는 올해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정당한 영토를 다시 가져가겠다며 우크라이나를 공격함으로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베이징은 점점 더 모스크바와 밀접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비교하길 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주권 국가이지만 대만은 아니란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시 주석은 3월 화상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이 대만에 있는 친독립 세력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고 중국 정부는 밝힌 바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에겐 남다른 의미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이미 계획된 적이 있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4월에 이미 대만을 방문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으면서 취소됐다. 하원 대변인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7년 뉴트 깅리치 전 하원 의장 이후 첫 방문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1997년 당시의 중국은 훨씬 약했고, 미중관계는 개선되는 중이었다.

그동안 미국 의원들이 반복해서 대만을 방문하긴 했었으나, 하원 의장의 방문은 중국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하원 의장은 만약의 사태로 미국 대통령직이 공위가 될 경우 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승계 권한을 가지고 있을 만큼 미국에서 높고 중요한 직위다. 그래서 중국은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을 미국의 도발, 미국 정치권 전체의 의지로 해석한다. 이는 시 주석이 더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하고 미국과 긴장 관계를 조성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더욱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베이징은 미국이 중국의 경제 성장을 두려워하고, '신냉전'의 일환으로 동맹국들로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수 달간 거의 매일 중국 전투기들이 대만 영공을 침범했다. 전문가들은 베이징이 대만에 분노하거나 대만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할 때마다 이러한 군사적 도발도 따라서 늘어난다고 평가하고 있다. 

펠로시 하원 의장이 8월 대만을 정말 방문할 것인지,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 수준은 어떨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방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재 등의 수단을 꺼내들자, 중러관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중러가 포위된 외교 정세를 돌파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단 시각도 나온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서방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재 등의 수단을 꺼내들자, 중러관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중러가 포위된 외교 정세를 돌파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단 시각도 나온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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