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란, 중앙아시아, 인도는 그동안 한국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먼 관심 밖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각을 넓혀 최소한 남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러시아와 유럽간의 극한 대립이 예기치 않게 물류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EU, NATO가 러시아와 제재전쟁(Sanction War)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사실상 유럽과의 디커플링을 선언한 상태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와 기타물품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하고 군사적 대치를 이어가면서 기존의 물류항로는 상당히 불안해졌다. 러시아는 이에 따라 발틱해와 북대서양, 지블롤터 해협, 수에즈 운하를 잇는 기존의 물류라인을 대체하는 INSTC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16일 러시아, 이란, 인도가 출범시킨 INSTC(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는 지금까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거대프로젝트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 카스피해 연안의 항구도시 아스트라한를 거쳐 해상으로 카스피해 또는 육상으로 아제르바이잔 내륙을 통과해 이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란의 항구도시 반다르 압바스에서 인도 뭄바이를 잇는다. 장장 7,200km길이의 육상, 해상 물류운송 프로젝트다. INSTC회원국은 러시아, 이란, 인도외에도 터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오만, 우크라이나, 시리아가 가입돼 있다.

INSCT는 창립이후 흐지부지 된 면이 있지만 2015년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간 자유무역협정(FTA)가 체결되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다 세계경제침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카라바흐 분쟁, 코비드-19등으로 관심이 다시 시들었다가 우크라이나 분쟁이 심화되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제재가 가중되면서 급부상했다.

미국과 서구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이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원유수입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있는 인도가 적극 가세하면서 INSCT는 본격적으로 비상하고 있다. 7월 15일 이란과 인도 매체들은 인도로 향하는 러시아 화물이 INSTC(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를 통해 이란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39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열차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관통하는 3,800km의 여정을 거쳐 이란에 도착했는데 다시 1,600km에 달하는 이란 내륙을 거쳐 반다르 압바스항구로 운반된다. 그리고 다시 선박편으로 인도 뭄바이항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란당국은 INSTC의 본격개통을 축하하면서 러시아발 열차를 환영하는 행사도 벌였다. 여기에는 제1부통령 모하메드 모크버, 교통, 석유, 산업관련 주무장관들도 대거 참석했다.

붉은 색의 라인이 러시아, 이란, 인도를 육상, 해상으로 잇는 INSTC라인이다. 발틱해협, 도버해협, 지브롤터 해햅, 지중해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거리, 시간적으로 큰 장점이 있다.
붉은 색의 라인이 러시아, 이란, 인도를 육상, 해상으로 잇는 INSTC라인이다. 발틱해협, 도버해협, 지브롤터 해햅, 지중해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거리, 시간적으로 큰 장점이 있다.

서구의 견제를 받는 기존 해로를 완전히 우회하는 INSTC는 시간과 비용면에서 효율적인 것을 넘어서 혁명적이다. 물류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러시아가 이란, 인도와 손을 잡고 서구를 압도하고 있다. 인도화물운송업차 협회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INSTC는 수에즈 운하를 관통하는 기존 경로보다 거리가 40%더 짧아 비용면에서 30%나 더 저렴하다. 시간적으로도 기존항로가 40-45일 걸렸다면 INSTC는 최대 25일에 불과하다.

이란과 러시아는 육로뿐아니라 카스피해를 통해서도 물류허브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란이슬람공화국 해운회사(IRISL)는 러시아-인도간 화물운송을 위해 300개의 컨테이너를 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석탄같은 원자재를 INSTC를 통해 인도로 수출하고 인도는 제조업 상품을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인도 기업들은 미국, 유럽, 일본기업이 제재를 이유로 빠져나간 러시아 시장을 파고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도의 대러시아 수출액은 2021년부터 2022년사이 32억 4천만 달러, 러시아의 대인도 수출액은 98억 6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에 52억 5천만 달러는 원유, 가공유, 석탄같은 에너지였다. 특히 2022년 4월에서 5월사이 러시아로부터의 석탄 수입은 5억 1600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대비 3배나 급증했다..러시아로부터의 비료 수입도 육로를 통해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수입액은 2022-5월 3억 4450만 달러로 전년 동기의 3800만 달러에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INSTC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란 인도를 남북으로 잇는 동시에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도 뻗어나오는 노선과도 합류한다. 러시아, 이란은 물론이고 중앙아시아까지 포괄하는 물류의 골든크로스(Golden Cross)를 이루고 있다. INSTC는 인도의 거대한 지정학적 전략도 돋보인다. 인도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재를 받아온 이란에도 원유를 의존하고 있다. 인도는 INSTC를 중국의 일대일로(BRI)를 견제하는 대안으로 적극 밀고 있다. 인도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파키스탄이 점령한 카슈미르를 통해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중국의 맹우인 파키스탄을 우회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대체노선으로 INSTC를 중시하고 있다.

역내 회원국들은 상호간의 우의를 다지는 모터 랠리 스포츠 경기도 개최하고 있다.
역내 회원국들은 상호간의 우의를 다지는 모터 랠리 스포츠 경기도 개최하고 있다.

중국도 중앙아시아를 향한 인도의 야심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국방장관 웨이펑허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오만을 방문한 것도 중국의 인도견제 심리가 반영된 움직임이라고 The Diplomat은 분석하기도 했다. 웨이펑허가 방문한 국가들이 베이징의 국방, 안보파트너는 아니지만 주요파트너로 자리매김해 뉴델리의 지역적 영향력을 상쇄시켜줬으면 하는 희망을 중국이 품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이란, 인도를 잇는 INSTC는 장차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다극화체제로 접어들면서 물류의 지정학적 혁명이 일고 있다. INSTC가 인도에서 극동으로 이어질 경우 그 중간 물류허브로는 한국의 부산이 무엇으로 보나 가장 안성맞춤이다. 러시아, 이란, 중앙아시아, 인도는 그동안 한국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먼 관심 밖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각을 넓혀 최소한 남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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