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문재인 정권 종료 석달을 남기고 이루어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가 명백한 특혜였다는 것을 최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인정하는 발언을 해 귀추가 주목된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 13일 한 언론사 주최로 열린 제13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과 대담 형식으로 뉴노멀 시대 항공운송산업의 대전환을 주제로 대한항공의 코로나 위기 대응과 비전 등을 소개했다.

조 회장이 국내 미디어 행사에 연사로 나선 것은 부친인 고() 조양호 회장을 이어 한진그룹 총수직에 오른 20194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조 회장은 2020년 산업은행으로부터 아시아나 인수 제안을 받았을 때의 뒷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은행에서 만나자고 하기에 대출 상환을 재촉하려나생각했다면서 인수 제안을 받고선 깜짝 놀라 10초 동안 답변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가 왔고 이걸 놓치면 다시는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다아시아나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가 얼마나 파격적인 조치였는지 조 회장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과 관련해 해외 경쟁 당국 심사를 받는 중인데 13국 중 7국에서 승인을 받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에서는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와관련, 조 회장은 올해 안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인수·합병 작업이 완료되면 동북아 최대 항공사로 부상해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두 항공사는 늘 동시간대 출발을 해왔는데 합병 이후에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항공기를 출발시켜 고객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대한항공을 의식하지 않게 된 아시아나 항공의 미주노선 항공권 가격이 최근 들어 사상 처음으로 대한항공 보다 비싸진 점을 보면 합병의 부작용 또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와함께 유나이티드 항공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이 일제히 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점도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한진그룹, 대한항공에 대한 아시아나 인수 특혜시비와 함께 최근 부산지역에서큰 파문이 일고있는 조원태 회장의 저비용항공사(LCC) 허브는 인천발언 또한 윤석열 정권 초기 대한항공과 조원태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물론 윤석열 정부까지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며 인천과 더불어 동북아 항공허브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조 회장의 발언으로 부산지역의 민심이 크게 나빠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하락에 일조했다.

조 회장은 지난달 22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 참석을 위해 카타르 도하를 방문, 항공 전문지 <플라이트 글로벌>과 인터뷰를 하며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부산·에어서울과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가 합쳐지는 통합 저비용항공사는) 인천공항이 허브(공항)가 될 것이다. 부산도 중요한 시장이지만, 보조 허브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이어 “(통합 저비용항공사 항공기는) 진에어라는 브랜드로 운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저비용항공 자회사를 부산에 기반을 둔 에어부산 중심으로 통합하고, 통합 저비용항공사 본사 위치와 운항 거점도 부산 일대에 둬야 한다고 주장해온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통합 저비용항공사 거점을 가덕도신공항 등 부산권역에 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상임의장은 에어부산은 귀중한 부산의 자원이라며 “2030년 부산월드엑스포 유치와 가덕도신공항 개항 이후 신공항에서 저비용 중거리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 항공사가 존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 등도 부산 경제 성장을 위해 통합 저비용항공사를 부산 일대 공항을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본사를 부산에 두고 지역 청년들의 일자리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부산은 최근들어 영남지역 중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조원태 회장의 발언 이후 부산지역 언론들이 연일 이 문제를 다루면서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된다.

대한항공은 1969년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1920~2002)이 국영기업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출범한 이래 50년간 5대양 6대주 하늘을 날며 대한민국을 대표해 왔다.

조중훈은 1945년 인천시 해안동에서 트럭 한 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1957년 미군과 7만 달러짜리 수송계약을 체결한 이래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1960년에는 한해 계약고만 220만 달러,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618월에는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매입해 서울~인천 구간에서 한국 최초의 좌석버스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운송서비스 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 요청으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창업 2세인 조양호 회장 때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항공사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한진그룹 3세 조원태 회장은 20194, 아버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자기 타계하자 상을 끝내자 마자 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룹경영에 나섰다.

당시 조원태 회장에게 닥친 시급한 과제는 경영권 문제였다. 부친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에도 당시 국민연금의 경영권 박탈에 따른 스트레스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조원태 회장은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델타항공을 끌어들였다. 델타항공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매입을 통해 조 회장을 지원했다.

이렇게 급한 불은 껐지만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그룹 총수, 즉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에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누나와 동생인 조현아 조현민씨가 반발하는 등 파열음을 냈다. 조 회장측은 이후 어머니와 동생 조현민씨는 우군(友軍)으로 뜰어들였지만 누나 조현아씨는 적지않은 지분을 갖고 KCGI 편에 서서 대항하는 상황이 2년여 지속됐다.

문재인 정권의 금융 황태자로 불린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이 표면에 나서 처리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는 조원태 회장 스스로 고백했듯이 파격적 조치이자 특혜였다.

호남 출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오랫동안 대한항공이 독점해온 대통령 해외출장 전세기가 양사 교대로 바뀌는 등 아시아나항공의 도전은 절정에 달했다. 이 무렵, 두 회사는 항공관련 주무 부처인 과천의 건설교통부 청사에 하루종일 직원을 상주시켜 상대방의 움직임을 감시할 정도였다.

한쪽에서 여객기 추락사고를 내면 반대편에서 곧바로 사고를 낸 항공사의 노선취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아시아나의 미주 항공권 가격이 지난 30여년간 단 한번도 대한항공 보다 비싼 적이 없었다는 점 또한 경쟁의 치열함을 증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과 정부는 조원태 회장에게 무려 10%라는 지분을 통해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눈에 가시같던 경쟁사를 없애주었다. 그 특혜의 강도(强度)를 조원태 회장은 머리가 띵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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