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드라마가 좋으면 작가의 전작前作을 찾아보게 된다. ‘나의 해방일지’를 재미있게 봤고 예전에는 뭘 썼지 궁금해졌다. 해서 보게 된 게 ‘나의 아저씨’다. 보신 분도 있겠지만 미시청자도 계실 것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 몇 장 먼저 보여드린다.

‘나의 아저씨’ 등장인물, 위에서부터 이지은, 이선균, 박해준

주인공인 이선균에게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공부 라이벌이었던 박해준이 있다. 그는 세사에 흥미를 잃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머리를 밀어버린 인물이다. 극중 이름이 ‘상원’인데 별로 특이한 이름도 아니고 해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회인가에서 그의 성이 나왔다. 윤씨였다. 그러니까 윤상원이다. 갑자기 기분이 싸~했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이름을 안다. 광주인민무장투쟁의 영웅이다. 이어 드라마 속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윤상원은 우리의 추억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마치 합창하는 것처럼 여럿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장면을 보고 아, 이런 식으로 띄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요기까지 읽으시고 남선생, 오늘 ‘오바’하시네 하실지 모르겠다. 아니다. 같은 회에서 이선균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 같은 거 통 안 보던 사람이다. 그때 극장에서 상영하던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고 스크린에 비치는 장면이 5.18이었다. 순간 약간 섬뜩. 현대사와 영화를 다 알아야 느낄 수 있는 재미(?)지만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윤상원은 1950년 생으로 5.18 지도부 대변인이었고 무장투쟁 마지막 날인 27일 전남 도청에서 사망했다. 2년 후인 1982년 윤상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황석영이 개사한 백기완의 시에 전남대 학생 김종률이 음을 붙인 것으로 윤상원과 78년 사망한 야학 활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다. 그러니까 이 노래를 한 번이라도 불러 본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이들 영혼결혼식의 하객 노릇을 한 셈이다. 윤상원을 집요하게 띄운 인물이 한예종 교장이었던 시인 황지우다. 그의 제목뿐인 시, ‘묵념 5분 27초는 윤상원에게 바치는 헌가다(윤상원이 사망한 5월 27일). 2011년에는 광주 광산구에서 열린 ‘지금, 윤상원 with 황지우’라는 타이틀의 토크콘서트에서는 ‘막혀가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윤상원 정신으로 틔워내는 첫 불꽃’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그날 토크콘서트의 테마는 “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고 한 윤상원 정신이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의롭지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좌익의 전형적인 수사다(이 정의는 계보는 김구에서 시작하여 조봉암, 인혁당, 전태일, 박종철, 김근태, 이한열로 이어진다). 황지우는 이 계보에 윤상원을 집어넣었고 그가 아니었더라면 윤상원은 항쟁 지도부 중 별 의미 없는 한 사람으로 조용히 잊혔을 것이다.

윤상원은 우리의 추억이다.

그동안 내내 궁금했다. 왜 80년 광주는 영웅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광주를 팔아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왜 주인공을 캐스팅하지 않고 40년의 세월을 보낸 것일까. 물론 광주가 지금 레벨의 신성불가침 광주가 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지만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때가 된 것일까. 그렇다면 누구? 후보는 여럿이지만 가장 상징적이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무조건 윤상원이다. 외모 자본도 있고 스토리도 넘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광주를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꾸고 그 주인공으로 윤상원을 낙점했다고 예측한다면 내가 너무 나간 것일까. 그러나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외국 기자를 도드라지게 부각시킨 것을 보면 차례가 온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쩌면 내년 5.18 시즌에는 방송이든 영화든 어딘가에서 윤상원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엔딩에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5.18 서사는 한 단계 올라서게 될 것이다.

역사, 문화 전쟁은 타깃이 명료해야 한다.

좌익은 대한민국 역사를 완전히 다르게 쓰고 끊임없이 영웅을 만들어 낸다. 반면 우익은 있는 영웅도 지키지 못하고 쓸려가게 방치한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그 신세다. 5.18을 다룬 가장 최근작인 ‘아들의 이름으로’라는 영화를 보시라. 박정희와 박근혜와 태극기 부대를 한데 묶어 골로 보낸다. 대한민국이 누구 때문에 잘 살게 되었느냐는 태극기 어르신의 질문에 20대 청춘은 이렇게 대꾸한다. “김재규요, 탕!” 대략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은 망가져 가는 중이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경희대 황승연 선생은 흥미로운 진단을 했다. 5년 후를 낙관할 수 없으며 구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동의한다. 역사, 문화 전쟁은 타깃이 명확해야 한다. 40대를 상대로 전력을 쏟아 부을 필요 전혀 없다. 5년 후 투표권을 갖게 되는 현재의 중 3부터 고3까지를 핵심 타깃으로 해야 한다. 타깃이 명확해야 전략이 나오고 어떤 미디어를 고를 것인지도 확정된다(그러니까 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 정부의 문화 정책을 보면 역사 전쟁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차피 자유시민이 나서야 할 문제다. 힘이 있는 사람은 힘, 머리가 있는 사람은 머리,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우리는 5년을 준비해야 한다. 셋 중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자유와 민주를 떠들면 당신은 나쁜 사람.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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