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기자

안보 이슈에 이어 경제 이슈마저 뺏겼다. 현 정권의 최대 약점인 안보 이슈는 평화통일쇼로 지지율 대박을 쳤다. 누가봐도 비집고 들어갈 틈은 경제 문제였다. 애초부터 경제 이슈만 건드리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드루킹 사건? 대남(對南)적화 우려? 다좋다. 당연히 큰 이슈다. 일선에서 싸우시는 분들 존경해 마지 않는다. 정치 이슈나 안보 이슈로 깨져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경제 이슈로 붙었을 때 깨지는건 참을 수가 없다.

이념 싸움에서, 정치싸움에서 이기면 표심이 돌아설거 같나? 절대 아니다. 이념의 대립이 최전선에서 이뤄지는 세력 싸움이라면 경제 문제는 피부로 와닿는 현실 문제이자 서민들의 '삶'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이 경제로 파탄이 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남미의 정권교체도 경제가 고꾸라지고 나서야 이뤄졌다. 미국은 언론의 극심한 공격 속에서도 경제 이슈 하나로 트럼프가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문제는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념이고 뭐고 표심으로 직결된다.

지난 8일 경남지사 자리를 두고 자유한국당 김태호 예비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예비후보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만났다. 김태호 후보가 몇 가지 지표를 언급하며 소득주도성장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김경수 후보는 "현재 경제가 이렇게 된 것은 전(前) 정부의 대기업 위주 정책 때문이고 지금 힘든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서민들을 위한 방향성은 옳다"라며 맞받아쳤다.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비틀어서 받아 치는 흔한 레토릭이었다. 그런데 이에 반박이랍시고 김태호 후보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방향성이 옳다는 것에 대해선 동의한다", "앞으로 지켜봐야한다는 것에 대해선 동의한다"였다. 그는 이후 제대로된 반박도 하지 못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표심으로 직결되는 경제 문제에서 그냥 그렇게 넘어간 것이다. 아니 패배한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사안에 그저 동의하면서 소통되는 척, 합리적인 척 연기하려고 토론회에 나왔나?

김태호 후보의 무상급식 공약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백번 천번 양보해서 그러려니 했다. 근데 이건 아니다. 정치인을 정치인으로 이해하고 싶어도 이 정도면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계 숫자는 열심히 외워갔을지언정 경제에 대한 이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전혀되지 않은 자가 자칭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우는 당의 핵심 지역의 후보로 나선 것이다. 

일단 전 정부의 잘못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의 폐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 정부가 내걸은 경제민주화정책은 당시 그쪽과도 정책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김태호 후보는 지금 현장에서 들끓는 서민들의 목소리를 문제를 전부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그 순간 바로 지적했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라고 뽑았지 누굴 탓하라고 표를 던져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매우 실험적인 정책으로 당시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었다. 지금 그 우려가 현실화됐다. 서민들의 삶이 장난인가? 국민들의 삶을 실험실의 생쥐로 취급하는 짓거릴 언제까지 지속할텐가? 자영업자, 중소·중견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라고? 최저임금 인상하면서 자영업자들 죄다 문닫게 만들고 1년간 정부가 돈 퍼준다는 홍보하고 다니다가 자영업자들에게 호되게 혼난 장하성과 홍장표로 모잘라 당신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가며 강하게 공격했어도 전혀 비합리적이어 보이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비판도 전혀 비합리적이어 보이지 않다. 언제까지 듣기 좋은 몇마디 던지면서 서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거 같은가? 언제까지 이것저것 탓하면서 서민들을 우롱할 셈인가? 전 정부 탓하고 임대료 탓하더니 이제는 국민들도 동참해야 할 때라고? 누가 자기 사업 망하게 생겼는데 알바들 돈을 더 주고 고용을 늘리려고 하나? 네 돈 내서 네가 먼저 동참해보라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렇게 이상적인 세계에 갇혀 사니까 실험적이고 망하는 정책을 검증없이 함부로 쓰는거다. 청년실업률이 어디까지 치솟아야 정신을 차릴건가? 언제까지 기업들을 때려야 분이 풀릴건가? 결과로 아닌 것이 증명이 됐으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나? 이상세계에 살자고 우리가 정부 관료들을 뽑은게 아니다. 당신들의 이상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가? 베네수엘라처럼 대기업 때려서 망하게하고, 서민들이 길가에 나와 앉을 때까지 국민들을 실험실의 쥐로 취급할 셈인가?

싸움에 도취돼있다보면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고 빠른 해결책을 원하기 마련이다. 세력 싸움의 최전선에서 정치 싸움의 승리는 달콤하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책은 당장 눈 앞의 승리를 고대하는 미봉책(彌縫策)아닌 고육책(苦肉策)에서 나온다. 전쟁터의 일선 싸움도 중요하지만 결국 고육책은 경제 문제고 끊임없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자기발전이다. 끊임없이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공부하고 역설해야 한다. '대기업·재벌' 등의 레토릭에 무릎꿇지 말라. 1인당 3만불 소득 시대에서 성장한 젊은층들의 지력은 생각보다 뛰어나다. 정치권에서 자칭 '자유주의' 간판을 내걸었다가 정작 나오는 말들을 듣고 실망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많다. 경제 이슈에서 제대로 된 논리를 갖추고 이겨야 표가 쏠리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념 싸움에서 졌어도 경제에서 지면 정말 무너진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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