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일성 사망 28주기] 일본 아베신조 피격날 되돌아본 남북관계 최대 의문점
[北 김일성 사망 28주기] 일본 아베신조 피격날 되돌아본 남북관계 최대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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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한 남성에게 총격을 당해 쓰러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현재 심폐기능 정지 상태다. 경찰은 40대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그의 생전 총리관저에서 기자 회견에 나선 모습.2022.07.09(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한 남성에게 총격을 당해 쓰러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현재 심폐기능 정지 상태다. 경찰은 40대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그의 생전 총리관저에서 기자 회견에 나선 모습.2022.07.09(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유세 중 괴한의 총격을 받아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Abe Shinzō) 前 일본 총리에 대해 그의 유족 아키에 여사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같은 날 대통령실이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30분경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대비 유세 중 약 7m가량 이격된 위치에 나타난 괴한이 쏜 총을 맞아 쓰러졌다. 아베 전 총리는 피격 직후 병원에 이송됐으나 그날 저녁5시3분경 사망 소식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아베 전 총리가 총격을 받아 사망한 날은 北 김일성이 사망한지 28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北 김일성은 지난 1994년 7월8일 사망했는데, 그의 손자인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추모차 방문한 것.

28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서 같은 날 사망한 두 지도자는 서로 각기 다른 체제의 수장으로 아베 전 총리는 총격에 의해, 김일성은 급성 심정지에 의해 사망했다. 아베 전 총리는 공개석상인 유권자들 앞에서 총격을 받았지만, 北 김일성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현대사 최악의 전체주의 정권의 수괴였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미스테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사건 당일까지 화를 내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시간적 공백이 관건.

이에 따라 <펜앤드마이크>는 28년 전 北 김일성의 모습을 재구성·재조명해보고자 한다.

김일성이 죽던 날,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그를 화나게 해 심장발작을 일으켰는데, 치료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1994년 7월8일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정치적 파장은, 1994년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을 무산시켰다. 그가 죽기전이던 1994년 6월17일, 김일성은 카터 前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우리 정부 수반과의 만남을 선언했었다.

1994년 7월 초 북한 김일성 사망 호외를 냈던 조선일보의 판형 전면 모습.(사진=조선일보, 편집=조주형 기자)
1994년 7월 초 북한 김일성 사망 호외를 냈던 조선일보의 판형 전면 모습.(사진=조선일보, 편집=조주형 기자)

당시 그의 아들 김정일은 이미 자신의 아버지의 두 눈을 가리는 데에 성공한 상태였다. 김일성의 충복세력이나 다름없는 자칭 '항일빨치산'의 2세들은 김정일과 함께 컸는데, 그 시기 이들은 실권자가 된 김정일에 충성 맹세를 한 상태였다. 북핵개발 실체화가 전격적으로 나오고 있던 만큼,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한 화해 분위기 조성은 그에게 죽을 날이 머지 않은 아버지의 위신을 세워주는 일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었다.

자칭 항일빨치산 2세 세력(김기남, 김국태, 박남기 등)을 규합해 북한 정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종종 측근들에게 '사회주의가 우선이냐, 통일이 우선이냐'를 질문했는데 이자리에서 '통일'이라고 말한 이들에게 술잔을 던졌다. 술잔을 맞은 이들을 뒤로하고 '사회주의가 먼저다'라는 말은 연형묵(북한 정무원 총리)이 해왔다.

그의 아버지가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남북정상회담 등을 운운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먼저'라고 말했다는 점을 비추어보면 그는 아버지와는 추진 노선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막 50살을 넘긴 최고실권자의 의중과 달리 80살의 늙은 아버지가 대외노선을 휘젓고 다니는 상황에서 "통일 지껄이는 놈들은 모조리 노망나서 정신을 못차리는 늙다리들"이라고 표현한다.

김일성은 죽기 직전인 그해 7월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 별장에서 평양 인근 묘향산 별장 특각으로 이동한다.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가네마루 신과 회담을 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죽기 전전날인던 7월6일까지도 20~30여명의 당 간부들을 대동하고서 경제관련 협의회를 직접 주재했다. 그날도 20~30여명의 당 간부들과 함께 함경남도 함주군의 한 농장을 불시에 찾아갔는데, 이 자리에서 김일성은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김일성이 죽고 난 직후 조선노동당 기관방송인 평양방송은 "현지지도에 나섰는데 주민들이 식량이 없다고 하면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는데 그(김일성)가 '그런 말이 뭐가 나쁘냐'라고 칭찬했다"라고 알린다. 북한 스스로 악화된 경제사정을 이야기한 첫번째 사례다. 즉,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의 실제 사례를 김일성이 불시 점검으로 알게 됐던 것.

열이 잔뜩 받은 김일성은 그 다음날인 7월7일 회의 자리에서 주석부 예비자금을 쓰라고 지시한다. 그마저도 뜻대로 안된다. 주석부 경제담당 간부가 '담당 부서 사정도 여의치 않다'라는 취지의 실토를 하게 되는데, 그때 김복신 북한 여성부총리도 함께 거든다. 이때 김복신 북한 여성부총리는 '평강도의 북한 제5군단의 구두창 미지급 사례'를 언급하는데 이것이 불난 데에 기름을 붓게 됐다.

사진은 서해갑문을 방문한 김일성·김정일이 함께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서해갑문을 방문한 김일성·김정일이 함께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안그래도 화가 나 있던 김일성은 이 말을 듣고 다시금 화를 낸다. 그는 "무슨 말이냐"라며 격노했고, 이 회의가 있은 직후 김정일에게 직접 "최고사령관 때려치라"는 호통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김일성은 죽기 전날인 7월7일 묘향산에서 상무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모인 간부들은 이미 최고 실권자인 김정일에 의해 정치적 위협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북한에서의 정치적 위협은 곧 자신과 그 일족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정보당국(국가정보원 등 소식통)을 통해 알려진 각종 이야기를 종합하면, 김일성은 사망 전날에도 농장을 불시 점검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와 증언 등에 의하면 김일성은 회의를 소집했는데 이 자리에 그의 아들은 아버지 주재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비가오던 그날 저녁9시 경 김일성은 김정일을 불렀고, 곧장 욕실로 이동했다. 김정일이 움직인 시점은 '욕실에서 쓰러졌다'라는 내용의 보고를 받은 직후로 알려졌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상황이었지만 헬리콥터를 호출했고, 호위사령부 당번 병들이 그의 탑승을 말렸지만 김정일은 만류하는 그들에게 주먹으로 대답했다.

미군 정보통은 7일 야간 비행을 확인했다. 북한이 발표한 '김일성 동지의 질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에는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쇼크로 기재돼 있었다. 다만, 김일성의 비서실장이던 전하철의 기록상에는 '8일 새벽 2시에 고동을 멈췄다'라는 내용 등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언과 자료 사이 일치 되지 않는 몇시간 동안의 공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1994년 7월8일 오후10시 경 주요 재외공관 등에 김일성의 죽음을 알렸다. 하지만 중국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을 방문하고 있던 총리 리펑은 이미 8일 저녁 이후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숙소(호텔)로 가 있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김일성의 죽음을 알린 시점은 7월9일 오후였다.바로 28년 전 오늘이었고,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을 하던 김석우 現 <펜앤드마이크> 객원 칼럼니스트가 이 소식을 적은 메모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했다.

국정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은 평양방송의 특별 방송 내용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당시 북핵 개발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에 북한 핵위협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던 시점으로, 김일성의 남북회담 소식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전망됐다. 오늘날 정보수집 분야의 기술정보 수집 기구의 정밀함이 높지 않았기에 이같은 첩보를 분석가공생산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정보 당국의 현실도 한몫했다.

결국 김일성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북한의 새로운 실권자의 권력 장악이 현실화됐음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 전날인 8일, 일본의 아베 총리가 유권자들 앞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것과는 달리 지금 오늘로부터 정확히 28년 전 북한에서는 이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사망 28주기인 8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민족 최대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조선노동당 각급 당위원회 조직부 당생활지도 부문일군(간부) 특별강습회 참가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시였다"고 보도했다.2022.7.8(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사망 28주기인 8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민족 최대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조선노동당 각급 당위원회 조직부 당생활지도 부문일군(간부) 특별강습회 참가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시였다"고 보도했다.2022.7.8(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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