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문에 피해봤다고 주장...피해액 산정 근거 밝히지 않아
증권가에서 나온 다양한 예상액 중 최대치 요구...법무부 대응책 마련 중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요구한 손해배상금액이 최소 6억 7000만달러(약 718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법무부가 공개한 엘리엇의 영문 중재의향서를 보면 엘리엇은 "피해액이 현 시점에서 미화 6억7천만 달러(한화 약 7천182억원) 이상 될 것으로 추산된다"며 "그 외에 이자와 비용, 중재재판소가 적절히 여기는 수준에서 다른 구호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4쪽 분량의 중재의향서에서 피해액수를 산정한 구체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엘리엇이 주장한 피해액은 이자 등 제반 비용이 더해지면 지난달 13일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증권가와 국제중재업계에서 나온 다양한 추정 피해액 가운데 최대치다. 증권가에선 삼성물산 지분의 평가액 등을 근거로 대략 2천억∼8천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었다.

엘리엇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비리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연금이 절차를 뒤엎고 합병 찬성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려 엘리엇에 손실을 끼쳤다"며 "이들 정부 관료 및 이들의 지시를 받은 다른 이들의 행위를 비롯해 국민연금이 한 조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규정한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합병 결정은 한국 정부의 부패에 외국 투자자에 대한 편견이 겹쳐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합병이 이뤄지도록 만든 행위들은 한 한국인 투자자 집단에 특혜를 주고 엘리엇과 같이 환영받지 못하는 외국인 투자자에겐 피해를 주고자 차별적·독단적이고 부당하며 불투명한 의도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부패 환경과 엘리엇에 대한 편견이 아니었다면 합병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2015년 7월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의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비율이 주주 입장에서 불공정하다며 문제제기를 해왔다.

오늘 공개된 중재의향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상(FTA)상 민간 투자자가 상대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 등으로 손해를 봤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공식 제소하기 전 90일의 기간 동안 협상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사전절차다. 법무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상(FTA) 규정에 의해 엘리엇의 원문 중재의향서를 이날 언론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중재의향서를 접수하고 90일이 지나면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한편 법무부는 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부·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법무부는 아직 정부의 공식입장이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엘리엇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엘리엇의 주장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협의를 해봐야 한다. 상대방 입장을 확인해 봐야 한다”면서도 “(중재의향서에) 손해배상액 산정근거도 안 나와 있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엘리엇이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지 약 1달이 됐지만 법무부 등 관계부처에서 아직까지 엘리엇 측과 공식 면담을 갖고 협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전 협상기간이 두달이 남은 만큼 정부는 앞으로 엘리엇 측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에선 90일간의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못찾을 경우 엘리엇이 제소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현재 소송절차 준비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검찰은 엘리엇의 공시의무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문성인)는 자본시장법의 이른바 ‘5%룰’(지분 5% 이상 보유 주주는 5일 이내에 보유현황 공시)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최근 엘리엇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을 통보했다. 엘리엇이 2015년 삼성물산 지분 매집 과정에서 파생금융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를 이용해 몰래 지분을 늘린 것 이 규정을 어겼는지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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