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객원칼럼니스트

최근 민생의 고통지수는 위기수준으로 급등하고 있다. 고통지수(misery index)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으로 계산된다. 고통지수는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한 아서 오쿤(Arthur Okun) 예일대 경제학교수가 주장한 지수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까지 급등하고 있는데 실업률이 2.8%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그나마 고통지수가 8.8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실업률 2.7~ 2.8%는 문재인정부 이래로 지속되어 온 재정주도 단기일자리 양산으로 실제 경제상황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를 보정하기 위해 확장실업률을 발표하고 있다. 5월 확장실업률은 10.7%다. 이를 5월 물가상승률 5.4%와 합하면 고통지수는 16.1이 된다. 이는 이미 1998년 환란수준 (1998년 2월 15.6)이다.

높은 물가상승률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다. 성장률 1% 하락에는 취업자가 6~7만 명 정도 줄어든다. 그 만큼 민생이 힘들어진다. 한국은행이 발표한올해 1분기 한국경제가 민간소비·투자 부진으로 전기비 0.6% 성장에 그치면서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7%를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반도체 수출이 버티면서 성장을 떠받쳐 왔지만, 엔화의 큰 폭 약세로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더욱이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파르다. 잠재성장률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주요 연구기관들에 따르면 한국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9.0%에서 1990년대 7.2%, 2000년대 4.4%, 2011~2017년엔 3.1%로 단계적으로 하락했고 최근엔 2%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정책대응 없이 현 상황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2060년 0.8%까지 떨어져 OECD 최하위권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캐나다와 함께 38개국 중 공동 꼴찌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국내 잠재성장률이 윤석열정부 임기 중인 2025년 1.57%로 떨어지고 2030년엔 0%대인 0.97%에 진입하며, 2045년엔 0.60%까지 낙하할 것으로 봤다. 잠재성장률은 투자증가률 생산성증가율 인적자본증가율의 합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가 지속되면 잠재성장률은 더욱 추락할 전망이다. 인적자본증가율은 이미 0%대에 진입했고 2030년 부터는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산성증가율도 이미 0%대로 하락해 있는데 2030년 부터는 0.5%대로 추락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해서는 투자증가율 제고를 위해 기업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생산성제고를 위해 규제혁파와 인적자원 개발에 진력해야 한다. 이 모두가 규제혁파가 기본이다. 물론 중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저출산대책도 추진되어야 한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과정에서 한계기업에 투입됐던 자원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및 신산업 육성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민간 중심의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교육제도 개선 △혁신생태계 조성 △소득 불평등 및 양극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30년 뒤엔 인구절벽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경제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잠재성장률이 4%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한 것도 공수표가 될 수밖에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과감한 정책 기조 전환과 강도 높은 구조개혁 없이는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민간·기업·시장 중심 경제 구현을 위한 경제 규제혁신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추 부총리가 직접 맡는다. 추 부총리는 “TF는 정부 주도 회의체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성과 지향적 협의체로 운영할 계획”이라면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적 식견을 가진 민간 전문가를 TF 공동팀장과 위원으로 대거 참여시켜 규제 정책이 정부만의 권한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6대 분야 실무 작업반이 검토한 결과의 적정성과 효과성을 검증하는 경제규제심판부를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며, 7월 중으로 TF 첫 번째 성과물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TF는 현장애로, 환경, 보건·의료, 신산업, 입지규제 등의 분야에서 규제혁신 과제를 점검한다. 각종 인증제도와 그림자 규제 개선에도 나서기로 했다. 그림자 규제란 법령에 규정돼 있지 않은데도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규제를 뜻한다.

아울러 정부는 새로운 규제를 1개 만들 때마다 규제 비용이 2배가 드는 기존 규제를 폐지·완화하는 ‘원 인, 투 아웃 룰’을 도입한다. 각종 인허가권을 비롯해 중앙정부가 가진 규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는 방안도 추진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규제샌드박스’(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유예하는 제도)는 규제 개선 과정에 이해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해 갈등을 해결하는 ‘규제샌드박스 플러스’란 이름으로 업그레이드한다. 기업을 옥죄는 경제 형벌 규정을 행정제재로 전환하고 부당지원·사익편취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범위를 명확히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통해 경제활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가업상속공제와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제도도 개선한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운영한 중소기업을 상속인에게 물려줬을 때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 주는 제도다. 추 부총리는 이어 경제정책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고 "공공·노동·교육·금융·서비스 등 5대 부문의 구조개혁과 과감한 규제혁신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서 주요 연구기관 등 경제정책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등 노동규제 완화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기업들도 성장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규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신산업의 활력 제고를 통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과제’를 정부에 전달했다. 이번 건의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경제 규제혁신TF’의 핵심분야를 고려해 △신산업, △현장애로, △환경, △입지, △보건‧의료, △경영일반 6대 분야에 대해 100개 과제를 선정했했다. 대한상의는 정부가 과감한 규제혁신을 예고한 만큼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 과제에 대한 속도감 있는 검토와 개선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최근 복합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의 대응 노력과 함께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미래 준비도 필요하다. 기업들이 신산업 경쟁을 강화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 등 새로운 도전을 위한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규제개혁에 대한 요구와 함께 일제히 투자보따리를 풀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기조 ‘민간주도성장’과 맞물려 고용훈풍을 불러오고, 중소기업들에도 낙수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디고 있다. 13개 그룹이 1천107조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삼성과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해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신세계, 두산, KT, CJ 등 13개 대기업이 향후 3~5년간 투자할 액수는 총 1천107조6천억 원에 달한다. 올해 정부 본예산 607조7천억 원의 1.8배,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2천57조4천478억 원의 53.8%에 달하는 규모다. 대규모 투자계획과 더불어 오랜만에 고용 훈풍도 불 전망이다. 주요 대기업들은 향후 5년간 총 39만 명 이상을 신규 채용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에도 투자의 낙수효과가 기대된다. 중소제조업 10곳 중 4곳이 대기업과 협력관계이고, 전체 기업 종사자 중 82.7%가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1차 협력사만 700여 곳이며 직원은 37만 명, 거래규모는 연 31조 원에 달한다. 2~3차 협력사까지 더하면 1만 곳이 넘는다.

76개 기업이 모여 ‘신기업가정신’ 선언도 했다. 5월 24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엔 굴지의 대기업부터 유망 스타트업까지 재계를 대표하는 76개 기업이 모였다. 경제인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지금 우리는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새로운 위기와 과제를 맞이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려면 기업의 역할을 쇄신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기업가정신을 위해 ▲혁신·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가치 제고 ▲지역사회 동반 성장 등 5대 실천명제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의 성패는 규제개혁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투자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각종 반기업규제가 개혁되어야 하고 강성노조의 무소불위 파업이 사라지도록 노동개혁이 되어야 한다. 초격차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우수인력양성을 위한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저부가가치 중심의 후진국형 금융 서비스산업을 고부가가치 선진국형으로 환골탈퇴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서비스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개혁이 절실하다. 방만한 공공부문의 개혁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부 우려가 되는 부분은 윤정부 출범 두 달여가 가까워 오는데 반기업규제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금융 서비스부문 규제개혁 공공부문 개혁 등 구체적인 규제개혁의 비전과 청사진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강성조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넘어설지 전략도 보이지 않고 있어 걱정을 하게 한다. 가끔은 일부장관들로부터 윤정부의 큰 규제개혁 그림과 다른 얘기들이 흘러나올 때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규제개혁을 담당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 고위공직자들이 규제이익을 향유해온 관료들로만 채워져 있는 점도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을 넘어서 반드시 규제개혁을 성공해야 한국경제가 도약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해낼 수 있다. 정부는 먼저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 답하는데서 과감하고 담대한 규제개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정근(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자유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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