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카레이스키 160년 유랑과 꿈에 그리던 고향
[김석우 칼럼] 카레이스키 160년 유랑과 꿈에 그리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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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1860년 전후 피폐한 조선 땅에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은 소박한 백성들이 연해주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였다. 그들을 ‘카레이스키- 고려인’이라 불렀다. 구한말 영국의 여성 여행가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가 조선을 여행하고 연해주에 건너가서 부지런한 고려인들을 보고 나서, 같은 조선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느냐고 기술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만주 본격 진출로 러시아와 각축이 심해졌다. 이미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연해주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무장투쟁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상설, 이범윤, 이위종, 유인석, 최재형, 홍범도, 신채호, 장도빈과 같은 애국지사들의 활동 근거지였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기 위한 준비도 최재형의 집에서였다. 그는 노비 신분으로 연해주에서 부를 일궈 독립운동의 대부가 된 분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연해주의 한인들을 일본 첩자와 구별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1937년 일거에 17만 명의 고려인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어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혹한 속에 토굴 움막을 짓고 뿌리를 내린 고려인들은 황무지와 소금밭을 농지로 개간하여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북위 45도 선까지 끌어올렸다.

강제 이주 후 몇 해 되지 않아 괄목할만한 농업생산에 성공하였고 많은 노력영웅을 배출하였다. 경제기반을 닦은 고려인들은 자녀 교육에 열정을 쏟아 가장 존경받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그 결과 소련 인구의 0.2%인 고려인이 소연방 해체 전까지 전체 20,605명의 노력영웅 중 209명이나 차지하였다. 1%에 해당한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질경이처럼 강인하게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소수민족이나 러시아인보다도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 전 세계에 50만 명이 퍼져 있다.

지금 우리의 전체 재외동포는 750만 명에 이른다.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에 이어 4번째로 디아스포라 국외교포가 많은 나라다.

해방 후 한반도는 냉전 대결 속에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이념이 다른 남북의 통일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제정치와 세계사 흐름을 통찰한 선각자였다. 유엔 결의에 따른 선거를 통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건국한 지 채 2년도 되기 전 1950년 6월 김일성이 모택동,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공산화를 위해 남침하였다. 해서 수백만 명의 사상자와 천만 이산가족을 남겼다.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가나보다도 못한 최빈국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피땀을 흘렸다. 그 결과 최단 시간 내에 경제 기적을 만들었다. 높은 교육열로 선진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드디어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 상상하지도 못하던 성취다.

1960년대 초기 한국의 농업인구가 전체의 60%를 넘었으나 급속한 산업발전에 따라 지금은 겨우 4.5%로 줄었다. 농촌은 노인들만 지키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이 3D업종을 꺼리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인력난이 심각하다. 임금수준은 이미 주변 개도국보다 10배나 높다. 한국은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여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이 일본보다도 낫다. 한국에서 2, 3년 열심히 벌어서 귀국하면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다. 개도국 근로자의 한국 취업은 마치 로또에 당첨한 것과 같다. 한국 입국비자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여서, 천만 원 상당의 브로커 비용거래마저 횡행하고 있다.

예컨대 몽골사람들은 해외 진출국 중에서 한국을 가장 선호한다. 현재 한국에 와 있는 5만 명은 몽골 전체 인구의 2%에 가깝고, 이들이 송금하는 금액이 몽골 GDP의 10%를 넘는다. 그래서 몽골 인구의 1할인 30만 명이 기본적인 한국어를 구사한다. 한국에서 취업하려는 꿈이 한국어 열풍으로 작용한다. K팝과 같은 한국문화의 확산에도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이런 한류 현상은 몽골뿐만 아니라 다른 인근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취업하는 외국인 중에 매우 특별한 존재가 카레이스키-고려인이다. 이미 8만5천 명이 조상의 고향에 왔다. 1991년 말 소연방이 해체되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이 독립하였다. 체제 전환의 과도기에 식량과 생필품 부족이 심각했다. 새로 독립한 중앙아시아 각국은 정체성 확립을 위해 자국어를 공용어로 삼았다. 러시아어만 사용하던 고려인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었다. 생활 기반이 흔들리자, 1990년대 초중반부터 새로운 터를 찾아야 했다. 대한민국은 할아버지들이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조국이다. 꿈의 고향이기에 당연히 귀환 움직임이 일어났다. 새로운 터전이 자신들의 기나긴 유랑의 종착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손들에게만은 흔들리지 않을 미래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고려인들은 주로 산업공단 인근 지역에 거주지를 택한다. 자연스레 고려인 마을을 형성한다. 안산 땟골마을(고려인 1만 5천 명), 인천 연수동 함박마을(6천5백 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7천 명), 안성시 대덕면 내리 행복마을(4천 명),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 마을, 경기도 화성시 발안 지역, 김해시 동상동/서상동이 대표적이다.

고려인 마을에 가면, 러시아 식품점, 카페와 빵 가게가 줄을 잇고 러시아 상품과 러시아말이 넘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특별반이 편성되고 러시아어 대안학교와 주민문화센터가 고려인의 정착을 돕고 있다. 흩어지던 지역사회가 고려인 유입으로 다시 활성화되고 도시재생사업이 성공하고 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는 이천영(李天永)목사가 고려인 사회를 이끌어 범죄 없이 번영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피난민 고려인들을 항공요금을 부담하여 받아들였다. 또한, 전 세계에 고려인 방송을 송출하기도 한다.

한국은 2016년부터 산업생산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에 빠졌다. 가임여성의 출산율은 0.81명으로 OECD국가 중 최저다.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우수한 인력을 많이 들여오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의 하나다.

다행히 한국 사회의 의식구조가 크게 변하였다. 일본과는 달리 1)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2) 배타적이지 않고, 3) 다양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경제발전에 따른 국제화와 선진화의 영향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식민통치의 어두운 기억이 없어서 열등감을 모른다. 개방적이고 오히려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한 사회환경이 외국인력의 유입으로 생길 부작용을 줄일 것이다. 이미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이 215만 명으로 인구의 4.2%에 달한다.

한국 사회와 연결고리가 강한 카레이스키 고려인이야말로 우선으로 받아들여야 할 자산이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실려 가면서도 조국을 잊지 못하던 고려인의 후예들은 아직도 할아버지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할아버지 고향을 위해 일해야 한다.” - 안산 땟골마을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던 고려인 4세 이 세르게이 군의 인터뷰 답변이 가슴에 찡하게 울려온다. 가능한 한 많이 받아들여 정착시킴으로써 인간의 회귀본능을 채워주고,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공헌하게 해야 한다.

이미 한국 정부는 ‘코리안드림’을 이루려고 한국에 온 고려인과 조선족 동포를 위해 2014년 4월 재외동포(F4)비자와 방문취업(H-2)비자를 발급하고 그들의 가족 동반을 허용하였다. 기존의 동포 3세까지뿐만 아니라 4세, 5세에 까지도 확대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더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점은 독립운동 당시에는 필요했지만, 세계 경영에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할 수 있어도, 밖으로 뻗어나갈 때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역사상 로마제국, 몽골제국이나 지금 패권국 미국은 다민족 다문화의 다양성을 가졌기에 세계를 포용할 수 있는 지도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한국은 지정학상 큰 나라 사이에 있는 중견 강국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는 한반도라는 테두리에 갇혀서는 불가능하다.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대국과 같은 다양성과 포용성이 필요하다. 자긍심에 충만한 카레이스키 고려인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국제사회를 품고 위상을 높여가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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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 작성에 다음 자료를 크게 참고하였다.

1) 김호준, “유라시아고려인 150년”(두류성출판사, 2013)

2) 김병학, “고려인은 누구인가”(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2022)

3) 임영상, “고려인마을” 특집 르포르타주(아시아엔 인터넷신문, 20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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